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는 사라진다.

인공지능(AI)이 몰고 온 고용 구조의 전환은 대규모 해고나 공장 폐쇄처럼 가시적 충격의 형태로 오지... 인공지능(AI)이 몰고 온 고용 구조의 전환은 한국 노동시장에서 변화의 본질이 되고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는 사라진다.

AI 시대, 고용의 미래 시나리오

[디스커버리뉴스=양창묵 기자] 2026년 봄, 경기도 한 자동차 부품 공장의 야간 조명이 꺼졌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더 이상 사람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야간 조립 공정 전체가 협동 로봇으로 전환됐다. 이 공장의 정규직 야간 인력 34명은 해고되지 않았다. 다만 주간 근무로 전환됐고, 계약 만료 후 재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은 해고하지 않는다. 그저 더 이상 뽑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2026년 한국 노동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본질이다. 인공지능(AI)이 몰고 온 고용 구조의 전환은 대규모 해고나 공장 폐쇄처럼 가시적 충격의 형태로 오지 않는다. 채용 공고가 하나씩 사라지고, 계약직 비중이 조용히 늘고, 신입 사원이 경험을 쌓을 자리가 서서히 없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공지능(AI)이 몰고 온 고용 구조의 전환은 한국 노동시장에서 변화의 본질이 되고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5~2026년 주요 제조업 신규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평균 18% 감소했다. 500인 이상 기업의 62%는 이미 사무직 업무에 AI 문서 자동화를 도입했다. 고용정보원은 국내 콜센터·고객서비스 인력이 2024년 22만 명에서 2026년 16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대형 IT 기업 인사 담당 임원은 "AI는 시니어 직원의 능률을 높이는 대신, 주니어 직원의 진입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건 혁신이 아니라 구조 변화입니다."라고 생생한 현장을 대변한다.

중간층의 붕괴, 그리고 악순환

2028~2030년에는 이 변화가 노동시장의 '허리'를 무너뜨리는 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니어 사무직, 중간 관리자, 반복 기술직 등 중간 숙련 직무가 AI·로봇으로 대거 대체되면서 고용 구조는 소수의 고급 인력과 다수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양극화된다.

한국고용정보원과 맥킨지글로벌연구소 분석을 종합하면, 주니어 사무직(1~3년차)과 반복 기술직의 AI 대체 위험도는 '매우 높음'으로 평가된다. 반면 의사·변호사 등 고급 전문직은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해 오히려 효율이 높아질 전망이다.

문제는 악순환 구조다. AI가 주니어 직무를 대체하면 신입이 경험을 쌓을 자리가 사라진다. 경험 없이는 취업이 안 되고, 취업이 안 되면 경험을 쌓을 수 없다. '첫 직장 진입 장벽'이 구조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동시에 40~50대 중장년층도 직무 전환 인프라 부족으로 재취업이 막힌다. 가장 성실했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밀려나는 역설이 시작된다.

고용 없는 성장, 분배의 위기

2030년에 접어들면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구조화된다. 골드만삭스(2025년도)는 AI 도입 기업의 평균 매출이익률이 71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OECD는 인건비의 매출 대비 비중이 2025년 28%에서 2032년 19%로 하락할 것으로 추정한다. 기업 실적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지만, 그 과실이 임금 소득자에게 돌아오는 경로는 점점 좁아진다.

플랫폼 경제의 확산이 이 흐름을 가속한다. 2032년에는 전체 취업자의 35%가 플랫폼·단기 계약직 노동자일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된 상태이지만 고용보험도, 퇴직금도, 승진 경로도 없는 노동의 시대다. GDP 대비 노동소득분배율의 지속 하락은 한국을 OECD 최하위권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더 빠르고 더 깊은 충격

이 변화는 모든 나라에 오지만, 속도와 충격의 깊이는 다르다. 한국은 구조적 취약 요인을 여러 겹으로 갖고 있다. 제조업 고용 비중이 OECD 평균보다 높고(15.8%), 수능·스펙 중심의 교육 구조는 직무 전환 역량을 키우지 못했으며, 중장년 재취업을 위한 재훈련 인프라는 질·양 모두 OECD 하위권이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압축 성장한 한국이, 같은 이유로 고용 충격도 가장 빠르게 흡수하게 될 수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대안 논의가 시작됐다. AI 전환 기업 대상 고용유지 의무 비율 도입(고용노동부 검토), 플랫폼 노동자 고용보험 의무화 법제화(국회 계류), AI 생산성 증가분에 대한 로봇세 해외 사례 연구(기재부), 국가 차원 노동전환 지원기금 설립(경사노위)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그러나 정책 논의의 속도는 기술 전환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고용 정책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AI는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온 '노동 중심 사회'를 해체하고 있다. 앞으로 사라질 것은 직업이 아니라, 직업에 의존해 살아가는 방식이다.

2035년을 향해 사회는 세 갈래 기로에 서 있다. 안전망 없이 고용 구조가 해체되는 시나리오, 기본소득과 로봇세로 분배 구조를 재설계하는 시나리오, 창의성·돌봄·판단력 등 AI 불가 영역으로 인간 노동이 재편되는 시나리오다. 현실은 세 방향의 혼합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정책이 어느 방향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고용 정책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분배 정책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시간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