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의 마야문명 탐험(11)
〈성서〉와 대비되는 마야 신화 〈포폴 부〉의 인간 창조론
저주·사탄으로 이해하는 서양의 지옥과 달리 마야인은 죽음을 새로운 영역으로 존중
성경처럼 마야인도 대홍수 믿어, ‘옥수수 인간’ 이야기엔 마야의 농업 중시 풍조 담겨
멕시코 정부가 발표하는, 다양한 메이즈 품종을 선택하는 포스터. 옥수수는 멕시코인들의 정체성과 결부된다.
마야인의 시발바(Xibalba)를 서양인이 말하는 지옥(Hell)으로 이해하는 것은 엄중한 왜곡을 초래한다. 서양인의 지옥은 사탄이 지배하며, 천국(Heaven)과 반대되는 영원한 저주의 영역이다. 이와 달리 시발바는 모든 죽은 자들이 새롭게 변형되고 태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지속의 영역이다. 그것은 지배자들이 성직자의 권능을 획득하기 위해 제식과 시험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죽은 자의 경우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제식에서 희생된 자는 시발바를 거치지 않고, 지하 신들이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신들의 고등한 영역으로 직행한다는 것이다.
마야인들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시발바의 신들을 존중한다. 시발바에는 12명의 신이 살고 있다. 이 신들은 인간의 죽음과 고통을 초래하는 다양한 고해를 구현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지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혼돈으로부터 벗어난다고 믿는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신화의 대부분은 <포폴 부(Popol Vuh)>라는 단 하나의 텍스트에 의존하고 있다. <포폴 부>는 스페인 사람들이 이 지역을 침공하기 이전의 경전적 지식을, 스페인 사람들이 후대에 기술해놓은 것이다. <포폴 부>는 하나의 특정한 지역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그 안에 쓰인 신앙체계들은 모든 마야문명에 일반화될 수 있기도 하지만, 당연히 다른 지역에 따라 이야기의 변형이 일어날 수도 있다. 사람이 죽은 후 어떻게 되는가에 관해 마야인들은 단 하나의 획일적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죽은 자는 나무로 태어나기도 하고, 시발바로 가는 대신 다른 동물로 몸을 바꾸기도 한다.
대체로 죽음은 저주보다는 존중됐다. 삶의 주기적 연장의 한 단계로 인식됐으며, 죽음 후의 영혼은 대자연 속에 같이 존재하는 것으로 믿었다. 하늘의 하나님은 모든 것이 선하고, 지옥의 사탄은 모든 것이 악하다는 식의 기독교적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천당과 지옥, 선(善)과 악(惡)의 이원론은 그들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마야의 신들은 온갖 종류의 인간적 감정과 특질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됐다. 가장 강력한 신들조차 실수를 저질렀고 인간적 감정에 신음했다. 이는 조선왕조 말기에 일어난 동학의 신관과 상통한다. 불완전하기에 오히려 인간과 더불어 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셈이다.
마야 신화의 조물주 ‘쿠쿨칸’
<포폴 부>는 창조의 신화를 말한다. 날개 달린 뱀, 최상의 신인 쿠쿨칸(Kukulkán)이 인간을 창조하는 데 여러 번 실패했다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쿠쿨칸은 <포폴 부>가 쓰인 과테말라의 키치 마야(K’iche’ Maya)에서는 ‘구쿠마츠(Gukumatz)’라고 불리기도 한다.
첫 번째는 날개 달린 뱀이 진흙으로 사람을 창조하려는 시도였다. 진흙 사람은 너무 부드럽고 물에 쉽게 용해돼 꼴이 성립하질 않았다. 두 번째 시도는, 사람을 나무로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나무 사람은 너무 드라이하고 딱딱한 껍질로 덮여 있어, 조화된 방식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만 나무 사람은 번식력은 강했다. 나무 사람은 곧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나무 사람은 감정이 결여됐고,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창조주들과 다른 신들에 대한 공경심을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불만을 품게 된 신들은 기발한 생각을 했다. 나무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대홍수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 홍수 이야기는 지구상의 모든 문명에 나타난다. 마야의 이야기는 <구약성경>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두 이야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마야의 홍수는 온전한 인간을 창조하는 데 실패한 하나님의 실수로 인해 야기된 것이고, 구약의 홍수는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하나님이 징벌하기 위해, 즉 세상 정화를 위해 내보낸 것이다.
게다가 마야의 홍수는 구약성서의 경우처럼 지독하지 않았다. 구약의 홍수는 지구상의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게 올라왔다. 산들을 잠그고도 열다섯 자나 더 불어났다. 이에 비해 마야의 홍수는 나무 사람을 멸절시킬 만큼 막강하질 않았다. 그래서 쿠쿨칸은 남은 나무 사람들을 잡아먹을 괴물들과 동물들을 파견했다. 그러나 이러한 작전으로도 나무 사람을 다 제거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도 나무 사람은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무 사람은 도망가서 결국 원숭이가 됐다. 신화의 과정이 매우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하는 참혹한 멸절이 없다.
가장 흥미를 유발하는 대목은 쿠쿨칸이 세 번째 시도를 위해, 특별한 재료의 획득을 위해 약간의 동물들을 파견하는 대목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희고 노란 옥수수를 할머니 신에게 가져온다. 할머니 신은 옥수수 알맹이들을 미세한 옥수수 반죽으로 갈아준다. 이 옥수수 반죽으로써 쿠쿨칸은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마야의 신들이 보다 인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 외에도 우리는 이 신화가 마야인의 실생활, 특히 농업에 관한 것, 옥수수라는 생명의 근원에 관해 깊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뉴욕 메트로 박물관에 전시 중인 옥수수 껍질 속의 神. 캄페체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600~900년 사이 물건으로 추정된다. [사진 김미루]
메이즈 옥수수는 멕시코인의 主食
옥수수, 즉 메이즈(Maize)는 키가 큰 초본식물로서 과학적 이름은 제아 메이즈(Zea mays)다. 콘(corn)과 메이즈는 호환 가능하지만, 메이즈가 더 정확한 국제적 용어이다. 콘은 달콤한 종자로서 미국과 캐나다에서 잘 먹는 옥수수 종자를 가리킨다.
근대 멕시코의 주된 곡물인 메이즈는 우리가 옥수수라고 생각하는 품종과 거리가 멀다. 멕시코의 메이즈는 아주 딱딱해질 때까지 말린다. 짙은 콤플렉스 탄수화물이며, 단맛이 없다. 멕시코에서만 64종이 있는데, 그중 59종이 멕시코 고유의 토종이다. 색깔도 다양해, 흔한 노란색, 흰색에서부터 핑크, 오렌지, 빨강, 짙은 자줏빛, 다크 블루, 검은색에 이른다. 600가지 넘는 멕시코 요리의 채(菜)가 메이즈에 기반하고 있다. 이 옥수수 요리는 마야 다이어트의 70~80%를 점유한다.
고대 마야인들은 메이즈를 안전하게 먹고, 최적의 영양소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식품 가공법을 고안해냈다. 이 방법은 지금도 최적의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말린 메이즈 알갱이를 우선 알칼리성 용액(보통 석회수. 칼슘수산화물을 소량 포함)에 넣고 삶은 후 하룻밤 재운다. 그다음에 씻고 말리고 분쇄한다. 이 과정은 터프한 섬유질의 껍질을 벗겨주고 메이즈를 부드럽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비타민B3, 미네랄, 사람 몸에 좋은 단백질과 같은 많은 영양소가 몸에 쉽게 흡수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펠라그라와 같은 비타민 결핍증세를 예방해준다. 놀랍게도 이 방식으로 곰팡이에 의해 파생되는 독물질인 미코톡신의 95%가 제거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메이즈 가루는 토르티야(tortilla, 둥글납작하게 구운 멕시코의 옥수수빵)를 만들기 위한 반죽 덩어리를 형성하지 못한다. 쉽게 부서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 가공 과정을 거친 옥수숫가루의 반죽은 마사(masa)라고 불린다. 마사는 부드럽고, 도자기를 만드는 찰흙처럼 여러 형태로 작업될 수 있다.
마야의 창조신화가 탄생할 즈음에 이미 이 가공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실제 최초의 물증은 현재의 과테말라 남부 지역에 있는 마야 영역에서 구체적인 도구와 함께 발견됐다. 그 연대는 기원전 1200년에서 1500년 사이로 입증된다.
이렇듯 마야인들은 토착적 농사일과 식품공학에 대한 정밀하고도 풍요로운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놀라운 지식으로 마야인들은 과연 어떤 다른 식품을 개발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약간의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놀라운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날 세계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식품의 원자재가 상당 부분 마야문명과 그 주변의 고문명, 올멕(Olmec), 자포텍(Zapotec), 테오티와칸(Teotihuacan), 그리고 톨텍(Toltec)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마야는 인류 삶의 기초였고 기반이었으며 획기적 전환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든다면 고추, 호박, 토마토, 보통의 콩들(까만 콩·얼룩무늬 콩·강낭콩), 고구마, 카카오(초콜릿 원료), 바닐라, 아보카도, 파파야, 목화, 담배, 치클(마야인들이 치아 건강을 위하여 개발한 수액 껌) 등이 열거된다.
우쉬말 지역 한 마을의 할머니가 마사 반죽으로 멕시코 토착 음식을 만들고 있다. [사진 김미루]
달의 기울기 관측하며 이뤄진 농업
한국인들은 고추를 자국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매운 밥상’은 16세기 말 이전에는 조선에 없었다. 16세기 말에 와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고추를 아시아에 전한 후에야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고추를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국의 김치, 고추장이 모두 17세기 이후의 작품이다. 그전에는 ‘백김치’밖에 없었다. 조선의 위대함은 외래의 식자재를 고추장이라는 복합적 소재로 만들어내는 응용능력, 합성화학적 장문화의 지혜에 있다 할 것이다. 알고 보면 한국인의 밥상은 마야인에게 힘입은 바 크다.
또한 밀파(milpa)라는 말은 ‘옥수수밭’으로 번역되는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마야인의 밀파 시스템, 특별히 유카탄반도 지역에서 지혜롭게 개발된 시스템은 단순한 밭이 아니라 기적적인 생태 디자인의 걸작품이다. ‘세 자매’라고 불리는 농작물을 동일한 밭에 같이 심는다. 이 세 자매는 옥수수(메이즈), 콩, 호박을 의미한다. 때로는 고추나 토마토 같은 중요한 채소가 첨가되기도 한다. 세 자매는 영양물질의 호환에서 서로를 보완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성장을 돕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메이즈는 그늘을 제공하여 타 작물이 강렬한 태양 빛에 말라 죽는 것을 방지하고, 또 콩이 기어 올라갈 수 있는 지지대를 제공한다. 콩은 뿌리에서 풍요로운 질소를 생산해 옥수수가 더 잘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의 환경을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호박은 그 넓은 잎으로 밭 대지의 빈 곳을 덮어 잡초가 자라는 것을 억제하고 수분을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연의 무위(無爲)와 인간의 작위(作爲)가 결합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마야 캘린더의 많은 부분이 코덱스 속에 기록됐다는 사실, 그리고 천체운동에 관한 날카로운 관찰, 특히 달의 영측(盈昃)이 농업과 관계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유카탄반도의 농촌에서 농민들이 달의 기울기를 보며 어느 시기에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이드로 활용했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달은 ‘이슈첼(Ixchel)’이라는 여신으로 의인화됐고, 그녀의 권능은 인간 여성의 다산성과 관련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 여신의 권능은 땅의 풍요, 더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의 창조력과 관련된다. 이슈첼은 보름달의 시기에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가장 막강한 생산의 힘을 발한다. 그래서 마야인들은 이 보름달의 시기에 밭에 씨를 뿌리고, 해변 가까이 온 바닷고기들을 잡았다. 자연의 리듬을 활용하는 것이다.
곡류에 관해서는 다른 시기에 따라 다른 적합한 식물의 씨를 뿌렸다. 이상적인 수확을 위한 분별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별력의 지식은 기나긴 세대의 지혜를 타고 전수된 것이며 이러한 지식은 지금도 정확히 유용하다. 마야인들은 달의 중력에 의한 끌어당김이 조수간만의 차이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조수간만의 차이가 식물과 땅에 수분의 차이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달 주기의 리듬에 따라, 어떠한 곡물을 심는 것이 가장 풍요로운 열매를 맺는지를 분별하는 법을 알았다. 예를 들면 호박은 보름달이 끝나갈 무렵에 심어야 한다. 그래야 호박은 무성한 덩굴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커다란 열매를 생산할 것이다. 반면 그믐 시기에 호박을 심으면 무성한 줄기와 커다란 이파리만을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열매는 빈곤한 수확에 그치고 말 것이다.
열매보다는 이파리를 수확하는 초본식물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주기가 성립할 것이다. 이러한 이파리 수확 식물은 초승달에 가깝게 씨를 심어야 원하는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지식은 수천 년의 경험적 관찰의 축적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그것이 현대과학적으로 어떠한 판결이 나든지 간에, 마야문명은 고도의 상상력과 섬세한 분별력을 지닌 문명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논의할 수 있다.
유카탄의 마야 마을에서 거행되는 차아차악 기우제 제식. [사진 김미루]
육식이 거의 없었던 마야인의 식탁
마야인들에게는 중대한 농업의 중요성 때문에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토착적 신이 있다. 비와 천둥과 번개의 신으로 알려진 차악(Chaac)이다. 유카탄 언어로 차아 차악(Ch’a Cháak)이라는 것은 차악신을 모셔다가 비를 내리게 하는 제식을 의미한다. 이 제식은 프란체스코의 수도사들조차도 철폐할 수 없었던 토착 제식이었다. 오늘날에도 시골에서는 이 굿(제식)이 행해지고 있다.
앞서 설명한 드레스덴 코덱스(Dresden codex) 안에서만 차악신은 141차례나 언급된다. 어떠한 다른 마야신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 사실은 비의 신이 마야 평민의 일상적 삶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과시하고 있다. 이것은 마야의 지표 환경이 사람이 떠먹을 수 있는 물이 없었다는 특유의 사실을 상기시킨다. 마야에는 강이 없었고, 시냇물이 없었고, 가축이 없었다. 석회암으로 된 카르스트 지형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곧바로 지하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언덕이나 산이 없기 때문에 계곡이 형성될 수도 없었다. 마야는 거대한 석회암의 평지 위에 건설된 것이다.
콜럼버스 이전의 마야에는 가축이라는 것이 없었다. 마야에는 닭, 돼지, 소, 양, 염소, 말이 없었다. 말이 없었기에 조직적 전투력도 생겨나질 않았다. 가축화된 칠면조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지만, 칠면조는 상층부의 극소수에게만 봉양됐다. 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멕시코에는 털이 없는 새까만 피부의 특별한 개 종자가 있었다. 이 털 없는 개는 사냥과 보호용으로 길러졌으며, 지하세계로 갈 때 영적인 가이드 노릇을 했다. 이 개는 주인과 함께 순장됐는데, 그들이 옥수수 기반의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식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마야인 밥상에는 지극히 적은 일부였다. 사냥 게임에서 획득된 사슴, 오실레이티드 터키(유카탄의 특유한 칠면조 종자), 페커리(남미산 멧돼지), 거북이, 이구아나(큰 도마뱀) 등이었고, 해물 프로테인 소스는 단지 바닷가 지역에 국한됐다. 가축화된 동물성 식품, 우유나 달걀 같은 것은 마야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인문지리학적 사실의 근거 위에서 비와 우신(雨神)이 왜 그토록 마야인들에게 중요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김미루(Miru Kim)
198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톤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도올의 권유로 의학을 전공했으나 자신의 소질과 희망에 따라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뉴욕 타임스>, <에스콰이어 매거진>에 주목 받는 예술가로 소개됐고, TED 강연자로도 나섰다. 이후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는 작품 활동을 지속하며 뉴욕, 마이애미, 이스탄불, 베를린, 서울 등 유명 갤러리에 작품이 전시됐다.
김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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