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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건영의 경제읽기] 일본의 변화-리플레이션에서의 후퇴

지난 8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의회에서 “더 이상 리플레이션이 필요한 단계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거치면서 깊은 디플레이션 불황의 늪에 빠졌다.

[오건영의 경제읽기] 일본의 변화-리플레이션에서의 후퇴

지난 8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의회에서 “더 이상 리플레이션이 필요한 단계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거치면서 깊은 디플레이션 불황의 늪에 빠졌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2년 집권 이후 적극적인 돈풀기를 앞세워 리플레이션 정책 드라이브를 강화한 바 있다.

이번 발언은 이른바 아베노믹스 시기부터 이어져온 적극적인 재정·통화 완화 정책에서 한 걸음 물러설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취임 초기부터 아베 전 총리의 돈풀기 정책을 충실히 따를 것임을 공언해 ‘여자 아베’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인물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왜 그런 그가 리플레이션 정책에서 물러나려 할까?

가장 큰 이유는 일본 내에서 보다 강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우려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베노믹스와 같은 리플레이션 정책은 강력한 돈풀기에 기반하는데, 돈풀기는 경기 부양의 효과는 있지만 정부 재정의 악화로 인한 엔화 약세라는 그늘을 만들어낸다. 또한 돈풀기로 인해 크게 증가한 엔화 공급 역시 엔화 약세의 속도와 깊이를 크게 강화하게 되는데, 2012년 달러당 75엔 수준으로 초강세를 보이던 엔화는 지난 3분기 달러당 164엔까지 오르면서 엔화 약세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기본적으로 엔화 약세는 일본의 수출에는 긍정적이지만 해외에서 수입돼 들어오는 제품의 가격을 높여 일본의 내수 경제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타격을 줄 수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에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물가 상승으로 인해 일본의 서민 경제에는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이 자체로 일본 내 양극화를 확대시키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2022년 이후 지속돼온 엔화 약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사태 등과 맞물리며 일본 내 물가 불안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전임자였던 기시다 후미오·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이끌던 내각에 대한 지지 역시 타격을 받았다. 또한 상당 기간 인플레이션이 이어지면서 일본의 단기 금리인 기준금리는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시장금리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높아진 금리는 엔화 약세로 인한 고물가와 맞물려 일본 서민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만성적인 재정 적자로 인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높은 일본 정부에 이자 부담을 높이게 된다.

대외적 요인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일본 당국에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하며 압박해왔다. 그러나 ‘잃어버린 30년’으로 대변되는 장기 침체의 늪에서 막 벗어난 일본으로서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다시 경기 침체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에 일본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행보를 유지해왔다. 일본 내 인플레이션의 파수꾼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은행의 소극적 대응은 오히려 인플레이션 우려를 더욱 키웠다. 고물가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강해지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의 장기 국채 금리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문제는 일본의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이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를 밀어올린다는 점이다. 미국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인 감세 정책 등으로 인해 국가부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일본의 고금리가 자국의 고금리로 이어지는 상황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이에 미국은 일본의 장기 국채 금리를 누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실제 지난 9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한 바 있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엔화 강세 전환 압박에 다카이치 내각 역시 기존의 리플레이션 정책에서 후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리플레이션에서의 후퇴가 즉각적으로 일본의 금리 인상과 엔화 강세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24년 8월 정책 전환을 시도했다가 엔캐리 청산이라는 역풍을 맞았던 일본이기에 그 속도와 강도는 완만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천천히 진행되는 일본의 향후 변화에 주목해보자.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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