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용산을 찾는 이들의 행선지는 주로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아이맥스 영화관이다. 주말·휴일이면 ‘국중박’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긴 차량 행렬이 생기고 매표소 앞에는 ‘오픈런’이 벌어진다. 아이맥스로 촬영한 영화가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용산역에 입점한 전용 영화관에는 지금도 관객들이 꽉꽉 들어찬다. 이곳 말고도 근래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용산의 명소 중 하나는 어린이정원이다. 이달 초 처음 찾은 어린이정원 정문 앞에는 수십 개의 근조 화환이 늘어서 있었다. 어린이정원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항의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낸 것이다.
정부가 어린이정원을 포함해 용산공원 본체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정부 계획에 서울시가 반발하자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두 차례 만나 해법을 모색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계속 평행선을 달릴 듯싶다. 용산공원 본체에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에 대해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탓이다.
정부는 용산공원 본체 부지 중 이미 훼손된 곳에 제한적으로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반면 서울시는 용산공원이 서울 시민의 삶과 여가 공간, 남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녹지 축의 주요 부분이기 때문에 일부분이라도 주거 용도로 전환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부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공원 부지 일부라도 활용해 공급을 늘리고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곤궁한 처지도 이해되고, 미군으로부터 어렵사리 돌려받은 땅에 시민들을 위한 녹지 공간을 충분히 조성해야 한다는 지방자치단체의 원칙에도 공감한다.
서울 시민들의 생각도 엇갈린다. 임오군란 이후 외국군이 주둔했던 용산공원 부지가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 그리고 미래 세대를 고려하면 온전하게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과 약 300만 ㎡에 달하는 부지 모두를 공원으로 만들기보다는 녹지 공간 훼손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일부는 집을 지어 도심 주택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 충돌한다. 양측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다 보니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용산공원 개발이 당초 계획대로만 진행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미군기지 반환과 용산공원 조성 계획이 오랜 기간 토론과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지만 상황과 여건이 달라지면 기존 방안의 수정과 변경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2007년 제정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문구 하나도 손질하지 못하는 ‘금과옥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주택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고 해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기존 계획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서는 지지를 받기 힘들다.
용산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함께 서울에서 집값이 상위 20% 이내에 드는 지역이다. 광화문과 여의도·강남 등으로 출퇴근이 용이한 직주 근접의 입지인 데다 남산과 한강 등 녹지·수변 공간도 가까워 주거 선호도가 높다. ‘한국판 센트럴파크’가 될 용산공원 조성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이뤄지고 한남뉴타운과 서계·청파동 등 노후 주거지 재개발이 마무리되면 주거·업무와 녹지 기능을 두루 갖춘 ‘서울의 맨해튼’이 될 것이다. 수많은 개발 프로젝트가 집중된 만큼 늘어나는 인구에 대비해 도로·교육 등 도시 기반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단순히 공원을 조성하고 주택을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시계획 자체를 완전히 새로 짜야 하는 것이다.
이왕 찬반 논란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정부와 서울시가 용산공원을 어떻게 개발할지를 놓고 공론장을 마련하면 어떨까 싶다. 이를 통해 본체 부지와 인접 부지를 보다 효과적이고 유기적으로 개발할 묘책을 찾았으면 한다. 아울러 용산공원과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연계한 ‘마스터플랜’을 새롭게 도출해 이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임오군란 발발 150주년이 되는 2032년,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산국가공원 착공식을 열겠다는 목표로 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