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숙 국무총리가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공공기관 이전 및 공공기관 기능 개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일명 ‘공공기관 DIET 2026’)에 따라 대구 신서혁신도시가 변화의 분수령에 섰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의 통합, 케이메디허브와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의 일원화 등 대구 핵심 기관의 구조개혁이 확정된 가운데, 대구시는 30여 개 수도권 공공기관을 유치해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구상이다. 거대 공기업 기능 축소 우려와 보건의료 앵커 기관 유치 기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대구 혁신도시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109개 기관 통폐합 확정, 2차 이전은 원칙만 발표
한성숙 국무총리는 지난 3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과 함께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재정경제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해 제11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쳤으며, 전략적 구조개혁(15개)·유사중복기능 일원화(11개)·자회사 및 소규모기관 통합(83개) 등 전체 공공기관의 약 20%에 달하는 109개 기관을 감축하는 내용을 담았다.
같은 날 국토교통부는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원칙 및 추진방향’도 함께 공개했다. 다만 이는 수도권 잔류 최소화, 기존 혁신도시 중심 집적 배치 등 5대 원칙만 제시한 것으로, 수도권에 남아 있는 350여 개 공공기관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느 기관이 어느 지역으로 이전할지는 올해 4분기 중 확정될 예정이다. 즉 109개 기관 통폐합은 확정된 방안인 반면, 2차 이전은 아직 원칙 단계라는 점에서 두 사안의 진행 속도는 다르다.
대구 신서혁신도시는 이번 통폐합 발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섰다. 대구를 대표하는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와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케이메디허브)이 나란히 통폐합 대상에 이름을 올리면서다.
◆ 가스공사·케이메디허브 통폐합의 명과 암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키는 대목은 한국가스공사(정원 4천486명)의 통폐합이다. 정부 방안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울산 본사의 한국석유공사(정원 1천442명)와 통합돼 (가칭) ‘에너지자원공사’로 재편된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위기에 대응해 석유·가스를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통합 에너지 전략을 수립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통합공사의 본사 소재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대구·울산 등 관련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예상된다.
자산·매출 면에서 대구 최대 공기업인 가스공사가 통합 과정에서 본사 기능을 울산 등 다른 지역에 넘겨줄 경우, 대구 본사는 사업소나 지역본부 급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역 경제계에서 나온다. 이는 고숙련 인력 유출과 법인 지방소득세 감소, 신서혁신도시 상권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바이오·의료 분야에서는 케이메디허브(정원 405명)가 충북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정원 389명)과 통합돼 (가칭)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으로 재편된다. 대구시가 17년간 예산을 투입해 다져온 ‘메디시티 대구’의 주도권이 수도권 접근성이 좋은 오송으로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R&D·실증 기능이 분산되거나 축소되면 대구 혁신도시 내 입주 바이오 벤처기업 지원 체계와 청년 고급 일자리 창출 동력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
이 밖에 국립대구과학관은 국립광주과학관·국립부산과학관·국립강원전문과학관과 함께 (가칭) ‘국립과학관’으로 통합되고, 경북 상주의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도 국립생태원에 흡수 통합될 예정이어서 대구·경북 소재 국립기관 전반의 운영 방식 변화가 예상된다.
반면 대구 혁신도시에 본사를 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이번 개편에서 오히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을 흡수하는 통합 주체로 이름을 올렸다. 흡수 대상이 아니라 흡수 주체가 된 만큼, 이번 기능개혁이 대구 소재 기관에 일률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짚어볼 대목이다.
◆2차 공공기관 유치 카드로 손실 상쇄 가능한가
이 같은 통폐합 파장에 대응해 대구시는 수도권 잔류 공공기관 350여 곳을 대상으로 한 2차 공공기관 유치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구시는 기존 신서혁신도시 산업 기반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보건의료·헬스케어 및 첨단산업 관련 30여 개 기관을 핵심 유치 타깃으로 설정했다.
대표적인 유치 대상 기관으로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한국보건의료정보원,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등이 꼽힌다. 대구시는 이들 보건의료 규제·평가·시험 기관을 집적시켜 케이메디허브 통합 여파를 극복하고 국가 바이오·헬스케어 거점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번 통폐합의 구체적 대상 기관 배치나 2차 이전 대상 기관은 4분기 발표를 지켜봐야 하는 만큼, 대구시 구상이 실현될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전문가들은 2차 공공기관 유치가 기존 기관 통폐합에 따른 경제적·고용적 손실을 상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기능적 질적 발전’과 ‘정량적 규모의 한계’라는 두 시각으로 나뉜다.
질적 측면에서는 바이오·의료 전주기 밸류체인 완성 보건의료 앵커 기관 유치가 성사되면 산업적 시너지는 상당하다. 케이메디허브 통합으로 R&D 기능이 일부 분산되더라도, 신의료기술 평가·인허가를 담당하는 NECA나 의료기기안전정보원이 대구에 입주하면 ‘연구-임상-인허가-보험 등재’로 이어지는 원스톱 지원 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 국시원이 유치되면 매년 전국 보건의료인 수만 명이 자격시험·연수를 위해 대구를 찾게 돼 유동인구 유입 효과도 기대된다.
양적 측면에서는 거대 공기업 손실의 한계 반면 정량적 지표로 보면 한계가 뚜렷하다. 가스공사는 연간 매출 수십조 원 규모의 거대 에너지 공기업인 반면, 유치 대상 보건의료 기관들은 대부분 임직원 수백 명 안팎의 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이다. 이들을 다수 유치하더라도 가스공사 본사 기능 축소·이탈에 따른 법인 지방소득세 감소, 지역인재 의무채용(30%) 규모 축소를 전액 메우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구시와 지역 사회의 대응 과제
대구 혁신도시를 지역구로 둔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대구 동구군위군을)은 지난 3일 대구일보 기자를 만나 “공교롭게도 K-2 이전과 통폐합이 거론되는 신서혁신도시 내 기관들이 모두 자신의 지역구"라고 운을 뗀 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통합은 여당 정치권 반대로 추진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대구 소재 기관에는 ‘효율화’를 내세워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강 의원은 통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필요하다면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치적 반발 여부에 따라 통합을 강행하고, 유예하는 것은 원칙이 아닌 정치적 셈법에 따른 처리라고 비판했다.
대구시가 실질적인 ‘손익 플러스’를 달성하려면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첫째, (가칭) 에너지자원공사 통합 본사 유치와 케이메디허브의 대구 연구·실증 기능 보존이다. 유치전에만 몰두하기보다 기존 핵심 자산의 역외 유출을 막는 방어전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보건의료·산업 연계 앵커 기관의 패키지 유치다. 개별 기관의 단편적 이전에 그치지 않고 대구의 5대 신산업(모빌리티·로봇·헬스케어·반도체·ABB) 및 기존 혁신도시 인프라와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관들을 묶어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통폐합과 2차 이전이라는 두 갈래 정책은 대구 신서혁신도시에게 위기이자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거대 공기업 기능 축소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고부가가치 보건의료 앵커 기관을 유치해 ‘메디시티 대구’를 완성할 수 있을지, 이후 4분기 발표될 2차 이전 세부 계획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규현 기자 leekh122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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