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실시간 연예인 중계, 유투브 그런 거 없었을 때 우리에게 이웃 남학교의 소문도 오락이었다. 수건돌리기, 가위바위보로 이마에 군밤 주기 따위는 시들하고 내력 없는 반가사유상이 되어 앞으로 전개될 인생을 고민하며 뒤로는 선데이 서울 같은 주간지나 라디오 연속극으로 뭉게뭉게 일던 호기심을 해결했다.
시내 몇 안 되는 고등학교에서 우리는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면서 먼저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과목으로 말했다. 그 학교 생물선생님이 혹은 화학선생님이 . . .등으로.
어떤 선생님이 많은 교육계 선배님과 인사들을 모시고 장학 수업을 했다. 선생님의 수업 방법과 아이들의 태도를 주시하는 가운데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닭에게 칼을 들이대면 닭이 압니까?"
수업과 무관한 질문이었는데 선생님이 그 답을 말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손님을 모신 한 시간을 다 보내버렸다. 학생조차 큰 의도 없이 던진 질문 하나가 선생님을 곤란에 빠뜨렸다. 제한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
그 소문은 우리 학교까지 왔다. 우리는 두고두고 가지고 놀았다. 우리의 오락이 풍성하지 않았던 탓이기도 했다.
나는 안타까웠다.
나는 삼촌들이 보고 버린 사상계에 실린 단편 하나를 생각했다. 어느 봄날 선생님은 칠판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져 돌아보았다. 열어둔 창문으로 청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와 책상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봄날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선생님은 돌아서 다시 글씨를 썼다. 잠시 뒤 무엇이 날아와 칠판에 붙었다. 누군가가 힘껏 던진 청개구리는 칠판에 붙어 압사를 했다. 누가, 봄이 되어 이렇게 나온 어린 개구리의 생명을 무참히 죽이는가.
그 아이를 불렀다. 훈계를 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아이는 반성하는 기색이 없이 당당하게 되돌아 가는 중 선생님이 다시 불렀다.
"인사를 하고 가야지?"
아이는 인사를 했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계속 인사를 했다. 이 순간을 조용히 보던 선생님이 책과 출석부를 옆구리에 끼었다.
"교무실에 다녀올 일이 있다. 다음 시간 돌아올 때까지 이래도 된다."
시골에서 올라온 내가 그 학교의 소문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을 이범선을 안 읽었구나. 좀 침착하게 같이 연구를 해보자, 할 일이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일 하든지.
일거리를 찾아가는 남자들에게 술집의 여자는 부탁했다.
"도망간 종업원을 찾아 달라.""
마침 그 사람들은 그 여자를 만났다. 신고할 마음은 없다. 그들 역시 정처없는 사람들 아닌가.
"왜 시집은 안가고 이렇게 헤매는 거요."
"내 남편감들이 이렇게 떠도는데 내가 어디로 집잡아 들겠소."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또 어떤 소설이다. 공사판의 현장이다. 한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는다. 동료는 말한다.
"먹어 둬, 몸이 퇴직금이여."
어떤 사람의 아들이다. 말 잘 듣고 놀이터에 나가 남을 때리지도 않고 흰 바지를 더럽히지도 않으며 착하고 순하고 우등생으로 자란다. 대학에 가고 일자리를 얻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땡 하면 집에 온다. 쉬는 날에는 소파에 앉아 웃으면 복이 와요 를 보며 박장대소한다. 결말은 잘 기른 아들인가, 를 묻는다.
한 여학생이 배판정에 섰다. 판사가 말한다. 머리에 붉은띠를 묶고 손에 들고 흔들었다.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학생은 깔깔 웃었다. 판사님 판사님 뒤의 붉은 카펫도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것입니까.
가끔 인생이 멈칫거릴 때 그동안 읽은 책을 생각한다.
이혜숙 작가·<계절을 먹다> 저자
이혜숙 작가
이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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