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포기해도 피해자가 소추 제기
크라우드펀딩 통해 변호인 선임
시민 연대 통한 형사재판 사례 남겨
김한아 변호사
“내 이름은 셜록 홈즈라네.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내 직업이지(My name is Sherlock Holmes. It is my business to know what other people do not know).” 엔지니어인 영국인 신랑이 가장 좋아하는 셜록 홈즈의 명대사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을 때면 식사도 잊은 채 책과 물아일체가 되곤 했었다.
법을 공부하면서 이런 의문이 든 적이 있다. 만약 홈즈가 치밀한 추리 끝에 범인을 특정하고 증거를 모아 경찰에 넘겼어도 소설 속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달리 경찰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수사를 접는다면? 검찰마저 “기소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덮어버렸다면? 피해자는 진범을 앞에 두고도 그를 법정에 세울 수조차 없는가? 홈즈의 추리는 어떤 법적 결실도 맺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져야만 하는가. 영국에는 이 막막함을 돌파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한다. 바로 ‘사인 기소(Private Prosecution)’다. 국가 기관이 움직이지 않을 때, 피해자나 제3자가 직접 형사 기소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다. 1985년 제정된 기소법(Prosecution of Offences Act 1985) 제6조 제1항에는 ‘이 법이 누구든 형사소송을 제기하거나 수행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취지가 규정되어 있다. 즉, 개인이든 법인이든 왕립검찰청(CPS)의 판단과 무관하게 법원에 형사소추를 제기할 수 있다. ‘소추의 민주화’다. 물론 무제한의 권리는 아니다.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검찰총장(DPP)은 이러한 사인 기소를 어느 단계에서든 인수할 수 있다. 한편 개별 형사법령들은 별도로, 특정 범죄의 경우 공소 제기에 앞서 검찰총장 또는 법무장관(Attorney General)의 동의를 요구하기도 한다. 사적 복수가 형사 절차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안전판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전장치 속에서도 사인 기소는 영국에서 피해자의 실질적인 사법 접근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로 기능하고 있다.
크라우드저스티스(CrowdJustice)는 영국과 미국을 기반으로 한 법률 소송 전용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특히 현대에 들어 이 제도는 크라우드펀딩과 결합하여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메이슨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4년 런던에서 자전거를 타던 마이클 메이슨은 뒤에서 오던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런던 경찰청은 운전자의 형사상 과실 입증 곤란을 들어 사건을 검찰 불송치 종결했다. 국가 기관이 형사책임 추궁을 포기하자, 영국의 자전거 권익 단체 ‘사이클링 UK’와 그 산하 ‘사이클리스트 방어 기금(Cyclists’ Defence Fund)’이 유족과 손을 잡고 직접 정의 구현에 나섰다. 이들은 모금 플랫폼 ‘저스트기빙(JustGiving)’을 통해 ‘Justice for Michael’ 캠페인을 열었고, 사이클리스트의 죽음에 공감한 시민들이 순식간에 8만 파운드 안팎의 기금을 모아주었다. 사이클리스트인 필자의 시아주버니 앤디와 배우자 클레어도 동참했다. 유족은 이 기금으로 로펌과 변호인을 선임해 운전자를 직접 형사 법원에 세우는 사인 기소를 진행했다. 배심원단은 운전자의 무죄를 평결했지만, 이 사건은 국가가 수사를 포기하더라도 시민의 연대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가해자를 형사재판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음을 보여 준 선도적 사인 기소 사례로 평가된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시민이 직접 형사 사건의 공소를 제기해 진행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국가가 기소를 거부할 때 영국에는 국가가 멈춘 자리를 시민의 의지가 채울 수 있는 사인 기소라는 제도가 있다. 어쩌면 순수 민간인 셜록 홈즈가 영국에서 탄생한 배경에는, 정의 구현의 주체가 국가권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법적 유연함과 시민들의 권리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한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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