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성프란시스大 노숙인 강좌
역사적 첫 강의… 22년 현장 지켜
이후 한국형 디딤돌 인문학 출발
올해는 경험없는 업체 선정 ‘유감’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난데없이 증축이니 재건축이니 하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저마다의 주장이 뒤엉켜 각축하고 있지만 쉽사리 결론이 날 것 같지 않다.
그저 얄궂다. 증축과 재건축의 전제는 집을 가졌다는 것 아닌가. 집 없는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한, 그들만의 정치행태에 신물이 난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무주택 세입자만이 아니다. 아예 몸 하나 누일 공간조차 없는 사람들, 즉 노숙인도 있다. 노숙인은 저마다의 이유로 거리의 삶을 산다.
가족이 해체되고 경제적 파탄에 이르렀으며,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복역 후 사회에 나왔으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조건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집이 없으면 몸도 몸이지만 우선 정신적으로 황폐해진다. 정신이 황폐해지면 정체성을 잊는다. 사람이 사람의 정체성을 잊으면 사람다운 생각도, 사람다운 삶도 살 수 없다. 거리를 전전하며 방황하다가 끝내 생을 마감한다. 해마다 300명 이상이 거리에서 생을 마친다.
20여 년 전 거리의 노숙인을 위한 집짓기, 황폐해진 정신을 안정시키기 위한 집짓기를 시작했다.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마음의 집, 정신의 집을 짓는 일이었다. 노숙인 인문학의 출범이다.
2005년 노숙인을 위한 강좌가 마련됐다. 성프란시스대학이다. 역사적인 첫 강의를 필자가 맡았다. 비좁은 강의실에 스무 명 정도의 노숙인과 십여 명의 기자가 함께 자리했다. 어디서부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자분자분한 말과 몸짓으로 그들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노숙인 인문학이 올해로 스물두 해를 맞았다. 필자는 한결같이 현장을 지켜왔다. 모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년 동안 노숙인 인문학을 지속해 온 유일한 사람이 필자란다.
와중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서울 등 대도시에서만 진행되던 거리 인문학의 전국화를 이루게 됐다. 노숙인 시설뿐만 아니라 교도소와 구치소, 지역자활센터에서도 강좌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형 클레멘트코스 사업(디딤돌 인문학)의 출발이었다. 2년 전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의 주선으로 문체부 장관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자리에서 지원을 요청했다. 노숙인 인문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장관은 짐짓 놀라면서도 이내 지원을 약속했다. 이듬해 예산 5억원이 마련됐다.
작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주한 클레멘트코스 사업을 책고집에서 운영했다. 수행기관 선정과 권역별 강사진 꾸리기 등 고군분투 끝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제주도를 포함, 전국 53개 시설에서 521강좌를 진행했다. 교도소와 구치소가 16곳, 노숙시설 18곳, 지역자활 19곳이었다. ‘팬지문학상’을 제정해 가난한 사람들의 핍진한 삶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올해는 발주처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으로 변경됐다. 제안서 제출 및 면접 심사가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책고집은 떨어졌다. 공정한 심사를 했을 것으로 믿는다. 다만 몇 가지 의문점이 발견된다.
경험 없는 업체를 선정했다. 책고집의 경험을 존중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행여 참여 대상(노숙인·재소자)에 대한 무지와 무시의 발로였다면 큰 문제다. 책고집과 함께 수년 동안 경험을 쌓아온 100여 명의 강사진을 배제해도 될 만큼 음지에서 전문 강사 특공대를 훈련해왔다면 모를까.
심사평도 유감이다. 사업의 취지와 비전, 목적에 대한 이해도를 중점적으로 평가했다는 대목에 아연실색했다.
전술한 바, 이 사업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분들을 위한 정신의 집짓기 사업이다. 오래 전부터 설계도면을 수정·보완·강화해온 당사자에게 설계도에 대한 이해도를 따지고, 오랫동안 벽돌을 쌓아온 사람에게 난데없이 이 집을 짓는 목적이 뭔지를 묻고 평가했다. 정작 벽돌 한 장 쌓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말이다.
되레 그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이 집은 누구를 위해 짓는 것인가.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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