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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애플이 엔지니어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 탁월한 운영 감각이 AI 국면에서는 오히려 족쇄가 됐다. 효율을 극대화하는 조직은 불확실한 것에 베팅하는 데 느리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메타가 AI 인프라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는 동안 애플은 수익성...

애플이 엔지니어를 선택했다

팀 쿡이 떠난다. 4월 20일(현지시간) 애플은 쿡이 오는 9월 1일부로 이사회 집행 의장으로 물러나고,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 존 터너스가 CEO직을 이어받는다고 밝혔다.

쿡이 남긴 숫자와 빈자리

쿡의 재임 15년은 숫자로 요약된다. 시가총액 4조 달러, 20배 성장. 아이폰을 기반으로 애플워치·에어팟·서비스 사업을 쌓아올려 ‘기기 회사’를 ‘생태계 기업’으로 바꿨다. 공급망 최적화와 마진 관리에서 그를 능가한 CEO는 실리콘밸리에 없었다.

그러나 그 탁월한 운영 감각이 AI 국면에서는 오히려 족쇄가 됐다. 효율을 극대화하는 조직은 불확실한 것에 베팅하는 데 느리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메타가 AI 인프라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는 동안 애플은 수익성 높은 현재를 지키는 쪽을 택했고, 시리 업그레이드는 해를 넘겨 밀렸다. 결국 임기 말에야 AI 수장을 구글 출신으로 교체하고 구글 제미나이 기반의 시리 개편을 예고했다. 4조 달러짜리 회사가 가장 뜨거운 시장에서 추격자 신세가 된 것은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운영에 최적화된 조직이 치른 대가였다.

소프트웨어 수장을 설득한 하드웨어 엔지니어

터너스를 이해하려면 이력서보다 한 가지 결정을 봐야 한다.

아이패드가 아이폰과 같은 iOS를 공유하던 시절, 터너스는 이것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 더 큰 화면, 더 강력한 칩을 얹어도 소프트웨어가 아이폰용으로 설계돼 있으면 하드웨어의 잠재력이 묶인다. 그는 소프트웨어 수장 크레이그 페데리기를 찾아가 아이패드 전용 운영체제를 만들자고 직접 설득했다. 그 결과가 아이패드OS다. 하드웨어 임원이 소프트웨어 전략을 바꾼 사례다.

이 에피소드가 말해주는 것은 두 가지다. 그는 자기 영역 너머를 본다. 그리고 위계를 우회해서라도 제품을 위한 결론을 끌어낸다.

블룸버그는 터너스를 “카리스마 있고 두루 신망받는 리더”로 묘사하며, 임원 전용 공간 대신 팀원들과 같은 오픈 오피스에서 일하는 스타일을 주목했다. 조니 아이브 시절 디자인팀이 ‘심미성 우선’으로 제조 원가를 뒤로 밀던 관행에 맞선 것도 터너스였다. 그가 2025년 말 디자인팀까지 통합 지휘하게 된 이후, 애플 제품의 방향은 ‘아름다움’보다 ‘배터리·성능·내구성’으로 눈에 띄게 이동했다.

‘엔지니어 CEO’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

업계는 이번 교체를 운영 중심에서 제품·엔지니어링 중심으로의 전환으로 읽는다. 쿡 체제에서 애플의 최우선 질문이 “이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들 것인가”였다면, 터너스 체제의 질문은 “이게 정말 맞는 제품인가”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AI 전략도 같은 논리 위에 놓인다. 애플은 거대 언어모델 개발 경쟁에 직접 뛰어들지 않는다. 구글 제미나이와의 제휴가 보여주듯 AI 모델은 외부에서 가져오되, 그것이 실행되는 하드웨어에서 승부한다는 구상이다. 25억 대 활성 기기와 애플 실리콘의 수직 통합, 그리고 온디바이스 처리가 가능한 프라이버시 강점이 이 전략의 실제 무기다. 웹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가 “하드웨어 혁신이 터너스 리더십의 심장이자 폐”라고 짚은 것은 그래서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올 9월에는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도 예고돼 있다. 아이폰 탄생 이래 가장 큰 폼팩터 변화이자, 터너스 체제의 첫 번째 아이폰이 된다. 스마트 글래스, 카메라 탑재 에어팟 등 새로운 AI 하드웨어 카테고리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지니어의 시대

애플의 세 CEO는 각자 다른 언어를 썼다. 잡스는 비전의 언어를, 쿡은 효율의 언어를 썼다. 터너스는 엔지니어의 언어를 쓴다.

이것이 AI 시대에 맞는 선택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애플이 이 국면에서 기술 경영자보다 제품 경영자를 택했다는 사실이다. 소프트웨어 전쟁이 격화되는 시대에 하드웨어 전문가를 전면에 세운 이 결정은, 애플이 AI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AI를 ‘담는’ 회사로 남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그 판단이 옳았는지는 터너스의 첫 번째 아이폰이 나오는 날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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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터너스

팀쿡

손요한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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