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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선의 인물과 식물]윈스턴 처칠과 시가

나폴레옹의 이각 모자, 찰리 채플린의 지팡이, 체 게바라의 별이 달린 베레모처럼, 처칠 하면 중절모와 시가가 떠오른다. 어느 인물의 이미지는 그가 늘 지니던 물건과 겹치며, 개인의 취향을 넘어 한 시대의 표상이자 시각적 문장이 되기도 한다.

[이선의 인물과 식물]윈스턴 처칠과 시가

나폴레옹의 이각 모자, 찰리 채플린의 지팡이, 체 게바라의 별이 달린 베레모처럼, 처칠 하면 중절모와 시가가 떠오른다. 어느 인물의 이미지는 그가 늘 지니던 물건과 겹치며, 개인의 취향을 넘어 한 시대의 표상이자 시각적 문장이 되기도 한다.

중절모와 시가는 처칠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전쟁과 정치적 부침 속에서도 그는 시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논의한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에서도 루스벨트와 스탈린, 트루먼 곁에는 어김없이 시가를 입에 문 처칠이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시가를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처칠은 십대부터 담배를 피웠으나 한동안 끊었다가, 젊은 장교 시절 쿠바에 머물며 현지 시가의 매력에 깊이 빠졌다고 한다. 그가 특히 즐긴 상표로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라 아로마 데 쿠바’가 알려져 있다.

시가에는 궐련이나 전자담배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특유의 낭만과 여유가 있다. 길고 굵은 형태와 짙은 갈색에서 중후하고 강렬한 분위기가 배어난다. 처칠이 흔한 궐련을 피웠더라면 단지 ‘골초 정치인’이라는 인상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가는 하나의 소품을 넘어 담대하고 흔들림 없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그가 손에 든 시가는 때로 전장의 지휘봉처럼 보인다.

시가와 짓궂은 듯한 그의 표정은 묘하게 어울린다. 둥근 얼굴과 굳게 다문 입, 약간 찡그린 듯한 모습은 완강하면서도 익살스럽고 귀여운 영국 불도그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처칠의 반려견은 뜻밖에도 ‘루퍼스’라는 이름의 푸들이었다. 시가와 불도그가 전시 지도자의 강인한 이미지를 완성했다면, 푸들은 인간 처칠의 부드러운 면을 드러낸다.

처칠은 1932년에 낸 에세이집 <생각과 모험>에서 시가가 어색한 만남이나 협상 자리에서 침착하고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게 해줬으며,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평온하게 견디게 해줬다고 회고했다. 시가는 그의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주는 진정제였던 셈이다.

“언젠가 공정과 사랑, 정의와 자유에 대한 존중이 이 고통의 시대를 넘어설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움츠러들거나, 쓰러지지 말고, 절망하지 말라.” 노년의 처칠이 남긴 유언 같은 정치적 문장이다.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처칠은 ‘고귀한 인간적 가치를 옹호한 빛나는 웅변가’였으며, 그의 시가는 절망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한 인간이 지닌 신념의 표상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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