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학 분야에서 시작된 AI 활용…“이미 임상 표준”
진료실·병원 행정업무 등 풍경 바뀌는 중
확산 걸림돌은 보건의료 데이터 표준화 미비·보상체계 부재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원장 양재욱)은 최근 AI 기반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씽크(thynC)’ 솔루션을 도입해 스마트병동 구축에 나섰다.
[라포르시안] 국내 의료현장에서 인공지능(AI)이 영상 판독을 넘어 진료기록 작성, 환자 모니터링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부 영역에서는 진단 정확도 90% 이상, 판독 시간 30% 이상 단축 등 가시적 성과가 확인되면서 의료계는 AI를 더 이상 ‘보조 도구’가 아닌 핵심 인프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데이터 표준화와 수가 체계 등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의료의 가장 뚜렷한 성과는 영상의학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 등 주요 상급종합병원에서는 흉부 CT와 X-ray 분석 AI를 활용해 폐결절 등 이상 병변을 자동 탐지하고 있다. 이들 시스템은 폐결절 탐지 정확도 90~95% 수준을 기록하며, 초기 병변 발견률을 높이고 판독 누락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AI는 단순 참고 수준을 넘어 ‘세컨드 리더(second reader)’로 자리 잡고 있다. 의료진이 놓칠 수 있는 미세 병변까지 보완하면서 진단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판독 시간 역시 평균 20~3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업무 효율 개선을 넘어, 의료진 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도 평가된다.
최근 의료현장에서 체감도가 가장 높은 변화는 진료기록 작성 방식이다. 세브란스병원 등 일부 병원에서는 음성인식 기반 생성형 AI를 도입해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무기록 초안을 자동 생성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진료 이후 별도의 기록 작성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AI가 초안을 만들고 의료진이 이를 검토·수정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그 결과 진료기록 작성 시간은 30~50%가량 단축됐고, 외래 진료 이후 이어지던 추가 업무 부담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단순한 편의성 개선을 넘어, 진료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환자와의 대화에 집중하면서도 기록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AI의 효과는 중환자실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서울대학교병원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등은 AI 기반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패혈증이나 심정지 등 위험 상황을 사전에 예측하고 있다.
관련 연구에서는 AI가 위험 징후를 평균 4~6시간 먼저 탐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이 즉각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준다는 점에서 임상적 의미가 크다. 일부 사례에서는 중환자실 사망률 감소와 응급 대응 시간 단축 효과도 확인되고 있다.
복잡한 병원 행정 업무를 AI를 활용해 자동화함으로써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중앙대의료원 연구팀이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와 AI 기술을 결합해 보험 청구 사후 검토 과정을 자동화한 결과 평균 업무 처리 시간은 기존 120분에서 54분으로 약 55% 단축됐다. OCR을 활용한 청구 코드 감지 정확도는 검증 데이터 기준 100%를 기록했다. 단순 반복 업무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 고정밀 행정 자동화 가능성을 입증한 셈이다.
이처럼 AI는 단순 보조 기술을 넘어, 환자 생존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AI 활용은 병원 내부를 넘어 환자의 일상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웨어러블 기기와 연계해 만성질환 환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AI로 분석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 같은 방식은 재입원과 응급실 방문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 연구까지 포함하면 재입원율이 15~25% 감소한 사례도 보고된다. 이는 의료가 ‘치료 중심’에서 ‘관리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병원이 더 이상 특정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환자의 일상까지 확장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짚어보면 의료분야에서 AI 활용은 ▲진단 정확도 90% 이상 ▲판독 시간 20~30% 감소 ▲진료기록 작성 30~50% 단축 ▲위험 징후 최대 6시간 조기 탐지 ▲재입원율 최대 25% 감소 등의 효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AI가 의료 시스템의 효율을 구조적으로 개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3월 17일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해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전북대병원 등 주요 권역책임의료기관장들과 함께 '공공의료 인공지능 확산을 위한 정책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 출처"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확산 속도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데이터와 제도다. 병원마다 데이터 형식과 품질이 달라 AI 활용에 제약이 발생하고 있으며, 표준화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AI 활용에 대한 별도의 수가 보상체계가 부재한다는 점도 AI 확산의 걸림돌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도입에 따른 경제적 유인이 제한적이다. 여기에 오진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별도 보상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의료현장의 AI 활용은 비용 절감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행 건강보험 체계에선 AI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동일한 수가가 적용된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등 주요 대형병원들은 영상 판독 AI와 중환자 예측 시스템 등을 도입해 판독 시간 단축과 환자 안전 개선 성과를 거두고 있다.
결국 병원은 AI 도입과 유지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추가 수익을 얻지 못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AI는 ‘수익 창출 도구’라기보다 ‘비용 효율화 수단’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AI 도입 성과는 확인됐지만 확산은 제한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현재 정부 정책은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디지털헬스 산업 육성, 인허가 체계 정비 등 기술 기반 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정책의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핵심은 기술 개발 지원을 넘어 실제 임상 적용을 촉진할 수 있는 보상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AI 활용에 대한 수가 신설, 임상 효과 평가 기준 마련, 책임과 윤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정립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AI 기술 자체를 보상할 것인지, 아니면 의료 결과 개선이라는 성과를 중심으로 수가 보상을 할 것인지에 따라 제도의 방향성은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AI 활용의 임상 효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 마련과 함께 수가 산정 방식, 책임 소재, 데이터 표준화 등 제도적 기반이 함께 정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부터 제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인공지능 기본의료 추진단'을 발족하고, 올해 상반기 발표를 목표로 '인공지능 기본의료 전략(안)'을 수립 중이다.
이 전략의 핵심 과제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1, 2, 3차 의료기관 간 진료 연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국민이 전국 어디서나 필요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공공의료 인공지능 고속도로’를 구축하는 데 있다.
복지부는 ‘인공지능(AI) 응용 제품 신속 상용화 지원 사업(AX-sprint)’ 일환으로 ‘만성질환자 대상 보건의료 전주기 AI 전환(AX) 사업’도 5월부터 추진한다. 이 사업은 국민의 일상 속 건강관리부터 대학병원급에서 제공하는 전문적인 의료서비스까지 보건의료 전주기에 걸쳐 AI 전환 적용을 목표로 한다. 총 90억 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되며, ‘AI 기술을 통한 만성질환자 건강행동 변화 과제 등 5가지 유형(총 6개 과제)을 대상으로 활용 실증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이뤄진다.
5가지 과제 유형을 보면 ‘AI 기술을 통한 만성질환자 건강행동 변화 과제’는 혈당, 혈압 등 개인 유래 정보(라이프로그) 등 통합 분석해 맞춤형 건강행동 진단을 제공하며, 개인별 건강 격차 해소와 개인 건강관리 증진을 실증할 예정이다. 이 과제는 2개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총 예산 지원 규모는 30억 원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정부는 인공지능을 지역 간 의료격차, 필수·공공의료 공백을 해소하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핵심 동력으로 확신하고 있다”며 “인공지능 협력 운영 체계 구축과 재정 지원, 규제 완화 등의 과제들을 인공지능 기본의료 전략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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