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부실 정리 과정서 시중은행 역할론 부상
배드뱅크 출자·부실자산 매입 가능성 촉각
은행권 ‘사회적 책임’과 주주가치 사이 딜레마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정리가 하반기 금융권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저축은행·캐피털사·상호금융 등 2금융권에 집중됐던 부실 부담이 시중은행으로 옮겨갈 가능성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2금융권의 연착륙과 시장 충격 최소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자본 여력이 있는 대형 은행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2금융권은 올 하반기 들어서도 부동산 PF 부실 여파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금융권 전체 PF 익스포저는 169조8000억원으로 2024년 6월 말 216조5000억원에서 약 21.6% 감소했다. 부실 사업장 정리와 재구조화가 이어지면서 전체 규모 자체는 줄어드는 모습이다. 하지만 부실 위험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같은 시점 금융권 PF 대출 연체율은 4.65%로 전분기보다 0.77%포인트(p) 상승했다. 지난해 말 3.88%까지 낮아졌던 연체율이 다시 4%대로 올라선 것이다.
부실 사업장 정리를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자체 상각에 나서고 있지만 쏟아지는 악성 매물을 민간 부실채권(NPL) 전업사들이 모두 소화하기엔 역부족인 상태다. 경·공매 시장마저도 얼어붙고 있다.
이런 상황에 금융당국은 막대한 자금력과 양호한 건전성을 갖춘 주요 시중은행을 향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자율적인 시장 참여를 독려하는 형태지만 당국 안팎에서는 은행들이 대규모 '배드뱅크(부실채권 전담 처리 기구)' 출자를 확대하거나 2금융권의 우량 자산 및 부실 자산을 묶어 매입하는 등 적극적인 구원투수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배드뱅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정책금융기관뿐 아니라 민간 금융회사들의 출자나 투자 등이 요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당국 입장에서는 금융시장 전체의 안정을 위해 상대적으로 손실흡수력이 높은 대형 금융회사가 일정 부분 역할을 맡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금융위기나 시장 불안이 발생했을 때 금융권 전체의 충격을 줄이는 것이 결국 대형 금융회사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은행권에서는 다른 금융회사의 부실을 떠안는 방식이 반복될 경우 건전성 부담이 은행지주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분도 맞물려 있다. 은행은 금융시장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는 만큼 금융시장 불안이 발생했을 때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최근 은행권이 높은 이자이익을 기반으로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이어가면서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상생 요구도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주들은 수익성 극대화와 환원을 요구하는데 당국은 부실의 설거지를 요구하고 있다"며 "정당한 시장 가격보다 비싸게 부실을 매입할 경우 배임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어 이사회 설득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2금융권 부실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 등 특정 업권에서 PF 부실이 확대되면 해당 금융회사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 건설업, 채권시장 등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부실을 조기에 털어내고 시장에서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부동산 PF 구조조정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수록 금융권이 부담해야 할 비용의 실체도 구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2금융권은 부실 사업장과 부실채권을 정리하면서 손실을 현실화해야 하고 정책당국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 대형 은행들은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공적 역할과 자산 건전성·주주가치라는 민간 금융회사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을 수 있다.
시중은행의 참여가 현실화될 경우 얼마나 낮은 가격에 부실자산을 매입하는지, 손실 발생 시 누가 부담하는지, 향후 추가 출자 가능성은 있는지 등이 은행권의 실제 부담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2금융권의 연착륙을 위해 대형 은행의 역할이 확대될수록 금융시장 전체의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그 비용이 특정 금융회사에 과도하게 집중될 경우 또 다른 건전성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금융당국과 은행권 모두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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