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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영화 속에 담긴 영혼의 메시지④]‘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일...

2011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는 바로 한국 사람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노희경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민규동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는데, 그 당시 중산층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어서 깊은 감정이입이 일어났다.

[영화 속에 담긴 영혼의 메시지④]‘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일...

2011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는 바로 한국 사람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노희경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민규동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는데, 그 당시 중산층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어서 깊은 감정이입이 일어났다. 영화는 일상의 고단함을 잊으려 환타지의 세계로 가는 영화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사실주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하는데 소위 지지리궁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현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삼수를 하는 아들과 직장을 다니는 딸, 월급 의사인 남편, 개인택시를 모는 남동생 부부와 티격태격 사는 50대 중년 여성 인희의 이야기다. 배종옥이 인희로 분했는데,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온 인희는 오줌소태 증세로 병원에 갔다가 자궁암 말기라는 걸 알게 된다. 수술을 했음에도 병세가 악화되자 인희는 자신이 죽고나면 시어머니를 돌봐 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시어머니의 목을 조른다. 하지만 곧 포기하고 만다. 지금도 한국 가정에는 이런 현실을 사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딸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며 결혼에 대해 아주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누구나 다 늙고 병든다. 결국 마주하게 될 생노병사란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래서 가정 안에서 해결하던 이 문제가 공공기관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엄마가 일상생활의 중심에서 가정을 진두지휘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 가정일수록 안정감이 있고 편안하다는 신화가 남아있다. 영어로 가정인 Home이 주는 따스한 느낌은 가족이 사는 집인 House의 객관적인 딱딱함과 전혀 다른 범주다. 이 영화는 당연하게 여겼던 엄마의 존재가 사실은 집안의 평화와 연대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존재였다는 걸 뼈 때릴 정도로 느끼게 한다.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두려워하는 것도 엄마의 삶을 보고 이런 희생을 할 자신이 없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아들 딸 똑같이 교육시키고 키웠는데, 결혼하면 여자는 더 많은 희생과 봉사를 요구받는다. 공정하지 못하다고 답답해진다. 남편은 인희의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아내가 많은 일들을 홀로 해왔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생을 마치기 전에 늦었지만 결혼 생활에서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려고 함께 여행을 계획했다.

현실의 민낯, ‘엄마’라는 이름의 희생

2026년인 지금은 이 영화가 나온 후 15년이 지났다. 그때만 해도 인희는 일반적인 주부의 모습이었다. 아직도 인희처럼 사는 주부들이 많겠지만, 자신이 시어머니처럼 나이가 들고 치매까지 오면 며느리가 아니라 양로원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후 준비란 단어가 일반화되면서 이제 노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란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양로원은 자식 없는 측은한 노인들이 가는 후줄근한 곳이 아닌 적극적으로 이상적인 노후를 사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부모의 노후는 아들은 자기 부모를 며느리는 또 자기 부모를 돌보는 쪽으로 인식이 달라지는 모습도 나타나는 중이다.

100세 시대에 환갑은 생의 말년이 아니라 중년의 끝자락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환갑에 제2의 인생을 꼼꼼히 준비하며 노후 계획을 챙기는 시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자식 교육과 결혼으로 노후를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영화에 나오는 삼수생 아들과 직장 다니는 딸은 엄마처럼 살고 싶을까? 젊은이들이 결혼을 맘 놓고 못하는 것도 사회가 달라지고, 가정에서도 의식이 달라지며 삶의 방식까지 바뀌지 않으면 저당 잡히게될 내 삶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변해가는 시대, 달라지는 삶의 방식과 책임

그런데 노영희 작가는 왜 영화 제목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했을까? 주인공의 삶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산 여성의 이야기인데. 그 삶이 아름다웠다고 그래서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제목대로라면 그 시대 일반적인 한국 중년층 여성들은 ‘아름다운 삶’을 산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노영희 작가는 손해와 이익이라는 이성적인 계산으로 삶의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아줌마’라고 한다. 그만큼 삶에 대해 치열한 한국의 중년 여성이라는 뜻일 것이다.

아기를 낳고 생명을 키워내기 위해서 치러내는 노고가 희망과 행복으로 느껴진다. 이와 같은 이치가 죽음까지 포함해서 삶 자체를 숭고하게 받아들인 우리 조상님들이다. 생명 그 자체가 숭고한 것이어서 생명을 살리려고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은 다 아름다운 것이 된다. 이 영화는 인희가 암으로 죽어가는 것이 슬프지만 결국 우주적 현상인 것으로 개인이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없다는 큰 긍정을 드러낸다. 그래서 영화 제목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삶을 우주적 신비로 보는 큰 긍정이 느껴진다. 옛사람들은 이런 태도로 새벽에 일어나 뒷마당 장독대에 정한 수 한 그릇을 떠놓고 신께 소원을 빌며 간구했을 것이다. 일상이 곧 영성이라는 커다란 깨달음이 매 순간을 영성으로 채운 삶을 살아내었다.

일상이 곧 영성이다, 생명을 향한 숭고한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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