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아침을 열며]안보의 이름으로 허용된 것들

25년 전인 2001년 9월11일, 미국은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이 공격받은 충격으로 전례 없는 위기감에 휩싸였고 국가 시스템 전체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아침을 열며]안보의 이름으로 허용된 것들

25년 전인 2001년 9월11일, 미국은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이 공격받은 충격으로 전례 없는 위기감에 휩싸였고 국가 시스템 전체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대내적으로 미국은 행정부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2년 국토안보법을 제정하고 2003년 3월 22개 연방 기관을 통합한 국토안보부(DHS)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기존 이민귀화국(INS)과 관세청의 권한을 통합해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신설했다. 수사·구금·추방 권한을 한 손에 쥔 ICE는 20여년간 3000억달러(약 404조원)가 넘는 예산을 집행하는 대형 연방 집행기관으로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테러 예방이라는 출범 목적과 달리 ICE는 반이민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강력한 내부 단속 기구로 변질하기 시작했다. 영장 없는 민가 수색과 영아 유치장 구금, 민간인 체포 과정에서 벌어진 과도한 무력행사와 사망 사건 등 인권침해 논란이 이어졌다. 특히 최근에는 과잉 단속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까지 숨지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통제되지 않은 공권력에 대한 미국 사회의 공포와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이민 단속을 둘러싼 찬반 대립은 단순한 정책 논쟁을 넘어 정치·인종 갈등을 한층 깊게 만들고 있다.

22개 기관 통합한 미 국토안보부

테러 예방서 ‘반이민 단속’ 변질

한국도 등 떠밀렸던 아프간 파병

두려움이 권력·전쟁을 정당화

대외적으로 미국은 2001년 10월 ‘항구적 자유 작전’을 개시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알카에다를 이끄는 오사마 빈라덴의 신병 확보와 탈레반 정권 퇴진이 명분이었다. 첨단 전력을 투입해 두 달 만에 카불을 점령했으나, 이내 비정규전과 산악 게릴라전이라는 기나긴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었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 20년간 총 2조3000억달러(약 3301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었다. 2400명이 넘는 미군이 목숨을 잃었으며 아프간 민간인 사망자도 4만6000명을 넘는다.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실익이 없다는 판단하에 3만3000명의 미군 단계적 철수를 시작했을 때도 현지의 치안 불안과 친미 정부의 극심한 부패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2021년 8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군의 최종 철수를 단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카불 국제공항은 피란민과 철수 수송기가 뒤엉킨 혼돈의 현장으로 변했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이 떠난 직후 탈레반이 카불을 재장악하면서 20년에 걸친 전쟁은 허망한 결말을 맞았다.

한국 역시 대테러전의 여파에서 비켜서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2001년 의료지원단인 동의부대와 2003년 건설공병단인 다산부대를 시작으로 아프간에 군을 파견했다. 2007년 샘물교회 교인 피랍 사건을 계기로 비전투 부대를 전원 철수시켰지만 미국의 재파병 요청과 한·미 동맹 강화라는 외교적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웠다.

결국 한국 정부는 2010년 아프간 파르완주의 지방재건팀(PRT) 활동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재파병을 결정했다. 일련의 파병이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어떤 실질적 성과를 남겼는지를 두고는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9·11 이후 거대한 안보의 이름으로 구축된 내부의 통제 기구와 외부의 군사 개입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내부에서는 ICE로 상징되는 과잉 공권력이 사회적 상흔을 깊게 남겼고, 외부에서는 수조달러와 수많은 목숨을 바치고도 허탈한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5년은 안보를 강화한 시간인 동시에, 그 안보의 이름으로 무엇이 정당화됐는지를 되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안보는 늘 절박한 명분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한번 커진 권력은 쉽게 줄어들지 않고 한번 시작된 전쟁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25년 전 무너진 것은 세계무역센터만이 아니었다. 두려움 앞에서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권력을 허용할 것인지, 평화를 위해 어디까지 전쟁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함께 흔들렸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쩌면 9·11의 가장 긴 그림자는 테러의 기억보다, 두려움이 정당화한 권력과 전쟁의 흔적일 것이다.

박은경 국제부장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