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왕산해수욕장 모습. 인천관광공사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물놀이·갯벌 체험·숲속 힐링 등을 즐길 수 있는 인천 명소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송정인 기자] 여름 휴가철이면 제주, 강릉, 부산 등 대표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많은 인파가 몰린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명 관광지 대신 한적한 바다 마을과 숲, 계곡, 소도시 등을 찾아 조용히 휴식을 즐기려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을 통해 유명 관광지 정보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랜드마크를 둘러보는 여행보다 지역 주민의 일상과 문화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7월 16일 발표된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데이터랩의 ‘2027 관광 트렌드 전망 및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는 지역다움이 새로운 여행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여행 목적지와 경험 방식, 소비 형태가 로컬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관광 명소를 빠르게 둘러보고 이동하는 방식보다 지역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천천히 발견하고 오래 머무는 여행이 확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4~5월에는 유명 관광지보다 숨은 여행지를 찾아 새로운 경험과 특별함을 추구하는 여행이 확대됐다. 인구 15만명 미만 소도시를 찾은 내국인 여행객은 2023년 1~5월 3만 8658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4만 145명으로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강원 인제가 전년 동기 대비 40.3% 늘었고, 영월·문경·산청·동해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본지는 여행업계와 전문가를 통해 올여름 추천할 만한 숨은 여행지를 살펴보고, 조용한 여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배경을 짚어봤다.
강원 동해시 묵호의 모습. 묵호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소도시 중 하나다. 사진=연합뉴스
◇ “이번 여름 휴가, 정말 소도시로 떠나고 있을까
”
2027 관광 트렌드 전망 및 분석은 여행이 명소 관람 중심에서 벗어나 정서적 회복과 로컬의 일상을 경험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도시 특유의 한적한 분위기와 지역 고유의 경험을 찾는 방문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통계와 여행업계 예약 데이터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여기어때에 따르면 올해 7~8월 국내 여행 예약 증가율은 지난해 동기 대비 경북 영양군(409%)이 가장 높았고, 전북 순창군(257%), 전남 함평군(247%), 전북 진안군(245%), 경북 의성군(171%) 등이 뒤를 이었다. 유명 관광지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소도시들이 높은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놀유니버스 역시 전반적인 국내 여행 수요 증가 속에서 한적한 지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중소 호텔 예약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동해·삼척·태백이 528%, 화천·철원·인제·양구가 277%, 영월·정선이 175% 증가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해외 여행에서도 일본의 대도시보다 소도시를 찾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사 플랫폼 ‘여행갈지도’를 통해 여행객들이 숨겨진 국내 명소를 직접 공유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NS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뚜렷하다. ‘대한민국 소도시 붐은 온다’, ‘뚜벅이도 가능한 국내 소도시’, ‘요즘 뜨는 국내 소도시’ 등의 콘텐츠가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인천 영종도를 비롯해 강원 평창군 진부역, 철원군 신수리, 횡성군 공근면, 경북 영주시 무섬마을, 예천군 회룡포, 봉화군 닭실마을, 전북 진안군과 정읍시 등이 새로운 여행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강원 횡성군의 모습. 사진=강원 횡성군
◇ “조용한 여행, 왜 선택할까
”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데이터랩은 이러한 현상을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분석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관광 콘텐츠가 획일화되자 오히려 느림과 머무름, 지역 고유의 분위기를 경험하려는 욕구가 ‘웰니스 여행’, ‘슬로우 트래블’, ‘디지털 디톡스’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도시 여행의 주요 연관어는 ‘여유로운’, ‘낭만’, ‘조용한’,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독특한’, ‘고즈넉한’ 등으로 나타났다. 여행을 통해 도시의 복잡함을 벗어나 여유와 낭만 같은 정서적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확인된 셈이다.
스마트 관광을 전공하는 정남호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최근의 변화를 “관광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지난 15~20년 동안은 SNS의 발달과 함께 많이 보고,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것이 여행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카메라에 담느라 정작 눈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여행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유명한 곳을 소비하는 여행에서 벗어나 스스로 여행의 주도권을 갖고 소소한 경험에서 만족을 찾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인공지능(AI) 역시 여행객이 낯선 경험을 발견하고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활용될 때 진정한 스마트 관광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NS 피로도와 자기효능감도 조용한 여행을 찾는 현상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조용한 여행지를 찾는 심리를 ‘복잡함에 대한 거부감’과 ‘나만 아는 장소를 발견했다는 만족감’으로 요약했다. 이 교수는 “사람들은 너무 복잡한 곳은 피하고, 남들이 모두 아는 여행지에는 더 이상 큰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며 “나만 아는 독특한 여행지를 발견해 SNS에 공유하고 ‘어디냐’는 반응을 얻을 때 큰 자기효능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관광 시설을 조성하는 현상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국내 바다 오솔길이나 케이블카처럼 획일적인 관광 개발을 반복하기보다 지역만의 고유한 관광 자원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26년 국민여행조사’ 올 1분기 결과(잠정치)에서도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한 활동은 ‘자연 및 풍경 감상’(38.0%)으로 나타났다. 여행객들이 단순히 많은 장소를 둘러보기보다 자연 속에서 천천히 쉬며 풍경을 즐기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한편 정 교수는 삶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동네를 천천히 걸어보는 여행을 추천했다. 그가 추천한 첫 번째 여행지는 서울 장위동이다. 문화주택과 동방고개 언덕 위 대저택 등 근현대 서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숨은 명소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서울 쌍문동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경으로 알려진 것은 물론, 둘리테마거리와 둘리박물관 등 지역 문화와 캐릭터가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이라고 소개했다.
여행업계에서도 패키지 여행의 변화가 감지된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최근 선보였던 울릉도 패키지 상품이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며, 젊은 여행객일수록 남들과 다른 로컬 여행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올여름, 북적이는 인파 대신 나만의 속도로 머물 수 있는 소도시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익숙한 명소를 벗어난 그곳에서 여행의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송정인 기자 haha2388@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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