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8월3일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만난 최새얀 변호사. 사진=박재령 기자
고위공직자의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안이 시민사회 주도로 완성됐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개정해 혐오표현을 새로 정의하고 고위공직자가 정의에 해당하는 표현을 할 경우 인권위가 조사 및 조치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 원인이 고위공직자의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문제의식으로 법안이 만들어졌다.
5·18민주화운동과 호남에 대한 혐오 역시 정치권에서 부추기는 문제가 반복됐다. 스타벅스 혐오 사건 이후 국민의힘 일각에선 스타벅스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과거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규정한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고,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2025년 1월 허식 당시 인천시의회 의장은 5·18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한 스카이데일리를 배포하고, 이 내용을 두둔했다. 2019년 당시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원내대변인)은 5·18유공자를 가리켜 ‘괴물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3월 출범한 ‘고위공직자 혐오표현 대응 법개정 운동 및 공동행동단’이 법안을 주도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단법인 오픈넷 등 12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했다. 손솔 진보당 의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안 발의를 논의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 외에도 공무원은 차별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공동행동단에 참여한 최새얀 변호사를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재 민변에서 소수자인권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최 변호사는 지난해 5월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가 여성혐오 발언을 한 것이 공동행동을 촉발시켰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광장 염원 담긴 대선에서 나온 ‘여성혐오’
- 지난 3월 출범한 고위공직자 혐오표현 대응 공동행동단에 참여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준비모임은 작년 대선 이후 만들어졌다.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후보가 토론회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모임이 촉발됐다. 고위공직자의 혐오표현이라는 게 굉장히 넓은 분야에 걸쳐 있긴 하지만 특히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제가 합류하게 됐다.”
- 이준석 후보의 여성혐오 표현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느꼈나.
“너무나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토론의 맥락과도 맞지 않는, 정말 여성을 공격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였다.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와 세상에 대해 여러 요구를 하지 않았나. 그중 하나가 차별금지법이었다. 소수자에 대한 평등 요구가 많이 나왔는데 그 직후 열린 대선에서 이준석 후보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화가 났던 것 같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 사진=개혁신당 홈페이지
-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법률 개정 운동을 하고 있나.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차별 행위에 대한 정의가 디테일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이 차별 금지 사유를 활용해서 혐오표현을 정의한 것이 저희가 만든 개정안이다. 고위공직자가 이 정의에 해당하는 혐오표현을 할 경우 인권위가 시정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넣었다. 그 외에도 국가공무원법에 ‘종교중립의무’가 있는데, 이것을 ‘차별금지의무’로 구체화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시민사회안)에 따르면 혐오표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을 이유로 특정한 사람 또는 집단에 대해 모욕·비하·멸시·위협을 표시하거나 차별·폭력의 선전·선동을 함으로써 차별행위를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언동.”
“구조적인 혐오·차별 낳는 주체는 고위공직자”
- 법률 개정안을 만들면서 어떤 점들을 논의했나.
“혐오표현 문제를 형법으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타법에 선언적 의미로 넣을 것인지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여러 의견들이 나왔는데, 일단 혐오표현 문제를 사후적으로 형벌로서 처벌하는 건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합의점이었다. 차별금지법이 없는 상황에서 혐오표현 정의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해야지만 남용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또 하나의 중요한 합의였다.”
- 왜 하필 ‘고위공직자’의 혐오표현인가.
“개별적인 혐오표현보다는 구조적인 차별에 대해 먼저 규제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구조적인 혐오와 차별을 낳는 주체가 누구냐 하면 고위공직자, 정치인일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이 공공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사회적 소수자가 공공 영역에서 차별을 받는지 안 받는지가 결정된다.”
▲2026년 7월5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배재고 관련 화환 사진(왼쪽)과 이진숙 의원. 사진=이진숙 의원 페이스북 및 연합뉴스
- 스타벅스, 배재고 등 최근 불거진 혐오표현 사건에서 정치인들의 가세가 문제를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배재고에 “스타벅스가 5·18과 무슨 관계냐” 등의 화환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권에서 최소한의 양심이 없어지는 것 같다. 이건 정치적인 찬성과 반대 영역이 아닌, 옳고 그름의 영역이다. 이걸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게 눈에 보인다.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역사다. 그걸 부정할 수도 있는 영역으로 조장하는 정치인들의 행보는 놀랍다.”
망법 개정에 담긴 혐오표현 규정이 불완전한 이유
- 지난 7일 시행된 정보통신망법에도 혐오표현이 정의가 됐다. 인종, 국가, 지역, 성별, 장애, 연령, 사회적 신분, 소득수준 또는 재산상태를 이유로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는 정보, 증오심을 심각하게 조장하는 정보 등이 불법정보로 규정됐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빠져 있다. 완벽한 혐오표현 정의라 볼 수 없다. 그리고 망법에 규정된 불법정보는 이걸 발견했을 때 심의위원회(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시정조치를 하라는 취지다. 사후적인 규제에 불과할뿐더러 혐오표현에 대한 심의위 판단이 자의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으로선 한계가 있는 법안이라고 생각한다.”
- 한계가 있지만 혐오표현을 법으로 규제하려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보나.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를 민주당이 인식하는 건 알겠다. 그러나 그 방법이 분명히 옳은 방법은 아니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혐오표현에 대해 사회적으로 정해진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개별적인 법으로 이렇게 규정을 하면, 그 정의가 법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사회적 혼란이 커지게 된다.”
▲ 2026년 3월 출범한 고위공직자 혐오표현 대응 공동행동단 기자회견 사진. 사진=민변
- 이런 차원에서 시민사회가 정당에 요구하는 것이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심이라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우선돼야 하는 게 맞다. 그런 모법이 있을 때 파생되는 개별법들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 혐오표현 규제를 주장하면 따라오는 게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다.
“저희도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다만 이 법안을 내는 이유가 표현의 자유를 오히려 촉진시키기 위해서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 자유가 보장돼야 표현의 자유가 의미 있는 것이다. 고위공직자의 혐오표현이 표현의 자유 대상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고위공직자의 혐오표현은 헌법상 기본권인 인간의 존엄과 평등권을 침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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