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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외국어 쓸 때 사람은 더 정직해진다?

실시간 통번역 인공지능(AI)이 언어의 장벽을 허물면서 이제 외국어를 굳이 배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정말 그럴까. 심리언어학의 권위자가 쓴 ‘언어는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를 읽고 나면 아마도...

외국어 쓸 때 사람은 더 정직해진다?
[And 책과 길]
언어는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
비오리카 마리안 지음, 신견식 옮김
위즈덤하우스, 288쪽, 2만원
게티이미지뱅크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 누구와도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실시간 통번역 인공지능(AI)이 언어의 장벽을 허물면서 이제 외국어를 굳이 배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정말 그럴까. 심리언어학의 권위자가 쓴 ‘언어는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를 읽고 나면 아마도 생각이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원제는 ‘언어의 힘(The Power of Language)’이다.


루마니아어가 모국어인 저자는 제2 언어인 러시아어는 물론 미국 이민자이기에 영어도 능숙하다. 여기에 미국 수어를 비롯해 중국 표준어와 광둥어, 네덜란드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다양한 언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다중언어 사용의 프리즘을 통해 언어와 정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언어는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다. 저자에게 언어는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가장 강력한 인지적 도구다. 우리가 아는 언어가 많아질수록 정보를 추출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생각과 감정, 인식과 기억, 의사결정, 아이디어와 통찰력, 행동까지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뇌에서 일어나는 매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병렬 활성화’ 개념을 가져온다. 컴퓨터 처리 과정을 표현하는 병렬 활성화는 여러 작업을 나란히 연결하거나 실행해 처리 속도와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다중언어 사용자의 뇌가 언어를 옮겨갈 때 하나의 언어를 꺼두고, 다른 언어를 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 언어를 동시에 활성화하고 병렬적으로 처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우리의 뇌는 ‘사과’를 말하려는 순간, 한국어 ‘사과’와 영어 ‘애플(Apple)’을 동시에 활성화하면서 이 중 적절한 것을 선택·억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저자는 “뇌가 모든 언어를 동시에 활성화하고 병렬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다중언어 사용자는 항목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무관해 보이는 것들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면서 “이것이 창의성의 초석”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여러 언어를 알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러한 연결이 아이디어 창출, 문제 해결, 직관적 통찰에 필수적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람들이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할 때 도덕적 판단부터 재정적 결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저자는 도덕성과 윤리 연구에 사용되는 ‘트롤리 딜레마’를 예로 든다. 제동이 불가능한 전차가 다수의 사람을 향해 달려갈 때 선로를 바꿔 소수의 사람을 희생해 다수를 살릴지, 아니면 반대로 할지를 묻는 사고 실험이다. 이중언어 사용자가 모국어로 응답했을 때 20%가 다수를 구하기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선택을 했지만, 외국어로 응답했을 때는 33%로 늘었다. 제2 언어로 바뀌었을 뿐인데 ‘공리주의적 의사결정’이 늘었다는 얘기다. 이중언어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보상을 주는 실험도 있다. 주사위는 칸막이 안에서 혼자 던지기 때문에 숫자를 속일 수 있는 구조였다. 외국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더 정직하게 숫자를 보고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저자는 이밖에도 다양한 외국어 학습 효과를 소개한다. 노인들의 다중언어 사용은 알츠하이머와 다른 유형의 치매를 4~6년 늦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뇌는 끊임없이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간섭을 억제하는 고강도의 훈련을 수행하면서 뇌가 손상이나 노화에도 불구하고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인지예비능’을 키우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이 제2 언어를 배우면 사물과 이름 사이의 연결이 임의적이라는 사실을 일찍 이해하게 되면서 고차원 추론의 토대를 만든다. 책을 읽고 나면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다른 언어를 배울 최적의 시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이고 두 번째로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면서 책 말미에 효과적인 언어 학습법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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