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낮 12시 대구 헌혈의집 동성로센터에서 오세윤(51)씨가 501번째 헌혈을 하고 있다. 김도경 기자
31년 동안 500번 넘게 자신의 피를 나눈 교사가 있다. 주인공은 경북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인 오세윤(51)씨다.
헌혈 500회를 달성한 지 2주가 지난 시점인 12일, 오씨는 501번째 생명나눔을 위해 다시 팔을 걷었다.
오씨가 처음 헌혈을 시작한 것은 군 복무 시절인 1995년이다. “당시에는 건강하고 젊은 신병들에게 반강제적으로 헌혈을 시켰습니다. 그때 시작한 헌혈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500회라는 기록에 비하면 시작은 소박했다. 하지만 한 번의 헌혈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헌혈은 오씨의 일상이 됐다. 그는 전역 후 5년 동안은 2개월에 한 번씩 전혈 헌혈을 했다. 이후에는 혈장·혈소판 성분헌혈을 2주에 한 번씩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31년 동안 헌혈을 이어오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혈관을 찾지 못해 여러 차례 주삿바늘에 찔리기도 했고, 장비 문제로 헌혈에 2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다. 혈액검사 수치가 기준에 미치지 못해 헌혈을 하지 못하고 돌아선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헌혈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나눔을 통해 느낀 보람 때문이었다.
“가족들을 위해 헌혈증서를 모으고 있었는데 지인의 자녀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헌혈증서를 사용했습니다. 제가 한 헌혈이 누군가에게 직접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나눔이 누군가에게 직접 닿는 순간을 경험한 뒤 헌혈은 오씨에게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 삶의 일부가 됐다. 아울러 헌혈은 그에게 특별한 추억도 안겨줬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로부터 명예·표창장을 받았고, 2019년에는 다회헌혈자로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헌혈의 의미를 알리는 일도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오씨는 우리나라 헌혈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10% 수준에 불과해 혈액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학생들에게도 헌혈의 필요성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학교에서 오씨는 ‘헌혈전도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헌혈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이 직접 헌혈의집을 찾아 헌혈하기도 했습니다.”
오씨의 권유로 헌혈을 시작한 학생들이 꾸준히 헌혈해 표창을 받는 모습을 볼 때면 그는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 특히 한 학생과의 인연은 오씨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씨의 권유로 헌혈을 시작한 이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2개월에 한 번씩 전혈 헌혈을 이어가며 표창까지 받았다. 이후 이 학생은 오씨에게 받은 긍정적인 영향을 대구시교육청에 알렸다.
“그 학생 덕분에 대구시교육청의 ‘아름다운 선생님’으로 추천받아 표창을 받았습니다. 사제지간이 함께 표창을 받았다는 점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헌혈을 통해 ‘남을 돕는 즐거움’을 알게 된 오씨는 다른 봉사활동에도 관심을 넓혔다. 자선 걷기대회와 무료 빵 나눔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했고, 현재는 대구경북헌혈봉사회 회원으로 헌혈 홍보와 캠페인, 연탄 나눔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꾸준한 헌혈을 이어가기 위해 건강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다. 헌혈을 위해서는 혈소판과 헤모글로빈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만큼 식단관리에도 힘쓰고 있다. 헌혈 전 최소 4일 동안은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금주한다. 일주일에 3번 이상 헬스장을 찾아 유산소와 근력운동도 한다.
“헌혈이 가능한 연령인 만 69세까지 꾸준히 헌혈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헌혈을 800회 이상 달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족들도 이제는 오씨의 헌혈을 응원하고 있다. 처음에는 빈혈 등을 걱정하며 헌혈 횟수를 줄이라고 말했지만, 꾸준한 헌혈과 봉사활동을 통해 건강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응원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아버지의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다.
“아들이 제가 헌혈하는 것을 가장 많이 응원해줍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헌혈의집에 같이 가서 헌혈해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씨는 아들과 함께 헌혈하는 것을 자신의 ‘로망’이라고 말했다. 헌혈증서 기부도 앞으로 실천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지금까지 헌혈한 횟수에 비해 헌혈증서 기부는 많지 않지만, 앞으로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할 수 있도록 헌혈증서를 모으고 있다.
“제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봉사회나 동호회에는 헌혈증서 수백 장을 기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씨는 자신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 헌혈증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오씨는 앞으로도 헌혈과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학생들에게 헌혈의 의미를 알리는 ‘헌혈전도사’ 역할도 계속할 계획이다.
“헌혈은 1초의 찡그림만 참으면 됩니다. 그 한 번의 찡그림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헌혈의집을 찾아 문을 두드려봤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횟수로는 500회에서 1회 늘어난 501회지만, 오씨에게 501번째 헌혈은 지난 31년의 연장선이자 앞으로 이어갈 나눔의 또 다른 시작이다.
[제작협찬: 한국언론진흥재단,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오세윤씨가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서 받은 500회 블러드도너 컬렉션과 표창장을 들고 웃고 있다. 김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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