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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맛 난다고요?” 러브버그도 직접 씹었다…절반은 암컷·절반은 수컷 ‘세계 최초’ 곤충도 발견 [덕후 계산기]

대학교 1학년, 썸을 타던 여학생이 있었다. 하필 그 친구의 생일날 그는 전남 해남으로 곤충 채집을 떠났다. 결과는 당연히 이별이었다. 하지만 딱히 후회하지 않는다.

이정빈(35) 씨가 야간 채집을 위해 조명을 켜고 불빛에 날아드는 곤충을 촬영하고 있다. 이정빈 씨 제공

대학교 1학년, 썸을 타던 여학생이 있었다. 하필 그 친구의 생일날 그는 전남 해남으로 곤충 채집을 떠났다. 결과는 당연히 이별이었다. 하지만 딱히 후회하지 않는다.

“그럴 운명이었겠거니 합니다. 그냥 그때는 어딜 가는 것 자체가 좋아서 채집하러 갔습니다.”

산에서 반달가슴곰 발자국을 마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놀라기보다 태연했다. “우리나라에서 반달가슴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아직 없으니까 설마 내가 첫 번째가 되겠어? ‘문제가 생기면 그때 조심하자’ 그런 생각이었죠.”

연애도 야생동물도 그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했다. 오직 형형색색의 곤충만이 ‘곤충 덕후’ 이정빈(35) 씨를 멈춰 세운다.

고교 진학 대신 곤충 외길… 열아홉 나이에 ‘개인 전시회’ 열다

이 씨가 곤충에 빠진 건 초등학생 때 설악산 계곡으로 간 피서지에서였다. 아버지가 산천어를 담아둔 어항 속에 빠진 사슴벌레 한 마리를 건져 올려준 게 계기였다. 어린 이 씨는 그날 이후 직접 도감을 찾고 사육법을 독학했다. 중학생이던 2004년에는 이미 곤충 관련 방송 인터뷰를 할 정도로 어엿한 ‘곤충 덕후’가 돼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 대신 곤충을 택했다. 19세에 개인 전시회를 연 것을 발판 삼아 검정고시를 거쳐 인하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숲 해설가를 대상으로 한 강의, 박물관 연구원 등을 거치며 곤충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런 그가 현재 가장 좋아하는 곤충은 바로 나방이다. 이 씨가 준비 중인 ‘밤나비 연구소’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그는 “나방은 사실 나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곤충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서 ‘밤에 나는 나비’, 밤나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학계는 지난 40년간 전 세계 곤충을 약 600만 종으로 추정해 왔다. 그런데 지난 6월 30일 미국 코넬대 로라 멜리사 구스만 교수팀이 과학 저널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제 종 수가 기존 추정치보다 2~3배 많은 최소 1730만 종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구상에서 서식하는 동물 중 다양성이 가장 큰 동물집단인 셈이다.

이렇게 다양성이 크다 보니

같은 ‘곤충 덕후’라 해도 대화가 안 통할 정도다.

이 씨는 “메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나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랑 얘기가 잘 안 된다”며 “한식·중식·일식처럼 아예 다른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이 엄청난 다양성이야말로 곤충의 진짜 매력이라고 이 씨는 말한다.

몽골·중국·일본 등으로…한반도 근처 누비는 이유

이 씨는 호주·중국 연변·일본·몽골 등으로 채집 여행을 다녔다. 한반도와 가까운 지역을 즐겨 찾는데, 생태학적 가치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연변에서는 북한에만 기록이 있거나 기후변화로 국내에서 보기 힘들어진 곤충을 만날 수 있다. 독자적인 지질 환경을 가진 일본에선 특이한 생태의 곤충을 관찰할 수 있다. 과거 빙하기 때 한반도와 대륙이 연결됐던 만큼 몽골도 생태학적 가치가 크다고 이 씨는 설명한다.

그는 “같은 생물이 갈라진 뒤 어떻게 변화했는지 볼 수 있다”며 “그런 환경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안목을 넓히고 싶은 목적으로 간다”고 말했다.

물론 낯선 곳이다 보니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호주 사막에서 해가 지자마자 순식간에 어두워진다는 걸 몰랐던 그는 가로등 하나 없는 사막에서 구글 지도(구글맵)에만 의존해 돌아온 적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을 지닌 뱀으로 꼽히는 호주의 타이판이 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늘 한결같았다. “적당히 조심하고 다니면 괜찮겠지 했죠.”

몽골로 곤충 채집 여행을 떠난 이정빈(35) 씨. 이정빈 씨 제공

7년 쫓은 나방부터 ‘아수라백작’ 방아벌레…그리고 ‘러브버그’의 맛

원하는 곤충을 만나기 위해 7년 동안 한 종을 쫓아다닌 적도 있다. 바로 세욱노랑뒷날개나방이다. 2024년에야 포천에서 발견했다. 생태를 알게 된 지금은 1년에 두세 마리씩 볼 수 있게 됐다.

올해는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희귀종 ‘붉은점겨울가지나방’도 찾아냈다. 일본의 겨울자나방 연구 권위자 나카지마 히데오가 참여한 논문들에 따르면 암컷은 1992년 이후, 수컷은 1970년 이후 2016년까지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아 한때 ‘전설의 나방’으로 불렸다. 암컷은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고

, 수컷은 초봄 맑은 날에만 잠깐 활동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몇 년간 애벌레 발견 소식을 듣고 여러 곳을 찾아갔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러다 지난 3월 애벌레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이미 농약이 뿌려진 뒤였다. 이에 이 씨는 지난해 사육해 둔 암컷을 그 장소에 풀어놓았다. 암컷이 내뿜는 페로몬으로 수컷을 유인하는 전략이었다. 기다림 끝에 수컷이 날아와 암수 모두를 확인했다.

이정빈(35) 씨가 촬영한 붉은점겨울가지나방의 짝짓기 모습. 이정빈 씨 제공

이정빈(35) 씨가 발견한 왕빗살방아벌레의 자웅모자이크 개체. 몸의 좌우가 각각 암컷과 수컷의 형태를 띠는 매우 희귀한 개체로, 이 씨는 “완벽하게 나누어진 자웅모자이크는 세계 최초”라고 말했다. 이정빈 씨 제공

지난 6월 5일에는 몸의 절반은 암컷,

절반은 수컷인 왕빗살방아벌레도 관찰했다. 아수라백작처럼 좌우가 다른 형태로 ‘자웅모자이크’ 개체다. 왕빗살방아벌레는 국내에서 흔한 곤충이지만, 암컷만으로 번식하는 단성생식 개체군이 발달해 있어 수컷은 극히 드물다. 세포 분열 초기에 성별이 잘못 나뉘면 이런 개체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 씨는 “이렇게 완벽하게 나뉘어진 자웅모자이크는 세계적으로 처음 발견된 사례”라고 강조했다.

가장 좋아하는 곤충은 뒷날개나방(Catocala sp.)이다. 평소엔 나무껍질과 같은 보호색으로 날개를 접고 있다가 천적이 나타나면 날개를 펼쳐 화려한 색을 드러낸다.

아직 만나지 못한 ‘꿈의 곤충’은 스페인에 서식하는 이자벨라산누에나방(Graellsia isabellae)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날개무늬로 유명하고 영화 ‘버터플라이’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표본만 수입해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야생에서 직접 본 적은 없다.

이정빈(35) 씨가 소장 중인 뒷날개나방 표본. 이정빈 씨 제공

희귀종을 좇다 보면 예상 밖의 당황스러운 일도 겪는다. 지난해 국립생물자원관에 대발생 곤충 표본을 납품하기 위해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를 채집하던 중 얼떨결에 입속으로 들어온 한 마리를 씹고 만 것.

이 씨는 “먹으려고 했던 게 아니니까 솔직히 기분은 나빴다”면서도 “맛은 약간 달큰하면서 소시지 껍질 같은 식감에 빠직한 느낌도 있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산성으로 알려진 러브버그가 신맛이 난다는 얘기에 대해 “우유·커피·생리식염수도 산성이라고 신맛이 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러브버그의 사체가 자동차 도장면을 손상시킨다는 이야기가 와전되면서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모든 곤충이 해충이라고요? ‘해충 라이팅’을 멈춰주세요”

평생을 곤충과 함께해 온 그가 최근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건 곤충을 향한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이다. 도시화로 곤충을 접할 기회가 줄어든 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에서 조회수를 노리고 모든 곤충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면서 혐오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해충 라이팅’(해충+가스라이팅)이라 부른다.

이 씨는

“10년 전만 해도 등산하시는 분들이 신기한 곤충을 보면 ‘되게 신기하게 생겼다’는 반응이 먼저였다”며 “그러다 ‘이것도 해충이야? 근데 예쁘다’ 정도로 바뀌었고, 지금은 아예 모든 곤충을 해충으로 보는 시선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모기, 장수말벌, 집안의 바퀴벌레 정도를 제외하면 농사를 짓지 않는 일반인이 해충으로 인한 피해를 체감할 일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다만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화단에서 주의할 곤충이 있다. 젤리처럼 알록달록한 쐐기나방 애벌레다. 예쁜 색깔 탓에 아이들이 무심코 손을 대기 쉽기 때문이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모르는 것을 즐기는 마음’”

현재 그가 소장한 표본은 27인치 모니터 크기의 상자 150개 분량이다. 나방만 따로 세면 1000종에 가깝다. 하지만 무분별한 채집은 하지 않는다. 생명을 다루는 일인 만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채집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표본을 직접 만들다 보니 다른 곤충 덕후들보다 들어가는 비용은 적은 편이다. 이 씨는 “톱밥도 손수 만들어 시중가(5리터 4000원)의 4분의 1 수준인 1000원 정도에 해결한다”며 “딱정벌레 먹이도 직접 기르거나 채집하기 때문에 적게 든다”고 밝혔다.

그렇게 들어가는 비용은 한 달에 약 60만원. 전국 곳곳을 다니다 보니 순수 기름값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부 강의로 출장을 갈 때는 그곳에서 채집을 겸하는 방식으로 비용도 아낀다.

이정빈(35) 씨가 소장한 곤충 표본들. 이정빈 씨 제공

이 씨의 향후 목표는 나방 2500종을 담은 도감 집필과 ‘밤나비 연구소’의 정식 개소다.

밤나비 연구소가 문을 열면 학술적인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곤충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알리는 데 무게를 두고 싶다고 했다.

“요즘은 SNS 영향인지 자신이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모른다는 건 앞으로 알 수 있는 즐거움이 그만큼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거든요. 저는 사람들이 곤충을 통해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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