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 둘러싼 '메리츠금융 vs MBK파트너스'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홈플러스 물품구매전단채피해자 비대위 관계자들이 'MBK파트너스ㆍ김병주 엄중 제재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조채원 기자] 국내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 거래로 꼽혔던 홈플러스가 파산의 벼랑 끝에 섰다. 오는 30일 변제금 마련 시한과 다음달 3일 법원의 회생 인가 여부 결정을 앞두고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그룹은 한 치의 양보 없는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두 거대 자본 플레이어는 서로를 향해 도덕적 결함이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 올리는 형국이다.
◇숨 막히는 카운트다운 ‘2000억원’의 잔인한 무게
홈플러스 사태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은 단 이틀 차이로 찾아온다.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에 오는 30일까지 긴급운영자금(DIP) 2000억원의 조달 계획을 구체적으로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이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다음달 3일로 예정된 회생계획 인가 여부 결정을 보지도 못한 채 회생절차 폐지, 즉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00억원은 단순히 부도를 막는 일시적 자금이 아니다. 운영 자금 고갈을 막아 협력 업체의 연쇄 도산을 방지하고 법원으로부터 최소한의 연명 가능성을 인정받기 위한 일종의 입장권 역할을 한다. 이 자금 마련이 끝내 실패하면 법원은 청산가치(약 3조 6800억원)가 계속기업가치(약 2조 5000억원)보다 1조 2000억원 이상 높은 홈플러스에 대해 냉정하게 사망 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다. 수십만명의 고용과 민생 생태계가 걸린 거대한 폭탄의 도화선이 수일 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자본의 전장’ MBK vs 메리츠의 본질적 쟁점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2000억원을 둘러싼 대주주 MBK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의 대치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복잡하다. 서로가 홈플러스 파산으로 인해 손해보다는 이익이 더 크다고 주장하지만, 남모를 속사정이 있어서다.
메리츠의 완강한 태도 뒤에는 부동산 담보신탁이라는 안전 장치가 있다. 메리츠는 홈플러스의 주요 대형 점포 소유권을 신탁 회사에 이전해 회생절차의 통제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자산을 처분할 권리를 확보해둔 것이다. MBK는 이 점을 들어 청산시 메리츠가 원금과 연체 이자를 포함해 수천억원의 이득을 챙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선 처분권이 있다고 해서 메리츠가 곧바로 현금을 손에 쥐는 것은 아니다. 회사 청산시 담보로 잡힌 60여 개 대형 점포를 매각해 채권을 회수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리고 그 사이 담보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돈을 떼일 염려는 없어도 천문학적 자금이 초장기 연체 채권으로 묶여 금융사 건전성을 갉아먹는 유동성 덫에 갇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메리츠는 주주 배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으로 김병주 MBK 회장의 개인 보증을 대출 조건으로 내걸었다. 반면 MBK는 이미 지분이 전액 소각돼 잃을 게 없는 상태에서 DIP 자금으로 밀린 임금과 대금만 정리한 뒤 책임 없이 빠져나가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본 시장 안 모순 ‘도덕적 비난’의 경계선
자본주의 관점에서 사모펀드에 기업의 영속성이나 종신 고용과 같은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적으로 유한책임만 지는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에게 개인의 사재 출연과 보증을 압박하는 것 역시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는 전무후무한 요구다. 영속 경영이 목적이 아닌 단기 대리인일 뿐인 이들에게 정서법과 그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원칙을 들이대며 자발적인 돈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장 내부에서조차 MBK의 행태를 거세게 비판하는 이유는 ‘신뢰’라는 자본 시장의 근간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해도 의도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법적으로 MBK나 김병주 회장이 해줄 게 없다. 하지만 채권을 발행하자마자 곧장 회생 신청으로 돌아선 것은 기업 사냥꾼처럼 법을 이용했다는 인상을 준다. 펀드에서 이미 상당한 수익을 챙기고도 계속 채권을 발행한 것은 갚을 생각 없이 발행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메리츠 추산에 따르면 MBK는 홈플러스가 포함된 3호 펀드에서 과도한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이미 1조 2000억원 규모의 수익을 분배받았다고 알려졌다. 이익은 철저히 사유화하고 파산으로 인한 노동자 실직과 소상공인 피해 등 손실 비용은 사회와 채권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비대칭적 책임’의 전형이라는 주장이다. 자본 시장 선수들 사이에서도 ‘상도가 없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MBK 측은 이미 기존 투자금 2조 5000억원을 전액 소각당하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신규 자금 수혈을 통해 홈플러스를 살리려는 과정에서 메리츠가 과도한 연체 이자 수익을 노리고 도리어 청산을 유도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PE 처벌보다 M&A 거부권부터 손봐야
M&A·법률 전문가들은 홈플러스 사태가 법원의 재량권 행사로 단기적인 시한 연장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 M&A 전문가는 가치도 없는 기업에 비경제적 요소를 고려해 인공 호흡기를 억지로 붙여두는 것은 세금이나 사회적 비용으로 부실을 메우는 나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적 절차를 철저히 따르되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면 새 주인을 찾는 인가 전 M&A를 조건으로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 시나리오라는 분석에서다.
국내 사모펀드 시장의 제도적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과제도 거론된다. 사모펀드의 행위 자체를 사후 처벌하거나 규제하는 차원을 넘어 인수 단계에서부터 비재무적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률 전문가(변호사)는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적대적 인수나 사모펀드의 무차별적 공격에 맞서 기존 경영진이나 이해관계자가 방어할 수 있는 '포이즌 필'(경영권 방어수단) 같은 수단이 전무하다”며 “주주가 지분을 팔 때 이사회가 근로자나 협력 업체 등 전체 이해관계를 반영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균형 잡힌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조채원 기자 cwlight2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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