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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침을 열며] 검찰개혁에 관한 대통령의 의지가 의심받고 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때우는 눈속임을 버리고 10m 높이의 트로이 목마와 범선을 실제 제작해 모로코·그리스·이탈리아를 잇는 거친 바다 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했다”라는 미끼에 걸려 오랜만에 찾은 극장이다.

[아침을 열며] 검찰개혁에 관한 대통령의 의지가 의심받고 있다

제대로 뿌리 뽑자-온존시키자 갈등

분열에도 지도자는 침묵만 하는가

“컴퓨터그래픽으로 때우는 눈속임을 버리고 10m 높이의 트로이 목마와 범선을 실제 제작해 모로코·그리스·이탈리아를 잇는 거친 바다 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했다”라는 미끼에 걸려 오랜만에 찾은 극장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2026년 작 <오디세이>는 트로이의 잿더미, 에게해와 지중해에서의 험난한 표류를 견딘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이타카의 해안에 발을 딛는 장면으로 카타르시스를 완성한다. 구혼자들의 목을 베고, 아내 페넬로페가 베틀 앞에서 흘린 20년의 기다림을 보상하며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왕홀을 넘기는 것으로 끝 자막이 오른다.

오디세우스는 과연 놀란 감독이 그린 것처럼 그 20년 시련을 끝으로 안락한 노후를 누리며 천수를 다했을까. 호메로스 이후 속편 격의 서사시 <텔레고네이아>에서 에우가몬은 이야기를 이렇게 이어간다. 포세이돈에게 바쳐야 할 속죄의 항해가 그를 다시 바다로 불러내고 결국 그는 제 자식인 텔레고노스의 창에 찔려 숨을 거둔다. 신화는 완결된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승리의 순간이 곧 새로운 시련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우리가 겪은 최근 20년은 이 신화의 전반부나 진배없는 곡절의 세월이었다. 두 번의 무혈 시민혁명은 광장의 촛불만으로 대통령 둘을 감옥으로 보내는 세계사에 없는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완성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야말로 어떤 폭압적 권력도 맞서 무너뜨릴 수 있다는 효능감을 거듭 맛본 것이다. 감격에 달뜬 시민사회는 과반 의석 의회와 취임 초 60%를 웃도는 지지율의 대통령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구혼자들은 응징되었고, 왕좌는 주인을 찾은 것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그 케케묵은 경구가 망령이 되어 나타난 건가. TV건 인터넷이건 미디어를 열기가 끔찍하다. 낯익은 얼굴과 이름들이 곳곳에서 서로를 향해 저주와 조롱의 언어를 퍼붓는다. 검언유착의 썩은 집단을 몰아내기 위해 함께 싸우던 자들이 갈라져 서로를 타매하는 것이다. 더 진취적인 이념이나 보다 올곧은 가치를 내건 공방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최고 권력의 의중을 두고 벌이는 정치 충돌이다. 쟁점은 ‘검찰 개혁’이다. 제대로 뿌리를 뽑자는 주장과 온존시키려는 의도가 맞부딪히는데 그게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과 맞물리면서 복잡하게 비화한 것이라. 미래 권력에 줄 서려는 밥그릇 싸움이 얹히니 싸움은 더 노골적이고 치열하여 악머구리 끓듯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다.

잘나가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동산 정책 때문이라느니 ‘삼전닉스’의 레버리지 ETF 때문이라느니 지지율 하락 원인을 정책 탓으로 돌리지만 겉보기만 그럴 뿐이다. 그건 언 땅을 밟으며 함께 싸워 새 정부를 만든 동지들의 분열에 침묵하는 지도자를 향한 지지자들의 엄중한 질문이다. 검찰 개혁에 관한 대통령 의지가 의심받고 있다. 나는 친명을 자처하는 자들이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했다 하여 유시민을 조롱거리로 삼는 걸 보며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다른 목소리를 견딜 자신이 없는가? 더 이상 방치하면 분열은 확대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신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이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헤아리기 바란다. 오디세우스를 다시 항해로 내몬 것은 괴물이 아니라 자신이 미처 청산하지 못한 과거와 자신조차 몰랐던 핏줄이었다.

/홍창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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