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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침발걸음]사라지는 풍경, 남겨야 할 시간

요즘 장례는 대부분 병원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치러진다. 절차는 간편해졌고 시간도 짧아졌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함께 상여를 메고 고인을 떠나보내던 장례 풍경이 있었다. 이제는 사진이나 기록 속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아침발걸음]사라지는 풍경, 남겨야 할 시간

[새전북신문]

요즘 장례는 대부분 병원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치러진다. 절차는 간편해졌고 시간도 짧아졌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함께 상여를 메고 고인을 떠나보내던 장례 풍경이 있었다. 이제는 사진이나 기록 속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1990년, 9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종가의 최고 어른이셨기에 예를 다해 옛 전통 방식으로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집에서 조문객을 맞고, 동네 염꾼이 방 안에서 시신을 염했다. 마을 어른들이 장례 절차를 챙기고 이웃들이 음식을 나르며 함께 상을 치렀다.

장례의 마지막 날, 수십 장의 만장을 앞세운 꽃상여가 집을 떠났다. 삼베옷을 입은 유족들이 뒤따르고 전문 상여꾼의 구슬픈 소리가 마을 길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상여가 천천히 움직일 때마다 곡소리와 상여꾼의 소리가 마을 길 위에 길게 겹쳐졌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전통 장례의 장엄한 풍경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장례는 단순히 한 사람을 보내는 의식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삶의 마지막 예식이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집에서 치르는 전통 장례의 마지막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는 장례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문 비디오 기사에게 촬영을 맡기셨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덕분에 상여 행렬과 장례 절차의 모든 과정이 영상으로 남았다. 훗날 나는 그 비디오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영상을 다시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단순한 가족의 추억을 넘어 우리 전통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자료를 정리해 국가문화유산청에 등록하는 절차를 밟았다. 언젠가 우리 사회의 삶과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에서였다.

얼마 전 신문에서 칠레 이스터섬의 한 원주민이 대영박물관 앞에서 모아이 석상을 돌려달라며 1인 시위를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영박물관은 건물과 관리인만 영국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나라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그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가득하다.

나 역시 오래전 영국을 여행하며 대영박물관을 찾았을 때 한국관에 전시된 우리 문화재들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왜 우리의 귀중한 유물이 먼 타국의 전시장에 있어야 하는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만약 그들이 가져가 보관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가치를 미처 알지 못한 채 잃어버려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어떤 것이 귀중한 유물이 될지 알아보고 모아 두는 안목, 어쩌면 그것이 세계를 누볐던 영국의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네팔을 여행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파탄의 더르바르 광장을 찾았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인 유적지의 한켠에는 노숙자들이 머물고 있었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문화유산은 거창한 유적이나 보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 집안의 장례 풍습 같은 삶의 기록도, 오래된 마을 풍경도 모두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우리의 역사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지고 만다.

사라진 뒤에야 그 가치를 깨닫는다면 이미 늦다. 우리의 삶과 풍경을 기록하고 지키는 일, 그것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다. 다음 세대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조용히 그들에게 건네주는 일이다./한준호(프리랜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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