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
▲ 아파트 / 클립아트 코리아
“안녕하세요?” “아하, 떡 잘 먹었어요.”
손바닥만 한 떡 한 조각 이야기로 빗장을 연다. 각자 네모 상자 속에 들어앉아 이웃과 벽지고 사는 사람들, 허공중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과 합류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맨 먼저 하는 일이 커튼을 열어젖히는 일이다. 동녘에 번져오는 햇살을 맞기 위해서다. 창문 너머 멀리 산등성이 윤곽이 선명히 다가온다. 봉화산, 문안산이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면 기분이 벅차오른다. 흙 밟고 풀투성이 주택에 살 때 못 보던 풍경을 공중에 떠서 네모난 창구멍을 통해 바라본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길가에 심어 놓은 나무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바람의 세기를 느낀다. 춘분을 지나면서 무심하게 누워 있던 들녘이 깨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밭고랑이 붉은 흙살을 드러내고 씨앗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뉘 집 밭 주인이 부지런한지 한 눈에 보인다.
문득 엄마 생각이 떠오른다. 살아생전 가끔 딸네 집이라고 오시면 할 일이 천지라고 앞뒤 돌아다니며 종일 손을 움직이셨다. 풀 좀 있으면 어떠냐, 그만 들어오시라고 하면 남이 흉본다고 걱정하셨다. 그 의미를 이제야 깨닫는다.
회색빛 빌딩 숲에 들어와서 들녘을 바라보며 비로소 자연의 변화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남향에 앞이 가로막히지 않고 확 트인 위치에 자리 잡은 덕분인지도 모른다. 숲을 떠나야 숲이 제대로 보이듯이 주택에 살 때는 너무 가까이 있어 외려 보지 못한 것들이 다시 보인다.
나는 농촌에서 태어났어도 농사를 모른다. 철딱서니가 없어 부모님 일손을 도울 줄도 몰랐다. 곡식 자라는 것이 이쁘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지금도 여전히 손에 흙 묻히는 일이 싫다. 그러나 평소 사람은 땅에 발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길마다 시멘트로 포장되는 것이 마뜩잖아 아파트 생활은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남편은 곡식 가꾸는 일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는 직장 다닐 때부터 퇴직 후에도 농사일을 즐기기 때문에 주택 벗어날 생각을 못 했다. 새로 집 짓는 일도 쉽지 않아 아파트를 구입했다.
옮겨 앉은 아파트 네모 벽 문화에 지금 적응 중이다. 이사 떡을 돌려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요즈음 누가 떡을 돌리느냐, 좋아하지도 않는다” 등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도 같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사람끼리는 인사를 해야 할 듯하여 이사 겸 보름떡을 했다. 예전에는 대보름에 집집이 떡을 해서 나눠 먹지 않았던가. 다행히 떡집에서 일일이 다 포장을 해 주었다. 그 위에 ‘몇 호로 이사 온 사람이다. 이웃이 되어 반갑다’는 문구와 함께 우리 부부 이름과 아들 이름을 라벨지에 써 붙였다.
아들을 앞세워 맨 꼭대기 층부터 돌리려 올라가긴 했는데, 초인종을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 과감히 눌렀다. 얼굴을 마주 보고 떡을 건네니 요새도 떡을 다 돌리냐며 반가워하는 얼굴도 있었고, 비어 있는 집도 꽤 있었다. 빈집에는 현관 문고리에 걸어 놓으며 한층 한층 40여 개를 다 돌렸다.
저녁에 이름을 보고 남편의 전 직장 동료로부터 반갑다는 전화가 온다. 같은 통로, 같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해도 모르고 지낼 뻔한 몇몇 지인과 전화로, 문자로 인사를 나눴다. 호수와 이름을 써넣길 참 잘했다 싶다. 아무 흔적 없이 떡만 불쑥 놓았더라면 무슨 떡인지, 먹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 망설였을 것이 아닌가.
▲ 김윤희 수필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만난 사람도 “아, 떡 잘 먹었어요.”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뭘요” 환하게 대화가 이어진다. 좁은 네모 상자 안에서 얼굴 마주하고도 어색함이 한결 덜하다. 오가는 인사에 정겨움이 묻어난다. 아무리 AI시대, 개인주의가 만연한 각진 네모 세상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우리의 정 문화가 둥글둥글 살아 숨 쉬는 것 같아 반갑고 고맙다.
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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