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도산성 아래에 꾸렁다리(尸臭橋)가 있었는데 임란 때 마을의 이 장군이 때려죽인 왜군들의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바로 아래에 백정 등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특수부락이 있는데 당시 항왜의 후손들이다. 그들의 언어까지 아직 왜음(倭音)의 발음대로 나온다" 1923년 잡지 '개벽'에 '울산만초(蔚山漫草)'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울산에도 밀양 같은 '항왜촌(降倭村)'이 있었는지 확정하기 어렵지만 흥미로운 대목이다.
1609년 '울산부호적대장'은 구체적인 이름과 숫자로 항왜의 존재를 증언한다. 호적에는 범서와 청량리에 각 4명, 온양에 1명 그리고 웅촌에 4명 등 13명의 항왜가 기록돼 있다. 신시로(信時老), 고질비(古叱非), 우시로기(右時老己)라는 이름과 나이와 가족관계, 처의 신분, 거주지, 이주 사실, 관직과 품계까지 나온다. 항왜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으로 조선에 왔다가 투항한 사람들로 귀화왜·향화왜(向化倭)로 해석되기도 했다. '일은 고달픈데 배는 고프고, 수자리는 힘들고, 사역은 과중하고, 장수는 포악하다' 등 일본군 내부 문제로 탈영한 경우가 많았다. 귀순 왜인은 보통 투화왜(投化倭), 향화왜(向化倭)라고 한다. 또 표류민을 송환하는 등 공을 세운 왜인들에게 벼슬을 주기도 했다(受職倭人). 반면에 왜군에 협력하고 첩자로 활동하며 적을 도운 조선인을 순왜(順倭)라 했다. 실록 등 기록에 남아 있는 울산의 순왜는 '적에 가담했다가 도망하여 돌아온 두모악(豆毛岳)·김담손(金淡孫)과 적에게 기밀을 전한 서생포 해척(海尺) 하감동(河甘同), 그리고 왜장의 여인으로 생활했던 울산 사가의 노비(私婢) 억대' 등이다.
"적에게 붙은 해척 하감동을 잡아 물었더니, 청정이 서생포에 있을 때 적에게 투항해 우리나라 배의 제도로 배 한 척을 만들어 바쳤다고 하였다"(선조실록 86권, 선조 30년 3월 24일) 울산에 정착한 항왜 이전에 또 다른 '이방인'인 야인들이 있었다. 17세기 울산 호적에 '향화인(向化人)'으로 기록된 사람들 즉 조선 초 귀화한 여진족의 후손이다. 그들의 본관은 흑룡강, 대원, 대원월강 등이다. 이름과 성은 대부분 조선식으로 바뀌었지만, 호적은 그들을 여전히 '향화인'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표시했다. 입향조가 명나라 장수·군인이거나 유민의 후손은 특별히 황조인(皇朝人)이라 한다.
영웅의 혈루가 마르지 못한 두 성지(1923년 개벽 8호 '울산만초'). 김잠출 제공
1609년 울산 호적에 따르면 귀화야인은 20호, 33인의 북방계 향화인이 확인된다. 훼손된 부분의 11명을 더하면 당시 울산 거주 향화인의 총수는 44명이다. 대부분 농소(23명, 12호)에 집단 거주했고 나머지는 유등포(3호), 온양(5호)에 살았다. 농소 향화인은 모두 4대째 가계를 이어오는 대원(大元)이 본관인 향화인들이었다. 대부분 자기들끼리 혼인 관계를 유지했고 조선인 마을의 중심부와 떨어져서 그들만의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한다. 반면에 유등포와 온양에는 다수의 흑룡강 본관 향화인이 거주했는데 농소에 비해 조선인과의 혼인 비율이 높고 조선인의 이웃에 거주했다.(이옥빈, 논문. 역사와 경계, 2015) 조선 정부는 향화인 등 귀화인에게 집과 농토를 주고 세금을 면제하는 등 포용 정책을 펼쳤지만, 동시에 거주와 교류를 통제했다. 받아들이되 구별했다.
귀화 야인의 후손 가운데에는 임란 때 왜적과 싸워 공을 세운 이들과 선무원종공신으로 책봉된 사람이 있어 주목된다. 임진왜란 당시 군공을 세운 귀화 야인 후손 4명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봉해졌다. 귀화 왜인 2명도 '左防禦使陣 從軍'으로 참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평소에는 '이방인'이라 차별받고 변방으로 취급당했지만, 나라와 지역이 가장 위태로울 때,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총칼을 들고 진정한 '울산 사람'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역사 속의 울산은 이방인을 포용하는 개방의 땅이었다. 통일신라 시기 개운포에 나타난 처용은 국제적 교류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서축 아육왕이 보낸 배에 타고 있던 인도인들과 조선시대 항왜와 향화인, 표류민과 무역상도 울산을 오갔다. 제주 두모악과 근대 시기 일본인, 서양인 선교사와 선원, 포경인들이 왔다. 1960년대 '팔도 합중국'에 더해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온 노동자와 유학생, 이주민들이 울산의 산업과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어쩌면 울산의 '다문화' 역사는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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