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가장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가장 깊은 고독을 느끼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군중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만 누군가는 그 군중 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채 살아갑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은 가난이나 실패가 아니라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일지도 모릅니다.
(사진=네이버 영화 캡처)
영화 '조커(Joker, 토드 필립스(Todd Phillips) 감독, 2019년 개봉)'는 바로 그 고립의 감정이 어떻게 인간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사회로부터 밀려나며 점차 괴물이 되어 가는 과정을 심리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영화 '조커'는 고담시에서 광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아서 플렉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아서 플렉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코미디언이 되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그는 거리에서 광고판을 들고 서 있는 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 갑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뇌 손상으로 인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멸시합니다. 아서의 삶은 점점 더 무너져 갑니다. 그는 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고 직장에서 해고되며, 사회 복지 프로그램마저 중단되어 정신 치료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와의 관계 또한 점차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아서는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아서는 점차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갑니다. 그는 더 이상 아서 플렉이 아니라 조커라는 존재로 변해 갑니다. 영화는 한 인간이 사회적 고립 속에서 어떻게 극단적인 존재로 변화하는지를 매우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조커의 춤
영화 '조커'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조커가 계단을 내려오며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영화 초반에 아서는 같은 계단을 힘겹게 올라갑니다. 그의 걸음은 무겁고 삶의 피로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조커가 된 이후 그는 같은 계단을 내려오며 자유롭게 춤을 춥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춤 장면이 아니라 아서라는 인물이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인 순간을 상징합니다. 그는 더 이상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자신을 거부했던 세계를 향해 광기 어린 웃음을 던지는 존재가 됩니다. 이 장면은 인간이 사회적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심리학 리뷰
영화 '조커'는 인간의 소속 욕구가 좌절될 때 어떤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 욕구 가운데 하나가 소속 욕구(Need to Belong)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이 완전히 끊어질 때 인간은 깊은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서 플렉의 삶은 바로 이러한 소속의 실패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가족, 직장, 사회 어느 곳에서도 안정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때 인간은 점차 세상에 대한 분노를 축적하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좌절-공격 가설(Frustration–Aggression Hypothesis)로 설명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가 지속적으로 좌절될 때 그 에너지는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영화 속 아서는 단순히 폭력적인 인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사회로부터 배제된 인간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조커라는 인물이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고립된 인간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용어 해설
소속 욕구 (Need to Belong) : 인간이 타인과 연결되고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를 의미합니다. 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인간은 심리적 고통과 고립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좌절-공격 가설 (Frustration–Aggression Hypothesis) : 개인의 욕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될 때 그 에너지가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심리학 이론입니다.
사회적 고립 (Social Isolation) : 개인이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되거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 필자 오기태는 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현대리서치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광고 및 컨텐츠 기획업체인 키네틱코리아에서 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는 ‘심리학이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학문이라면, 영화는 그 지도 위를 실제로 걸어보는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티뉴스, 코리아아트뉴스, 한국법률경제신문의 문화 예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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