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국사 영정.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영암사람 도선국사가 제창했던 풍수(風水)사상의 핵심은 비보(裨補)다. 비보는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운다는 뜻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운이 약한 곳을 찾아 절을 짓고 탑을 세워 국토의 흉지를 길지로 바꾸는 것이 목적이었다. 고려건국과 왕실의 안녕, 국가의 번영을 도모하기 위한 호국적 의미를 담고 있다. 호국풍수,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라고도 한다. 땅의 기운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기운이 쇠한 곳을 인위적으로 보충하여 국가의 기운을 지속시킨다는 사상이다.
후고구려, 후백제 등으로 복잡했던 한해륙의 기운을 고려라는 새 왕조의 패러다임으로 바꾸기 위한 국토대개조론 아니 문명개조 프로그램이었다. 바람과 물, 기후와 관련된 환경조건의 재구성을 넘어, 오늘날로 말하면 기후위기와 여론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라고나 할까. 맹자는 말했다.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백성을 잃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도선 풍수는 땅의 문제를 넘어 백성의 마음을 살피자는 기획이었다.
도선국사의 풍수(風水)에서 ‘5극3특’까지
이데올로기적 풍수는 중국에서 체계화되어 수입되었지만 배산임수, 남향 선호, 홍수와 바람을 피하는 등 좋은 터와 나쁜 터를 구별하는 것은 인류의 정착 생활 이래 유구한 것이다. 여기에 음양오행, 생기, 방위, 산수, 형세 등 인문지리적 개념들이 더해지고 산악숭배, 지모신의 설정 등 복잡한 이론을 갖추게 된다. 최치원의 ‘숭복사비문’에 나타나듯이 왕릉 선택에 풍수 이론이 적용된 사례들이 있지만, 본격적인 전환은 도선국사에 이르러서이다.
도선은 영암 출신으로 827년 태어나 898년 죽은 승려이다. 당나라에 유학해 직접 풍수를 배웠다고는 하나 여러 연대 측정이 엇나가는 등 후대에 덧입혀진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중국의 영향보다는 토착 사상에 비중이 있다는 뜻이다. 도선이 주목했던 것은 신라말 지방호족과 고려 왕조의 욕망을 담아내는 국토재구성론이다. 산수의 순역(順逆)을 토대로 전국토의 형세를 파악하고 어디에 사찰을 세울 것인가를 정한 국토 재구성안이었다. 개경을 왕조의 중심 혈맥으로 설정하고 서경(평양)을 북진정책과 고구려 계승의 상징적 혈맥으로 읽었다. 문종 이후에는 남경(한양) 명당설도 등장한다.
세월이 지나 왕기(王氣)와 국가 운명을 예단하는 도참(圖讖)사상이 성행하게 된다. 건국 초기 구성하였던 국토개조론이 오염되었다고나 할까. 서경천도론으로 발전한 것이 묘청의 난이다. 고려말로 갈수록 유교적 합리론이 대두된다. 조선을 건국한 삼봉과 이성계가 한양, 계룡산, 개경 등 지세를 두고 격론을 벌이다가 한양을 새 수도로 정한 것도 풍수의 영향이다. 북악산이 주산, 남산이 안산, 경복궁, 종묘, 사직, 육조거리, 청계천, 한강, 내사산(內四山), 외사산(外四山) 등 유교적 예제와 풍수적 지세를 결합하는 도시설계가 진행된다. 관상감의 천문, 지리, 역수, 점산, 측후 등의 기술관원을 음양과라는 시험을 통해 뽑거나 상지관을 통해 궁궐터, 능, 태실, 축성 등의 공무를 맡긴다.
시나브로 풍수의 중심은 도읍풍수에서 묘지 풍수, 마을 풍수, 비보 경관 등으로 옮겨간다. 수구(水口)막이, 돌탑, 장승, 솟대를 세우는 등 민속적인 비보풍수가 그것이다. 방풍림, 방재림은 물론 해안이나 섬지역에서는 ‘우실’과 종교신앙을 접합하는 사례도 늘어난다.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는 지리, 생리, 인심, 산수의 조화 등을 현지답사를 통해 기술한 지리서다.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도 풍수 사상과 긴밀하다.
특히 순창사람 신경준(1712 ~1781)이 썼던 ‘산수고(山水攷)’와 ‘강계고(疆界考)’ 등을 토대로 우리 국토를 산맥 중심으로 해석한 ‘산경표(山經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을 대간(大幹)으로 읽고 거기에 12지류를 정맥과 정간으로 읽으며 그 안의 도시와 강과 섬들을 배치하는, 즉 국토를 하나의 유기체로 읽는 산천 인식론이다. 이에 대응해 내가 고안했던 것이 해경표(海經表)론이다(2021년 8월 13일 본지 지면 외 여러 편의 해경표 담론 참고). 조선 후기 북학의 점진과 서학의 침투에 대응한 동학의 역설 등도 나는 국토개조론에 준하여 이해하고 있다. 주역으로부터 비롯된 선천과 후천의 개념이 부상하여 후천개벽론이 득세하였던 까닭을 살피는 까닭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조사라는 한계 속에서 풍수를 조선의 낡은 미신으로 타자화시켰고, 통치를 위한 민속, 심리, 공간 정보의 활용 쪽으로 재구성하였다. 오늘날에는 근대도시계획의 이행으로 철도, 도로 등 근대적인 토목 이론 속에서 해체하거나 주변화하였다. 그럼에도 아파트 방향이나 사무실 배치, 돈 들어오는 인테리어, 권력 풍수, 묘지 발복론 등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풍수 관념은 유지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풍수는 땅의 사상사일 뿐만 아니라 인문지리의 총체다. 민심이 천심, 즉 여론을 살피는 것 또한 풍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게 ‘5극3특’이다. 수도권 1극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국토를 5개의 초광역 경제권(5극)과 3개의 특별자치도(3특)로 재편하여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국가성장전략이다. 5개 초광역권은 수도권, 충청권, 광주전남권, 부울경, 대구경북권이고 3개 특별자치도는 강원, 전북, 제주다. 권역별로 전략산업(AI, 바이오, 반도체 등)을 지정해 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하고 KTX 및 광역철도망을 확충해 주요 도시를 1시간 생활권으로 조정하며 거점 국립대를 집중육성해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등, 도선국사로 말하자면 국토의 허한 곳을 비보해 국토와 민의를 재구성한다는 취지다.
인문적인 아젠다는 차차 구성해나갈 테지만, 이를 후천개벽이자 신풍수라고 부를 수 있다. 그래서다. 고려나 조선의 건국에 비하겠는가만, AI시대에 맞닥뜨린 지금의 형국이 문명전환의 기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토대개조의 명분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금의 형세를 치밀하게 살피며 특히 전국최초로 발족하는 특별시의 역할을 거듭 되새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5극3특. 필자 제공
5극3특 추진전략 설계도. 필자 제공
남도인문학팁
해경표(海經表), 전남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강의
5월 28일 전남문화관광해설사 특강(목포과학대)을 한다. 7월 1일 전남광주특별시가 발족하므로 전남이라는 접두어를 건 내 마지막 강의라고 할까.
나는 충청, 경상, 전라 삼남의 기운을 고스란히 수렴한 공간이 현재의 남도(전라도)라는 점을 매우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전남광주특별시가 해경표의 신풍수를 발화하는 선도 모델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라가 풍전등화일 때마다 떨치고 일어났던 곳이고, 지치고 힘든 이들이 몰려올 때마다 거두고 안아서 나라 전체의 ‘한’을 승화시켰던 곳이기 때문이다(동학 등 수렴과 발화 관련 내 남도론 참고).
5극3특을 도선국사에 이은 신풍수라고 할 수 있다면, 북한(조선)을 포함한 국토대개조의 비전을 이곳 남도에서 발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창했던 해경표는 한해륙의 산, 강, 바다, 섬, 포구, 물골을 매개로 근대 산업국가가 은폐한 여성성, 민중성, 해양성, 동양성, 생태성, 나아가 뉴미디어성을 복권하고 재구성하여 국토와 문명을 다시 설계하는 인문혁명이자 국토대개조론이다.
산맥 중심의 국토 인식을 물골 중심으로 보완하는데 그치지 않고 불에서 물로, 남성적 지배에서 여성적 돌돔으로, 서구 근대의 직선적 철학에서 동아시아적 순환과 비보풍수로, 가진 자에서 못 가진 자로, 재래식 언론의 중앙 송출에서 뉴미디어의 다중발화로 전환하자는 문명 대개조론이다.
특별시의 새 시장 선출이 왜 문명사적 혁명인가, 나아가 엘리트주의를 혁파하는 패러다임 전환인가에 대해서 차차 얘기하겠다. 해경표의 기초를 전남광주특별시에서 닦고 출발하여 그 지평을 장차 조선(북한)을 포괄하는 한해륙으로 확장시키자고 제안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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