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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심기 칼럼] 지금까지 정의로웠던 전쟁이 있었나

2003년 갓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이라는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 이라크 침공 후 동맹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파병 요청이 날아들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분기점은 대통령 담화문이었다. 당시 외교통상부가 올린 초안에는 이라크전을 ‘정의의 전쟁’으로 묘사했다.

[이심기 칼럼] 지금까지 정의로웠던 전쟁이 있었나

“정의로운 전쟁인지 모르겠다.”

2003년 갓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이라는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 이라크 침공 후 동맹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파병 요청이 날아들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분기점은 대통령 담화문이었다. 당시 외교통상부가 올린 초안에는 이라크전을 ‘정의의 전쟁’으로 묘사했다. 대통령은 삭제를 지시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파병을 결정했다. 반대는 거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사전 승인 없이 미국의 일방적 침공으로 시작한 전쟁이었다. “명분도 실리도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지층인 진보 진영의 반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저의 결정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했다. 훗날에는 이라크 파병을 두고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23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호르무즈해협에서 같은 질문에 직면했다. 물론 상황은 다르다. 당시 대규모 추가 파병 때는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였다. 다국적군 체제 아래 안정화와 재건 임무가 이뤄지고 있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현재 진행형이다. 확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란은 앞으로도 호르무즈해협을 끼고 살아갈 나라로 남을 것이다. 한국에 보복할 수단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파병 반대론의 명분이다. 한마디로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의 ‘No Thanks’ 발언을 트집 삼아 압박한 뒤 파병하면 미국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반발도 있다. 이른바 ‘조공 파병’ 프레임이다.

정부는 수세적이고 신중하다. “정해진 바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현지조사단 파견으로 논란이 일자 파병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고 물러섰다.

그러나 상황이 다르다고 국익을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까지 달라지는 건 아니다. 파병 여부를 떠나 호르무즈해협의 자유 통행이 한국의 중대한 국익이라는 ‘팩트’임은 확실하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70%에 육박한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 경제안보에 미치는 충격은 파괴적이다. 항로 안전은 한국이 누리는 ‘국제 공공재’다. 자유 항행을 핵심 국익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지키는 위험과 비용은 다른 나라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전쟁에 관여하는 문제와 우리 상선의 안전 항행을 확보하는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다.

정부는 트럼프의 압박 이전인 지난 4월부터 영국, 프랑스 등과 자유 항행을 위한 국제 공조를 협의해왔다. 당시에도 이 대통령은 “실질적인 기여”를 강조했다. 실질에는 군사적 기여가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질문도 ‘미국의 요구로 파병할 것인가’에서 ‘자유 통행을 지키는 데 한국이 부담해야 할 몫이 있는가’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파병 프레임에만 갇힌다면 찬성이 반대 여론을 넘어설 순 없다.

지금 한·미 관계에는 북핵 억지, 핵추진 잠수함 도입 등 민감한 안보 현안과 공급망 이슈까지 얽혀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국가 생존이 걸린 사안이다. 호르무즈해협 문제를 한·미 동맹과 분리해 보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은 “한·미 관계 측면에서 미국과 ‘패키지 딜’ 형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미국을 돕고 말고가 아니라 국제 수로의 통행 안전을 큰 명분으로 내세워 국론을 모아가야 한다”고 했다.

관건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서 한국 국익을 관철할 수 있느냐다. 한국 상선 보호, 해상 감시, 기뢰 탐색·제거, 수색·구조, 군수 지원 등 검토 가능한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활동 지역과 임무, 규모, 기간 등도 따져봐야 한다. 모두 외교적 해법이 필요하다. 외교는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국익을 위한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외교의 전설’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의 선택은 도덕과 실용주의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고 했다. 2003년 이라크 파병은 그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 결정이었다. 정의롭지 않은 국제 정치 현실 속에서도 국익을 지킬 선택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통령의 몫이다. 호르무즈해협에서 어떤 답을 내놓을지 이제 대통령의 시간을 지켜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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