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에서 일면식도 없는 10대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가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23)가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성범죄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법정에서 처음 인정했다. 수사 단계에서 줄곧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검찰 보완수사로 성범죄 관련 핵심 증거가 잇따라 확보되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경찰의 부실·은폐 수사 의혹으로 자칫 일반 살인 사건으로 마무리될 뻔했던 사건이 검찰 수사로 뒤집히면서 보완수사권 존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3일 광주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이정호)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장윤기 측 국선변호인은 강간 등 살인 혐의에 대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장윤기도 재판장이 변호인 의견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네”라고 답했다. 재판부는 이달 27일 오전 10시 증인신문을 이어가기로 했다.
13일 오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고(故) 이채원 학생 추모 모임이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의 두 번째 공판을 앞두고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장윤기가 강간 목적 살인을 인정한 것은 5월 5일 체포 이후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자살을 결심했다” “누군가를 데려가려 했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해왔다. 첫 공판에서 검찰이 보완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범죄 목적에 대한 입장을 유보했다. 이달 7일 제출한 반성문에도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사과만 담겼을 뿐 성범죄 목적은 언급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핵심 증거를 확보하자 장윤기가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장윤기가 범행 당일 인적이 드문 곳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세운 뒤 조수석 뒷문을 열어놓고 피해자를 뒤에서 제압한 사실을 밝혀냈다. 문을 닫는 과정에서 묻은 피해자의 혈흔과 피해자를 묶기 위해 준비한 것으로 추정되는 케이블타이도 확보했다. 장윤기는 변호인과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뒤인 이달 10일 법원에 성범죄 목적을 인정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이날 검찰은 케이블타이가 발견된 차량의 현장 감식 영상과 장윤기의 자취방에서 발견된 훼손된 리얼돌 관련 과학수사 보고서를 추가 증거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범행 장면이 담긴 영상 등 일부 증거조사는 내용의 잔혹성과 피해자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유족 측은 장윤기의 태도 변화를 ‘형량을 낮추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피해자 측 김문석 변호사는 재판 직후 “범행 목적을 인정한 것은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양형을 낮추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추가 증거가 드러나고 주변인으로 수사가 확대된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법원에 사형선고를 촉구했다.
장윤기 사건의 증거를 인멸한 혐의 등을 받는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장이 8일 오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 심사)에 출석한 뒤 법정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보완수사권 존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날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법조계 인사들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할 경우 부실 수사를 바로잡을 장치가 사라질 수 있다며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고 대법원 역시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일방적인 폐지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경찰의 부실·은폐 수사 의혹에 대한 수사는 수사 실무진을 넘어 지휘 라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광주지검은 이날 증거인멸과 증거인멸 방조,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받는 전 광주 광산경찰서 형사과장 A 경정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사건 수사팀을 지휘했던 형사과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검찰은 현직 경찰인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증거를 없애는 과정에서 수사팀과 유착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 특별수사단 또한 구속된 광산경찰서 수사팀장과 팀원, 광주경찰청 형사과장, 광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 등 7명을 상대로 조사에 나섰다. 당시 광산경찰서장이 강간 목적 살인 혐의 적용을 막았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한 만큼 경찰 지휘 라인이 사건 축소에 관여하거나 이를 묵인했는지가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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