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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잠출 수필가
지금 울산의 대표축제는 또다시 도돌이표가 되려는지 각종 단체들이 나서서 백가쟁명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1967년 울산공업축제에서 1991년 처용문화제로 바꾸었다가 2023년 울산공업축제를 35년 만에 부활했는데 다시 처용문화제 복원이 거론되고 있다. 축제 이름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다. 현수막을 바꾸고 포스터를 새로 만들고 개막식 무대만 바꾸면 된다. 그러나 축제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는 짧은 시간에 간단히 이뤄지는게 아니다. 시민의 기억이 쌓이고, 지역 예술인의 참여가 늘어나고,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상인과 기업이 축제를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기까지 수년, 아니 10년 이상의 축적이 필요하다.
문제는 정치의 개입이다. 단체장 취향과 치적에 맞추느라 대표 축제가 바뀌는 구조에서 시민과 지역 예술인은 영원히 주인이 될 수 없다. 축제는 단체장의 임기보다 길어야 한다. 누가 되든 살아남고, 담당 공무원이 바뀌어도 축제의 철학과 노하우가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축제가 행정을 넘어 도시의 문화자산이 된다. 축제가 정치에 끌려다니지 않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가칭 '울산축제위원회' 같은 독립적 거버넌스를 만들어 민·관이 함께 참여하되 정치권력으로부터 일정하게 독립된 전문 조직이나 법인 형태로 구성하고, 10년 단위의 마스터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총감독과 집행 조직의 임기도 단체장의 임기와 기계적으로 맞추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축제의 큰 방향과 축적된 경험이 이어진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얼마를 썼느냐 보다 무엇이 남았느냐를 따져야 한다. 관광객의 체류시간, 지역경제 파급 효과, 시민 만족도, 지역 예술인의 참여율 같은 객관적 지표를 만들어 해마다 공개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잘되는 축제는 키우고, 효과가 낮은 사업은 과감하게 폐지하거나 고쳐야 한다. 이 부분은 지금 울산시의 방향이 백번 옳다. 축제의 주인도 바꿔야 한다. 관이 무대를 만들고 시민이 구경하는 축제에서 벗어나 지역 예술인과 상인, 청년, 기업, 시민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고 그 성과가 지역에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축제가 지역경제와 예술 생태계를 함께 키우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처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처용이 문화유산이라는 것과 처용이 울산의 대표 축제 브랜드여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처용'이 아닌 '처용무'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문화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해서 오늘날 울산 대표축제의 중심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처용 설화의 핵심 서사는 역신이 아내와 동침하는 현장을 목격한 처용이 노래와 춤으로 대응했다는 이야기다. 이를 관용과 화해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전에서 확인된 현대적 가치라기보다 후대의 해석과 재구성의 결과라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처용정신'을 너무 쉽게 말한다. 관용, 화해, 포용, 공존, 융합... 좋은 말은 모두 갖다 붙였다. 처용 설화를 연구하고 전승하는 일과 그것을 대표축제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일은 다르다. 문학과 역사가 다르고 지금은 신라나 고려시대가 아니다. 처용을 무속적·주술적 존재로 보는 시각과 문학적·예술적 상징으로 보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처용은 누구이며 도대체 무엇이 처용정신인가? 노래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처용의 정체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 시대는 타락하고 향락적인 분위기에 반란이 만연했던 신라 하대였다. 그런 시대 배경을 가진 처용가, 간통과 침입이라는 사건을 대표적인 지역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시민들 공감이 어려운 서사다. 처용가 해석도 1929년 오구라 신페이 이후 1942년 양주동의 해석 그리고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새로운 무엇이 전무하다. 처용가와 처용설화에 대한 문헌적·언어학적 해석에 한 자 한 획도 더하지 못하면서, 그냥 '관용'과 '화해'란 문구를 덧칠해 그것을 '울산의 정신'이라고 선언하는 건 너무 안이하지 않은가. 설화는 문학이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신적 가치가 아니다. 새로운 공연과 웹툰, 미디어아트, 음악으로 재해석하면 모를까 그것이 반드시 울산의 대표 정신이어야 할 이유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울산에는 처용 말고도 내세울 것이 많다. 산업사와 세계적 제조업 기반,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산업, 미래에너지와 수소산업, AI와 산업혁신, 태화강의 생태복원, 반구대 암각화 같은 세계적인 문화유산 자원이 있다. 외래인들의 울산 드림도 켜켜이 쌓여 있다. 울산의 미래 축제를 만드는 여정을 이왕 시작한 김에 시민들의 숙의와 고민, 격한 논쟁이 계속되고 성숙한 결론이 나오길 기대한다.
김잠출 수필가
김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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