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옥 시인
말도 안 되는 장마가 끝나고 끓어오르는 열기에 밤낮으로 폭염앓이 중이라 어찌 지내시냐는 안부를 묻는 것이 무색하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지면으로 안녕을 바라는 인사를 드립니다.
너무 더운 까닭에 제가 다니는 수영장의 수온도 30도를 웃돌아 다들 온탕이라며, 까딱 잘못하면 때가 밀릴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농으로 웃으며 더위를 식힙니다. 찰옥수수 축제로 유명한 삼동면의 옥수수밭도 불볕더위에 말라비틀어져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애가 탑니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나빠진 경제 사정은 좋아질 기미조차 안 보여 긴 시간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의 쪼그라진 심장이 이 더위에 타격을 입을까 걱정도 염려도 됩니다.
그래도 즐거운 일이 있으면 웃고 지낼 수 있는데 기대했던 축구도 어이없이 막을 내리고 짭짤하단 입소문에 너도나도 발을 담갔던 주식에 빈털터리가 된 이야기도 간간이 들립니다. 여하튼 웃을 일이 하나둘씩 늘어나길 기대합니다.
이것도 직업병일 테지요. 오며 가며 보는 게첩된 현수막에 적힌 문구나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정치 관련 숏츠를 보면 어디서 어의를 찾아야 하나 싶습니다. 청문회 스타란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청문(聽聞)의 의미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 그저 소리를 질러댑니다. 알다시피 웃기는 건 그 무지한 분들이 선거철만 되면 '다른 의견 계십니까' 식으로 온갖 단어에 존칭을 써가며 아양을 떱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는 '낄낄빠빠'라는 시대어처럼 쓸 때와 안 쓸 때를 구분이라도 할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인가 라디오를 듣는데 누군가가 정치 관련한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정치색을 표현하면서 주야장천이란 단어를 쓰길래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주구장창이란 말을 흔히 쓰는데 요즘 문해력이 이슈라 그런지 역시 제대로 배운 사람은 어디에나 있구나 싶은 게 좌중유강남객(座中有江南客)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점치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잘난' 분들이 많은 세상이라 짧은 시간 엄청나게 반가웠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건 마음을 얻는 일입니다. 매수와는 완전 딴판입니다. 인간이란 자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접근도 쉽습니다. 꼭 같은 사람은 하나 없는데 죄다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하니 다른 의견은 그야말로 틀린 말이 됩니다. 인간의 다름조차 이해하지 않고 버럭버럭하는 분들 꽤 있습니다.
그리고 모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모르면 배우면 되는 것인데 모른다고 하는 게 어려운가 봅니다. 저는 사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할 때 기분이 좋습니다. 내 문제에서 상대방 문제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다음 질문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아주 시원하게 모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란 입장에선 다릅니다. 소정의 자료란 의미를 몰랐던 것처럼 그땐 무지가 죄가 되어버립니다. 공자께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게 진짜 앎이라고 했습니다. 이 깊은 문장에서 일을 대하는 정직성과 모름의 인정, 스스로 객관화할 수 있는 자기 인식과 지식의 한계까지 살펴볼 수 있다 하겠습니다.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한 내로남불, 정말 경계해야 하는 말입니다. 본디 사람은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이나, 한 편으론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울렁더울렁 살아야 합니다. 본 것이 다 맞는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 할 수도 없는 것은 일정 나이가 되면 피부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말이 많으면 실수도 잦고 수습할 일도 많아지고, 말이 거칠면 인격도 따라 추락합니다.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정치, 이 단어의 의미를 믿고 사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다름과 모름을 인정하며 정치가 쇼가 되지 않도록 소음으로 떠돌지 않도록 스스로 객관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분들에게 설득당하고 싶습니다. 오양옥 시인
오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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