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화 문화교육부 기자
한국사회에 흔히 등장하는,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살 수 없는 이유 중 한가지로 ‘수준 높은 문화를 누릴 수 없어서’라는 응답이 있다. 지역 주민 중에도 ‘문화생활’을 누리려면 서울행을 해야 한다며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지역은 여전히 ‘문화 불모지’로 인식된다.
지역 예술계는 오랫동안 이러한 인식에 맞서 왔다. 풀뿌리 문화예술 알리기, 지역의 문화예술시설 폐쇄에 맞서는 운동, 그리고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 기반시설을 지역 주민도 누릴 수 있게 하고자 기울여온 많은 노력들이 여기 맞서는 움직임이었다.
그럼에도 지역을 ‘문화 없는 곳’으로 치부하는 인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지배와 정복의 선형적 역사성이 ‘진보’와 ‘야만’의 땅을 분별하듯, ‘문화’가 존재하는 공간 역시 그동안 쌓여 온 이데올로기 위에 존재한다.
이미 문화는 오랫동안 고소득층의 전유물이자 계급적 유희의 산물로 인식돼 왔다. 예술이 물성으로 표현되는 전시예술은 더욱 그러하며, 공연예술 역시 부유층의 상징을 사고팔아온 오랜 역사와 관행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자본의 중심부에서 인정받은 전시와 공연은 이제 ‘글로벌 시티’가 된 서울을 경유해 들어온다. 그런 문화의 이데올로기도 서울을 경유해 들어온다. ‘문화'를 결정할 계급적인 위치가 어디인지 의심하는 까닭이다.
지역의 땅에서 시작하는 문화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지역의 문화예술은 제목에서 지역명을 앞세우고, 강원의 아름다운 자연과 순박한 삶을 자주 강조한다. 그러나 ‘향토’를 창조하기에 주민들이 살아온 땅은 개발이라는, 여전히 강고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 ‘퇴근 후 워라밸’로 문화를 찾는 향유가들과 달리, 많은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출근과 퇴근이 분명하게 나뉠 수 있는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일자리 속에서 고통받는다. ‘문화'가 재현하지 않되, 이 땅의 문화가 존재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1964년, 시인은 말했다.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마다 나는 갑자기 회고주의자가 된다/이것이 얼마나 죄가 많은 다리인 줄 모르고/식민지의 곤충들이 24시간을/자기의 다리처럼 건너다닌다”, “그러니까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나는 나의 심장을 기계처럼 중지시킨다” (김수영, 현대식 교량).
그러므로 나는 지금 문화의 땅에 사는 사람들이 ‘식민지의 곤충’이 될 이유와 ‘현대식 교량’을 ‘자기의 다리처럼’ 건너다녀야 할 이유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장소는 노후화로 자주 통제돼 접경지 주민들이 병원가기도 힘들게 만드는, ‘죄 많은’ 소양 1교 앞이다. 이 다리는 1933년 건립됐다. ‘문화’를 결정하는 권력은 어디서 왔고 누구에게 가나.
“―제삼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김수영, 거대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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