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미국과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평가전에 앞서 무대에 선 ‘페이커’ 이상혁.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 국가대표팀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페이커’ 이상혁이다. 이상혁은 e스포츠가 시범 종목으로 들어갔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부터 대표팀의 미드라이너로 출전했다.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나갔던 그는 이번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도 출전이 확정되면서 3회 연속 국가대표로 나서는 유일한 선수가 됐다.
그런 이상혁이 한국 대표팀에 가져다줄 수 있는 무기, 다른 나라 대표팀에는 없는 무기는 경험이다. 현지에 PC를 비롯한 연습 환경이 전무하고, 콘센트 하나 없는 대기실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며 경기를 준비해야 했던 자카르타 대회도 그는 경험해 봤다. 한국e스포츠협회의 전폭적 지원 아래 나섰으며, e스포츠가 웬만한 인기 구기 종목 못잖게 많은 관심을 받은, 그래서 선수들이 더 많은 부담감을 느꼈던 항저우 대회도 그는 경험해 봤다.
또한 2018년엔 실패를, 2023년엔 성취를 맛봤다. 한국과 이상혁은 자카르타에서는 중국에 밀려 은메달에 그쳤지만 항저우 대회 준결승전에서 중국에 복수하고, 결승에서는 대만까지 꺾으면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 모든 순간에 있던 건 이상혁과 ‘룰러’ 박재혁 뿐이었다. 나고야 대회에는 박재혁이 불참해 지난 두 차례 대회의 상반된 경험을 갖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는 이상혁이 유일하게 됐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당시 ‘페이커’ 이상혁의 모습. 쿠키뉴스 DB
아시안게임은 프로 대회와 다르다. 선수 차출부터 소집 기간, 연습 환경에 이르기까지 프로 대회와는 차별화되는 것들이 많다. 가령 박재혁은 2023년 연말 인터뷰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과정을 놓고 이렇게 회고한 적도 있다.
“프로팀에서는 선수들끼리 최소 1년을 함께하지만 국가대표는 다르다. 1달가량 연습하고 대회를 치르면 해산이다. 솔직히 프로팀보다 대표팀에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게 더 어렵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팀원들에게 말했다. 곧 월즈에서 만나면 적이 될 사이지만 내 챔피언 선호도와 노하우 등을 다 털어놨다.
사실 2018년에는 대표팀 선수들끼리 모든 걸 터놓고 얘기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명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모든 정보를 오픈해야 다른 선수들도 완전히 마음을 열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선호하는 밴픽 구도, 나의 노하우와 라인전 구도 데이터 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감 없이 다 얘기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모두 겪어본 선수가 많지 않다. 이상혁만 가진 경험이 이번 대회에서 큰 가치를 지닐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그 가이드라인과 로드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선수는 한국만의 귀한 자산이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LoL 국가대표로 나섰던 ‘페이커’ 이상혁.
이상혁은 19일 부산에서 열린 미국과의 평가전 직후 기자회견에서 “프로는 같은 멤버로 1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합을 맞춘다. 장기간이다. 반면 국가대표는 한 달 이내의 짧은 기간 동안 합을 맞춰야 한다”며 “선수 간의 의견을 완벽하게 조율할 시간이 없다. 선수들이 각자 가진 개성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내가 가진 능력 중 어떤 것을 극대화할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프로와 국가대표로서 역할의 차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혁은 이날 미국과의 경기를 대기실에서 지켜봤다. ‘제카’ 김건우가 3번의 세트 모두 미드라이너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상혁은 “선수들이 너무 잘해줘서 경기를 편하게 봤다. 특히 ‘캐니언’ 김건부의 초반 플레이가 인상 깊어서 감탄하면서 봤다. 대표팀이 합을 맞춘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좋은 경기력이 나왔다”고 말했다. 또 “미국도 준비를 잘했다고 느꼈다. 경기가 빨리 끝나긴 했지만 매서운 플레이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상혁은 또 “이번 아시안게임은 내게 도전의 의미”라면서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해야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 수 있을지를 놓고 개인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대표팀에 많은 도움을 주고, 금메달을 딱 확률을 높이기 위한 고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