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법개정에 잇단 비용절감
삼성전자, 가전라인 증설 보류
SK도 비주력 예산 잇단 삭감
미래 반도체 인프라 투자 집중
국내 주요 기업들이 유례없는 ‘투자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정부와 여당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상법 개정에 발맞춰 자사주 소각을 조 단위로 단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투자 실탄이 줄었기 때문이다. 각 기업들은 사업 범위를 축소하고, 생존과 직결된 핵심 사업에만 자본을 쏟아붓는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있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시행된 올해 주주총회에서 전체 상장사가 공시한 소각 규모는 약 3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이전에도 소각 규모는 매년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자사주 소각액은 2023년 4조8000억 원에 불과했으나, 정부 밸류업 정책 원년인 2024년 13조9000억 원, 2025년 21조4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는 환영받을 일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 투자를 위한 수단 자체가 줄어드는 셈이다. 이는 신규 투자 예산 삭감과 기존 사업 효율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있는 삼성전자와 SK그룹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올 상반기 중 16조 원 규모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한 삼성전자는 반도체 인프라 투자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핵심 미래 기술에는 집중 투자하는 반면, 교체 주기가 길어진 비핵심 내구재 가전 라인 증설을 보류하고 기존 공장 자동화율을 높이는 등 효율화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대대적인 리밸런싱(사업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SK그룹은 약 5조 원대 자사주 소각을 단행한 지주사를 중심으로 중복되거나 수익성이 낮은 비주력 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배터리 일부 해외 공장 증설을 늦추고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확보한 자금은 ‘HBM’과 통신 역량을 결합한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LG그룹 역시 TV와 백색가전 등 내구재 가전 분야의 물리적 설비 투자를 줄이는 대신, 구광모 회장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ABC(AI·바이오·클린테크)’ 분야로 자원을 재배치했다. 특히 전장(VS) 사업과 상업용 냉난방공조(HVAC) 등 기업 간 거래(B2B) 모델에 예산을 집중하며 자본 효율성이 높은 체질로 개선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으로 특정 유망 분야에만 자원을 ‘올인’했다가 해당 산업의 거품이 꺼지면, 기업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는 점은 우려 사항”이라며 “또 당장은 돈이 안 되지만 10∼20년 뒤 미래를 책임질 산업 분야에 투자가 어려워져, 혁신의 씨앗이 고사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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