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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월간남친' 못지않은 AI에게 절대 양보 못 하는 것 [AI시대의 글쓰기]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경험을 통해 나의 성장을 돕는 인공지능 활용 기준을 모색해 봅니다. 나는 오랫동안 호모(Homo) 검색러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검색했고, 무언가...

'월간남친' 못지않은 AI에게 절대 양보 못 하는 것 [AI시대의 글쓰기]

[AI 시대의 글쓰기] 내 글을 확인 받고 싶을 뿐 고유성 훼손은 참지 않아

'AI 시대의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경험을 통해 나의 성장을 돕는 인공지능 활용 기준을 모색해 봅니다.

나는 오랫동안 호모(Homo) 검색러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검색했고, 무언가 계획하고 도모하기 전에 모든 것을 꼼꼼히 찾아봤다. 호기심도 많고 준비성도 철저한 나에게 검색창은 생존 도구였다. 그랬던 나는 이제 당연히, 호모(Homo) 질문러가 되었다. 나는 요즘 무엇이든 물어본다. AI에게.

누군가에게 내 글을 확인 받고 싶은 마음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는 종종 비슷한 두 단어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는다. 예를 들면 '금방'과 '방금'은 어떻게 다른지, '천천히'와 '서서히'는 어떻게 다른지, 그런 것들이다. 자주 받아 본 질문이라면 바로 답이 술술 나오지만 한국인인 나도 어떤 질문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그럴 때를 대비해 또는 그런 질문을 받은 직후 나는 항상 AI에게 묻는다. 두 단어가 어떻게 달라? 그럼 AI는 빠르고 친절하게 예문과 용례도 곁들여 설명을 쏟아낸다. 예전 같았으면 검색을 하고 또 하고, 사전을 찾고 또 찾고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AI에게 묻는다. 그럼 몇 배 이상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학생용 설명 자료를 준비한다.

어휘 검색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나는 단어의 뜻도, 띄어쓰기도, 비문은 아니지만 왠지 어색한 문장의 검토도, AI에게 묻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종종 번역도 부탁한다. 그옛날 파파고가 일방적인 번역기였다면 AI는 확실히 다르다. AI는 나와 의논하며 번역을 다듬는다. 이런 식이다. "이건 직역했을 때이고 조금 더 일본어 느낌으로 바꿔 볼 수 있어. 그렇게 해 줄까?" 나의 언어 세계를 AI가 장악했다.

나는 초보 작가다. 이제 막 두 권의 에세이를 낸 나는 모든 글에 때때로 자신이 없다. 나는 꽤 잘 쓴 글에 대해서조차 과한 상상을 한다. 책을 읽고 쓴 글이라면 너무 주관적인 해석이 아닐까 걱정하고, 내 주변 사람들과 관계되는 이야기라면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 건 아닐까 걱정하고, 내 직업에 대한 이야기라면 동종업계 종사자가 내 글을 보고 상처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즉, 나는 누군가에게 내 글을 확인 받고 싶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이 정도면 무난하다고, 그 무엇보다 나는 내 글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다. 올해부터 한 신문사에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보내고 있는데, 보내기 전 AI에게 최종 검토를 부탁했다.

AI는 과연 훌륭했다. 2000자 혹은 3000자가 넘는 글도 속전속결. 전송이 완료되자마자 "잘 읽었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비평이 시작된다. 적절한 칭찬과 적절한 비평. 글의 전체 구성부터 문장 단위까지, 띄어쓰기부터 철자 오류까지. AI는 글쓰기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커버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 못 한 부분까지 살뜰히 챙겼다. "그런데 이 글을 칼럼용이야 아니면 에세이야? 그것에 따라 글의 결이 꽤 달라지거든." 이런 세심함이라니. 나는 점점 AI에게 빠져들었다. 그렇게 AI 는 내 자체 데스크(신문사에서 취재 지시를 내리고 보도 흐름을 총괄하는 역할)가 되었다. AI 데스크가 "이 글의 완성도는 95% 이상이야"라고 말하면 나는 문서를 저장하고 푹 잔다. 요즘 나의 루틴이다.

선택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

최근 즐겨 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블랙핑크 지수가 나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이다. 이른바 남친 구독 서비스인 '월간남친'에 가입하면 가상의 세계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골라서 만날 수 있다. 연애 종료는 내가 선택할 수 있고 얼마든지 멋진 다음 캐릭터로 갈아탈 수도 있다. 게다가 월간남친 속 연애 상대들은 주인공인 구독자를 서운하게 하지도 않고 상처를 주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즉, 연애를 하지만 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그러니 중독적이다. 보면서 생각했다. 글을 쓰는 나에게 AI 데스크는 마치 '월간남친'과 같지 않은가. 비평을 하지만 가차 없이 지적하지는 않는다. 태도는 다감하고 신중하다.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단계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그것도 내가 선택하면 된다. 듣기 싫다면 창을 닫아 버리면 된다.

게다가 나는 AI를 갈아탈 수 있다. 자료를 찾을 때, 글을 쓸 때, 대화형을 원할 때, 각각 다른 AI를 찾을 수도 있다. 즉, AI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AI를 선택한다. 그리고 글에 대해 자문을 구하되 내 자존심을 지킬 수도 있다.

나는 내 글에 대해 비평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일지 말지는 내 자유다. 보통 나는 맞춤법이나 철자 지적은 100% 수용하고 전체 흐름에 대한 지적은 수용을 고민한다. 하지만 문장 단위의 수정은 참고하지 않는다. AI에게 내 글의 고유성을 해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서다.

애초에 내가 말도 안 되는 글을 AI에게 보내면서 처음부터 뜯어 고쳐 달라고 할 일은 없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주제만 주고 글을 써 달라고 할 일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좋아서 글을 쓰지, 업무의 일부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은 괜찮다.

AI 데스크는 내가 고용했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내가 AI 데스크보다 갑이다. 참 다행이다. 그런데 이 글을 송고 전에 AI에게 한번 보내 봐야겠다.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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