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소양 갖춘 법률가와 의사
이들이 많을수록 사회 풍요로워져
또박또박 검사의 구형이 법정을 흔든다. 내란특검 정재인 검사의 박성재 전 법무장관에 대한 구형이 유명 매체들에 소개되고, 회자 되었다. 6년차 젊은 검사가 35년차 법무장관을 지낸 검찰 선배에게 중형을 구형한다. 자신이 직접 쓰고 낭독했다. “검사선서에 있듯, 공익의 대표자로서 공동체를 지켜야 할 막중한 의무를 부여받고도, 정작 자신은 윤석열의 내란 범죄를 목도하고도 눈을 질끈 감은 채 한배를 탔습니다...우리 국민은 암울한 현대사를 통해…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도 법의 외피만 빌려 독재를 민주정인 양 정당화한 사례를 익히 보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이를 정당화하고 국민을 속인 노련한 법 기술자들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피고인과 같이 법의 이름으로 법을 파괴하는 법 기술자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내려주시길 요청합니다. 이에 피고인에게 징역 20년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인데 왜 이리 가슴 저리나’, ‘반복해서 듣는다. 눈물이 난다’,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다’,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명문이다’, ‘역사를 관통하는 통찰력 있는 역사에 남을 논고다’ 등등.
법정의 논고가 차갑고 이성적인 것 같지만, 결국 국민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다. 세계적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이 말하는 ‘시적 정의(poetic justice)’이며, ‘시적 재판관’의 모습이다. ‘시적 정의’라는 말은 그의 책 <시적정의: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에서 나온 개념이다. 누스바움은 시카고 대학 법대 학생들과 플라톤, 소포클레스, 디킨스의 작품을 읽는다. 재판관이 될 학생들에게 문학이 쓸모가 있는가? 소설이 우리에게 불러 일으키는 공감, 연민의 감정이 합리적 공적판단을 내리는데 중요하다. 문학, 특히, 소설은 억울하고 배제된 자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전복적 힘을 갖게 한다. 감정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공적영역에서 배제되어 왔지만, 소설을 읽으며 합리적 토론으로 공감능력이 증대된다. 철학자 흄에 따르면 행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이성은 계산과 언어에 기대지만, 감정은 말할수 없는 것이고 가슴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시카고 대학 법대에 나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가 있다면, 컬럼비아 대학 의대에는 ‘서사의학’이 있다. 미국의 명문 컬럼비아 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은 서사의학 과목을 필수로 수강해야 한다. 의사이자 영문학 박사인 컬럼비아 의대 리타 샤론 박사는 2001년 ‘서사의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의대학생들이 문학작품을 읽고 발표하는 서사의학은 의대의 한 과목으로 자리했다.
인간의 삶은 한편의 이야기다. 지극히 개인적 체험인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와 환자의 이야기가 만나는 것이 바로 ’서사의학‘이다. 의학은 가장 과학적인 인문학이며, 인간학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시스트들을 길러내는 작금의 교육에서 ’시적 재판관‘, ’서사적 의사‘가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그만큼 풍요로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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