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 내에 있는 해리 엘킨스 위드너 도서관에 하버드 학부 졸업생인 샐리 스코파 조교가 앉아 있다. 100년이 넘는 위드너 도서관은 하버드 대의 여러 도서관 중 핵심이자 하버드 대학기금의 지원을 받는 곳이다. 사진=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 홈페이지.
스페이스X의 주요 투자자가 처음 공개된 14일(현지 시간). 빅테크 기업과 사모펀드·연기금이 즐비한 명단에서 5번째 주주인 하버드대가 단연 눈에 띄었다.
하버드는 우리 돈 3조 원이 넘는 22억 달러를 스페이스X 한 종목에 넣었다.
하버드대 정도면 3조 원쯤은 가볍게 베팅할 만큼 자금이 넘쳐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버드대는 상장주식에 투자할 자금의 절반 이상을 스페이스X 한 곳에 몰아넣었다. 스페이스X에 가장 많은 돈을 넣은 곳은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지만 뉴스가 된 것은 가진 돈 절반을 한 종목에 건 하버드였다. 언론 중에는 학생신문 하버드크림슨이 투자 내역을 가장 상세히 보도했다. 스페이스X 다음으로는 TSMC와 인공지능(AI) 칩 제조사인 세레브라스가 하버드대의 주요 투자처였고 엔비디아 비중을 늘렸다고 하버드크림슨은 전했다.
이런 과감한 결정은 누가 내렸을까. 하버드대 기금을 굴려 살림 밑천을 만드는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HMC)이다. HMC 최고경영자(CEO)는 JP모건 출신이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고액자산가의 돈을 굴리는 패밀리오피스에서 왔다. 이사회에는 국민연금도 돈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는 사모펀드 헬맨앤프리드먼 CEO 같은 투자 전문가가 참여한다.
이 중에서 연봉 620만 달러(약 85억 원)를 받는 HMC의 CEO를 비롯해 투자를 집행하는 CIO나 최고운영책임자(COO) 모두 하버드대 출신이 아니다. 하버드대를 하나의 기업처럼 놓고 안정적인 수익률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와 투자를 맡긴 셈이다. 스페이스X가 한때 공모가인 135달러보다 낮은 108달러대로 떨어졌지만 연기금보다도 더 장기투자자인 하버드대는 단기간 종목 손실은 문제 삼지 않는다. 그것이 하버드가 3조 원을 걸 수 있었던 진짜 이유다.
하버드대 기금은 지난해 11%의 수익률을 올려 전체 기금을 569억 달러(약 76조 원)로 불렸다. 상장주식 비중은 14% 정도고 70%는 헤지펀드·사모펀드·벤처캐피털에 맡겨 비상장기업에 투자한다. 하버드대의 투자 성적 중 손꼽히는 종목 하나는 상장 전 쿠팡이었다. 한때 비중이 높았던 부동산 투자는 위험하다는 판단에 따라 꾸준히 줄여 지금은 5%다. 한 종목에 절반 이상을 몰아넣을 만큼 대담해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남들보다 먼저 위험을 덜어냈다. 과감함과 신중함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전략이 하버드식 투자의 본질이다. 그렇게 불린 기금으로 하버드는 장학금과 교수 영입, 연구 지원과 시설 투자, 사회 공헌까지 한 해 예산의 40%를 메운다.
한국이라고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포스코홀딩스 주식을 기반으로 세워진 포항공대(포스텍)는 투자를 통한 기금 성장에 일찌감치 관심을 보였다. 아예 하버드대까지 찾아가 기금을 어떻게 굴리는지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메모리반도체 기술로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글로벌 기업에 기술을 이전한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명예교수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대학기금의 해외 대체투자를 주장해왔다. 돈이 흐르는 곳에 수익은 물론 인재와 기술이 흐른다는 믿음에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 중에 기금투자를 잘해서 대학 재정을 키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그나마 포스텍이 2023년 포스코퓨처엠 투자로 1조 원의 평가차익을 봤다. 포스텍은 수익을 나눠 일부는 대학에 지원하고 기금에 재투자하고 싶었지만 대학이 번 돈은 3년 만에 다 쓰지 않으면 양도차익에 가산세와 증여세까지 매기는 현행법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다.
이 규제는 정확히 미국의 대학기금과 반대다. 미국은 대학기금으로 번 돈에는 과세하지 않되 한 번에 5%만 대학 재정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재투자하게 했다. 그게 서울경제신문이
대학기금투자 취재를 했던 2023년 8월의 현실이었다. 그나마 3년을 설득한 끝에 2026년 1월 1일 이후 처분 주식에 대해서는 3년간 과세이연하는 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아예 비과세하는 미국과는 거리가 있다. 그사이 하버드대는 쿠팡에서 번 돈으로 스페이스X에 투자하며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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