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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가 ‘부활 록’이라는 장르 될 때까지 부를 것”

5집 이후 30년 만에 부활의 정규 음반 보컬로 이름을 다시 올리게 된 박완규는 “때로는 ‘이게 대체 무슨 록이냐’는 뾰족한 공격도 받았지만 부활은 묵묵히 자신만의 색을 이어왔다”며 “AI가 떠오를수록 아날로그...

“우리가 ‘부활 록’이라는 장르 될 때까지 부를 것”

부활, 데뷔 40주년 맞아 14집 발표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달 28일, 밴드 부활이 정규 14집 음반명(Where Is Here)으로 던진 물음이다. 2012년 13집 이후 14년 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이자 올해 데뷔 40주년이란 묵직한 의미가 담겼다. 오는 7월 11일 서울 올림픽홀을 비롯해 김해, 전주, 등에서 데뷔 40주년 전국 투어도 개최한다.

최근 14년 만의 정규 앨범을 발매한 밴드 부활. 왼쪽부터 현 멤버 최우제(베이스), 채제민(드럼), 김태원(리더·기타), 박완규(보컬). 김태원은 “‘록은 배고파야 한다’는 말은 영혼의 배고픔을 뜻하는 거다. 우린 위장이 굶주리면 몸만 상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밴드”라며 웃었다. /고운호 기자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부활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멤버들(리더 김태원, 보컬 박완규, 베이스 최우제, 드럼 채제민)은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한 ‘안과 밖’인지를 묻고 싶었다”고 했다. 밴드의 유일한 원년 멤버이자 부활의 곡들을 직접 써온 김태원은 이번 앨범 소개에 특히 “딸과 함께 봤던 영화 ‘스노우 맨’의 감동을 담으려 했다”고 썼다. 그는 “안과 밖은 주류와 비주류, 혹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것들을 구분하는 선일 수도 있다”면서 “눈이 녹아야 화려한 꽃이 피는 봄이 오지만, 녹아내리는 눈을 보며 슬픔을 느끼는 순수함도 소중하다.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선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구분이 어렵다는 생각으로 곡을 썼다”고 했다.

14집의 본래 수록곡은 총 10곡이지만, 이번에는 5곡만 담아 ‘파트1’으로 먼저 발매했다. 나머지 5곡은 하반기에 ‘파트2’로 나눠 발매한다. 멤버들은 “요즘처럼 노래들이 빨리 소모되는 환경에서 한꺼번에 곡들을 쏟기엔 너무 아까웠다”고 했다. “타이틀곡만 수백 번 고치며 전체 제작에는 7~8년이 소요됐다”고 했다. 김태원은 “마치 4시간짜리 장편영화를 4분짜리 예고편만 보고 넘어가는 것처럼, 1~2곡만 주목받고 나머지 곡은 외면받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1986년 1집 앨범으로 데뷔한 부활의 음악들은 늘 ‘한국형 슬로우록’을 개척했다는 찬사를 받아왔다. ‘네버 엔딩 스토리’ ‘희야’ ‘사랑할수록’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서정성’이 늘 곡의 뼈대였다. 5집 이후 30년 만에 부활의 정규 음반 보컬로 이름을 다시 올리게 된 박완규는 “때로는 ‘이게 대체 무슨 록이냐’는 뾰족한 공격도 받았지만 부활은 묵묵히 자신만의 색을 이어왔다”며 “AI가 떠오를수록 아날로그 소리의 마지막 주자라는 우리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태원은 “부활 10집 음반명도 ‘서정’이었을 만큼, 난 이 감정을 아름답게 여긴다”며 “진짜 어른은 어른인 척을 안 한다. 서정과 순수함을 유지해야 진짜 성공한 어른”이라고 했다.

이번 앨범의 핵심 축도 ‘서정’이다. 타이틀곡 ‘돛에 부는 바람’은 도입부터 뭉근한 기타 소리와 말간 휘파람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바다를 유영하는 돛단배의 정경을 단번에 그려낸다. 멤버 최우제는 “데모 버전에서 태원이 형이 연습실에 굴러다니던 남의 기타로 연습 삼아 쳐 본 기타 소리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대로 앨범에 실었다”며 “부활의 이름 자체가 이젠 어디에도 없는 고유색을 지닌 하나의 장르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부활 앨범으로는 드물게 외부 보컬의 곡도 실렸다. 바로 고(故) 신해철의 미발표곡 ‘천국에서’다. 미발표 데모 녹음본에 살아 있던 신해철의 생전 목소리를 그대로 따서 넣고, 신해철이 이끌었던 밴드 넥스트가 참여한 연주 부분만 부활 멤버들이 새롭게 녹음했다. 신해철 사후에 이뤄진 부활과의 첫 ‘공식 협업’인 셈이다. 김태원은 “해철이가 본래 1996년 부활을 위한 헌정 음반을 만들고 싶다며 내게 들고 왔던 곡인데, 그의 아내를 통해 녹음본이 남은 걸 뒤늦게 알게 됐다”면서 “해철이는 우리 세대 진정한 천재였고 정말 안타까운 인재였다”고 회상했다.

부활은 시나위, 백두산 등 1980년대 국내 록 전성기를 이끌었던 1세대 밴드로 꼽힌다. 부활 멤버들은 “당시 서울 종로 파고다 학원 건물 공연장에 서는 밴드들은 당대 알아주는 실력자들이었고, 부활도 거기서 첫 무대를 가졌다”고 회상했다. 김태원은 “결성 당시는 군사 정권으로 어두운 시대였고, 이후 완규와 제민이가 들어왔을 땐 IMF 시대였으며, 우제가 들어올 땐 팬데믹 초기였다”며 “그 모든 힘든 시기를 거친 이들이 모여서 늘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하면서 부활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부활을 거쳐간 보컬과 연주자만 20명이 훌쩍 넘는다. 솔로 활동과 대비할 때 멤버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수입이 적고 불안정한 밴드 활동의 특성 때문이다. 박완규와 채제민도 탈퇴했다가 다시 들어오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김태원은 “멤버들의 잦은 교체가 속상했지만,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스스로 가둔 느낌으로 곡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다양한 보컬 색을 입힐 수 있었다”고 했다.

실제 부활은 이승철, 고(故) 김재기, 정동하 등 걸출한 보컬들의 ‘록 사관 학교’로도 이름을 날렸다. 최우제는 “태원이 형은 사실 우리나라 최고의 보컬 트레이너다. 태원이 형의 지도를 받으면 기름기가 쫙 빠진 음색으로 변신한다”고 했다. 김태원은 “실제 김재기는 술자리 사석에서 내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많이 울었고, 보컬 김기연은 활동 때 성대 결절이 왔다”고 회상했다. 직접 그 과정을 경험했던 박완규는 “태원이 형님은 늘 보컬에게 맞춰 곡을 쓴다. 개인적으로는 3집 노래를 익히는 게 정말 어려웠다”면서도 “그럼에도 중2 때 부활 2집을 하루 종일 듣고 부르고 다녔던 저에겐 태원이 형 노래를 직접 부르는 게 정말 꿈 같았다”고 했다.

멤버들은 “영원한 부활”을 꿈꾼다고 했다. 인터뷰 막바지 채제민은 왼팔에 ‘부활’의 한글 발음을 영문으로 새긴 문신을 들어 보이며 “부활 활동과 함께 평생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김태원이 덧붙였다. “힘 닿는다면 20집까지 내고 싶지만 언젠가 부활이란 팀이 사라진다고 해도 부활의 노래는 계속 이어졌으면 해요. 후대에도 우리의 서정을 많은 이가 노래해 준다면, 그게 우리가 그리는 ‘영원한 부활’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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