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된 장윤기가 지난 9월 30일 1심 선고 공판을 받기위해 광주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강간살인’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장윤기(23)의 성범죄 목적을 밝혀내지 못한 채 일반 살인죄를 적용했던 경찰관들이 법정에서 “수사 초기에는 성범죄 목적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광주지법 형사12단독 이승연 부장판사는 4일 증거인멸 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광주 광산경찰서 강력팀장 박모(57·구속) 경감과 팀원 김모(41) 경사에 대한 네 번째 공판을 열고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사이코패스로 의심…부실수사 지적은 사후평가”
박 경감은 장윤기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 “사건 초기에는 장윤기를 그냥 사이코패스 정도로만 의심했다”며 “부실수사 지적은 사후평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경감은 장윤기의 차량과 자취방을 과학수사 감식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가족에게 인계한 경위에 대해 “감식이 끝났다고 판단했다”며 “일에 치여서 그런 부분을 망각했다”고 주장했다.
차량에서 발견된 결박 도구인 케이블타이와 자취방에 있던 훼손된 리얼돌 2개를 압수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범행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때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장윤기를 조사하던 팀원에게 ‘성적으로 몰아가지 말라’고 지시한 이유도 해명했다. 박 경감은 “진술을 거부하던 장윤기를 3시간 정도 달래놓은 상황이었다”며 “조사 과정에서 그 팀원과 장윤기가 말다툼했기 때문에 실랑이하지 말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강간살인죄 송치 건의 거부…“정확한 것만 송치하려 했다”
박 경감은 장윤기의 ‘여고생 살해’와 ‘외국인 여성 강간’ 사건을 따로 수사한 경위에 대해서는 “지휘부에서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씀을 못 드리겠다”고 밝혔다.
팀원이 제안한 강간살인죄 적용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자백 없이 정황증거만 있다고 판단해 다른 팀원들 의견까지 듣고 나서 수사보고서를 남겼다”며 “향후 검찰 수사나 재판에서 깨진다면 언론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정확한 것만 송치하자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함께 기소된 김 경사도 증거물 확보의 필요성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김 경사는 “리얼돌과 케이블타이의 압수 필요성을 수사 초기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현장에 투입된 여러 수사관 중 그 필요성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종결했다. 결심공판은 오는 25일 열린다.
증거 미확보·영상 삭제 지시 혐의…경찰 지휘부도 기소
박 경감 등은 지난 5월 장윤기 사건을 수사하면서 주요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수사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장윤기의 주거지와 차량을 긴급수색하면서 훼손된 리얼돌과 케이블타이를 압수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의 아버지에게 수사 상황을 알려준 혐의도 받는다.
박 경감은 차량 수색 당시 촬영한 케이블타이 영상을 송치하지 않고 수사팀원에게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부실수사 의혹은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당시 검찰(현 공소청)이 보완수사에 나서면서 불거졌다. 검찰은 리얼돌 관련 영상 등을 분석해 장윤기의 강간살인 혐의점을 규명했다.
공소청은 박성주(60)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등 전현직 경찰 지휘부 4명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장윤기의 ‘여고생 살해’와 ‘아르바이트 동료 스토킹·강간’ 사건을 분리해 수사하도록 지휘한 혐의를 받는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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