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KBC 광주방송 서울광역방송센터가 위치한 '파크원'의 도로명 주소입니다. 정치권 돌아가는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이에 대한 느낌과 단상을 진솔하고 가감 없이 전하고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컷오프' 이진숙 "저 개인에 대한 능멸 넘어 대구시민에 대한 모욕, 배신...해괴"
▲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3일 오전 국민의힘 대구시당 회의실에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결정한 자신의 대구시장 후보자 컷오프(공천배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엄청 화가 많이 난 모양입니다.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얘기입니다. 엄청 화가 많이 난 거를 영어로는 흔히 'mad'라고 쓰는데, '미친'(crazy), '제정신 아닌'(insane)이라는 뜻도 아울러 있습니다. mad. 화난. 미친.
암튼, 이진숙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이정현 위원장이 자신을 컷오프 시키자 어제(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에 대한 컷오프를 '해괴한 컷오프'라고 아주 세게 성토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컷오프는 저 개인에 대한 능멸일 뿐 아니라 대구시민들에 대한 모욕이자 대구시민에 대한 배신이다."
단어들이 셉니다. 근데 묘하게 아주 유명한 한국영화 대사들이 겹쳐집니다.
우선 '배신'이라는 대사에선 영화 '넘버 3' 송강호의 저 유명한 대사. "배.배.배. 배신이야. 배신. 배반. 알았어"
'모욕'이라는 단어에선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피칠을 한 이병헌과 김영철 씨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능멸'은 좀 덜 유명하긴 한데, 영화 '광해'에서 '진짜 광해군' 이병헌이 자신의 옷을 벗겨 화살 맞은 상처를 확인하려는 이조판서를 향해 "네놈이 감히 나를 능멸해? 내 반드시 너를 참할 것이다" 소리치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한 문장에서 저토록 유명한 한국영화 대사들을 떠오르게 하다니, 재주라면 재주입니다.
이진숙 전 위원장의 화에는 본인 나름대론 이유가 있습니다.
대구시민들이 자신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데, 이대로면 대구시장은 따 놓은 당상인데, 도대체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자신을 자르냐는 겁니다.
◇ "여론조사 압도적 1위...작대기만 꽂아도 당선, 대구시민 애국심 자긍심 깡그리 무시"
▲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결정에 따라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경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포함된 4차례의 여론조사에서 저는 모두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가장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2위, 3위 후보의 세 배에 이르는 지지율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는 것이 이진숙 전 위원장의 항변입니다.
그러면서 본인에 대한 컷오프를 '해괴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런 해괴한 공관위의 컷오프는 저 개인에 대한 능멸일 뿐 아니라 저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신 대구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대구시민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다"
"대구시민들은 선택할 자유를 강탈당했다. 시민들이 저에게 '공천만 받아오세요, 찍어드릴게요'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뜻을 알게 됐다. 시민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중앙당에서 압도적 1등 후보도 잘라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민들은 이진숙을 1위로 밀고 있지만 중앙에서 '안 돼'라고 하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러니까 TK에서는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세상...자유민주주의 영토 줄어, 대한민국 전역 파란세상 될 판"
자신을 컷오프한 국민의힘을 향해 한껏 날을 세운 이진숙 전 위원장은 현 정국을 '체제전쟁'으로 규정하면서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서 대법관이 무더기로 늘어나고 공소취소가 계획되는 세상이 됐다"고 이재명 대통령도 겨냥했습니다.
"기득권 세력이 만든 그들만의 세상. 자유민주주의의 영토는 점점 줄어들고 대한민국 전역이 파란 세상이 될 판"
이라는 우려도 토해냈습니다.
"취임 이틀 만에 탄핵을 당하고 자동 면직된 다음 날 체포되고 수갑까지 찼던 제가 압도적 1위 후보로 컷오프까지 당하면서 이제 3관왕이 됐다"
는 기염 비슷한 것도 토했습니다.
취임 이틀 만에 탄핵, 이거는 방통위원장을 말하는 것 같고. 체포 수갑 얘기는 지난해 10월 2일 공직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법원 체포영장이 발부돼 경찰에 체포되면서 영등포경찰서에 압송된 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탄핵, 체포, 컷오프. '3관왕'이라고 합니다. '보수 여전사'를 칭할 만합니다.
◇ 탄핵, 수갑체포, 컷오프, 3관왕..."이재명이 자르고 싶었던 이진숙을 국힘이 잘라"
▲ 국가공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해 10월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압송되며 취재진에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숙 전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에서 '대통령' 호칭도, 존칭도 다 빼고
"이재명이 자르고 싶었던 이진숙을 국힘이 잘랐다. 민주당의 잠재적 후보 김부겸이 자르고 싶었던 이진숙을 국힘이 잘랐다"
고 '이재명이'를 빌어서 재차 '국힘'을 성토했습니다.
이재명이. 본인을 이재명의 적수나 이재명과 맞서 싸울 보수의 전사로 여기고 포지셔닝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믿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묘한 기시감이 듭니다.
영등포경찰서에 압송될 당시 이진숙 전 위원장은 경찰서 포토라인에 서서 언론 카메라들을 향해 수갑 찬 묶인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저 이진숙. 여기 수갑 차고 있습니다"라며 "이재명이 시켰습니까. 정청래가 시켰습니까. 아니면 개딸들이 시켰습니까"
라고 외쳤습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고 얼굴은 사뭇 비장했습니다.
"방통위 없애는 것도 모자라 이제 저 이진숙에 수갑을 채우는 것입니까. 이재명이 시켰습니까. 개딸이 시켰습니까"
◇ "이재명이 시켰습니까. 개딸이 시켰습니까"...'전국구' 이진숙, 대구시장 목전에서 물거품?
보수 방송 패널 서정욱 변호사 말을 인용하면 저 퍼포먼스로 이진숙 전 위원장은 '전국구'가 됐습니다. 대구시장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니, 보수 본진 대구도 열렬히 '이진숙'을 호응해 준 것 같습니다.
이제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인데. 이진숙 전 위원장 입장에선, 모두에 언급한 mad,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진숙 전 위원장, 가만히 못 있겠는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여겼는지 오늘(24일)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찾아 공관위에 컷오프 재심요구서를 제출했습니다.
◇ "자유우파 심장 대구 지키고 싶어"...국힘 공관위에 컷오포 재심요구서 제출
▲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결정에 따라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경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당사 앞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회견에서 이진숙 전 위원장은 "대구시민들이 저 이진숙에게 2위와 두 배, 세 배차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는 것은 자유우파의 심장 대구를 지키는데 이진숙 당신이 앞장서 달라는 요구"라고 일종의 '소명론' 비슷한 걸 주장했습니다.
"전쟁 속 포탄도, 더불어민주당의 근거 없는 탄핵도, 이재명 정권의 강압적 수갑도 이겨냈다"며 "대구를 지키고 싶다. 자유민주주의 자유우파의 심장 대구가 다시 강한 대구로 저 이진숙과 함께 대한민국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
고 이진숙 전 위원장은 거듭해서 호소했습니다.
앞서서 화난, 미친, mad 얘기를 잠깐 했는데 요즘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쓰이고 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앞에 '미친'은 미칠 '광'(狂) 자를 쓰고 뒤에 '미친'은 미치다, 도달하다 할 때 '급'(及) 자를 씁니다.
◇ 어지러운 정치판...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
▲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결정에 따라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경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당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 도달할 수 없다. 뭐든 미칠 정도로 열중해야 이룰 수 있다는 뜻 정도로 쓰이는데, 중국 고사에서 유래했거나 출전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말 같습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한다. 미칠 수 없다.
개인적으론, 사마천이 '사기'에서 "굴평은 올바른 도리를 곧게 행하며 충성을 다하고 지혜를 다해 그 군주를 섬겼으나, 참소하는 자의 이간질로 곤궁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고 평한 초나라 굴원이 쓴 '어부사'(漁父辭)의 유명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거세개탁아독청(擧世皆濁我獨淸)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중인개취아독성(衆人皆醉我獨醒) 천하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구나. 라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이정현 공관위원장이 이진숙 전 위원장이 낸 재심청구서를 받아들일지. 그것과 별개로 정치권에선 이진숙 전 위원장을 대구시장이 아니라 대구 보궐 국회의원으로 쓰려는 포석이다. 같이 대구시장 컷오프 당한 6선 주호영 의원이 대구시장 무소속으로 나올 거다. 주호영 의원 지역구엔 한동훈 전 대표가 나갈 거다. 주호영 의원과 한동훈 전 대표가 합종연횡할 거다. 그렇게 되면 대구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이진숙 위원장도 무소속으로 출마 못 할 게 뭐가 있냐. 탈당하고 나갈 것이다. 여기에, 아니다. 이진숙 전 위원장의 수도권 경기지사 차출설. 그렇게 되면 단숨에 대선 주자급 되는 거다. 정말 별의별 '설'과 얘기들이 나돕니다.
흔히 정치는 생물이고 정지판이 원래 그렇다고 하지만 어지럽습니다. 정녕 미치지 않고는 미칠 수 없는 걸까요. 누가 혼탁하고 누가 깨어 있는 걸까요. 누가 취해 있고 누가 깨어 있는 걸까요. 다 취해 있는 걸까요. 그런 구분 자체가 의미 없는 걸까요.
암튼. 방통위원장 탄핵, 공무원법 위반 등 수갑체포, 대구시장 컷오프, '3관왕'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의 정치적 행보와 결과가 궁금하긴 합니다. 불광불급. 미치지 않고는 미칠 수 없다. 사람들이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재광의 여의대로 108'이었습니다.
네이버 다음카카오 포털 및 유튜브 검색창에 "유재광의 여의대로 108"을 치면 더 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