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커스, ‘신화는 인간을 말한다’ 출간… 47개의 이야기와 질문, 삽화로 다시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
[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수많은 이름이다. 제우스와 헤라, 아테나와 아폴론부터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 오이디푸스와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까지 등장인물과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신화를 읽는 일이 거대한 족보를 외우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수천 년 동안 이 복잡하고 오래된 이야기를 계속 다시 읽어왔을까.
애스커스가 오는 22일 ‘신화는 인간을 말한다’를 출간한다. 저자 나코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단순히 정리하거나 인물과 사건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화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사랑과 분노, 선택과 운명의 문제를 따라간다.
상담을 전공했지만 기획하는 일을 하고, 인공지능을 전공했지만 사람을 교육하는 일을 해온 저자는 오래전부터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무엇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가져왔다. 좋은 인연과 마음, 습관과 일, 돈과 투자, 역사와 이야기를 두루 살펴보며 서로 멀리 떨어져 보이는 지식들을 연결하고, 어렵고 복잡한 것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그런 저자의 시선으로 다시 만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중심에 놓인 것은 신들의 계보가 아니라 인간이다.
책은 카오스에서 시작해 신들의 탄생과 권력의 이동, 인간과 영웅의 시대, 테베와 트로이의 비극,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지나 로마의 건국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앞에서 만난 인물은 뒤에서 다시 등장하고, 한 장에서 던진 질문은 이후 다른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놓인다.
△ 신화의 줄거리보다, 인간의 질문을 읽다
‘신화는 인간을 말한다’의 각 장에는 이야기와 함께 하나의 질문이 붙는다.
크로노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권력은 왜 다음 세대를 두려워하는가’를 묻고, 프로메테우스 앞에서는 ‘인간은 왜 주어진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가’를 생각한다.
오이디푸스에게서는 ‘진실은 언제나 알아야 하는가’, 안티고네에게서는 ‘국가의 법과 가족의 의무가 충돌하면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들은 신화 속 인물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돌아온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신화는 신을 이야기하지만, 끝까지 따라가면 결국 인간에게 도착한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나르시시스트’, ‘아킬레스건’, ‘미다스의 손’, ‘판도라의 상자’, ‘트로이 목마’ 같은 표현 역시 오래된 신화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들은 사라졌지만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사랑과 분노는 여전히 우리의 언어와 삶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기존의 신화 입문서와 구별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신들의 이름과 계보를 더 많이 기억하게 하는 대신, 오래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 47개의 이야기, 47개의 질문, 47점의 삽화
책은 7부에 걸쳐 41개의 본 장과 6편의 ‘신화의 방’으로 구성됐다. 모두 47개의 이야기이며, 각각의 이야기에는 하나의 질문이 따라붙는다.
여기에 각 장의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47점의 삽화를 더 했다.
삽화는 단순히 줄거리를 장식하기 위한 그림이 아니다. 독자가 한 이야기에서 오래 기억해야 할 순간을 시각적으로 붙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독자는 이야기를 읽고, 장면을 보고, 질문에 머물 수 있다.
신화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그림을 통해 인물과 장면을 기억할 수 있고, 이미 신화를 알고 있는 독자는 익숙한 장면을 새로운 질문과 함께 다시 바라볼 수 있다.
책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여섯 편의 ‘신화의 방’도 본문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특정 이야기에 더 오래 머물도록 구성했다.
디오니소스와 펜테우스, 미다스, 에코와 나르키소스, 시시포스, 프시케와 쿠피도 등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과 사랑, 인간의 한계와 반복되는 삶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 하나의 정답으로 묶지 않는 신화
‘신화는 인간을 말한다’가 중요하게 지키는 또 하나의 원칙은 ‘신화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한 명의 저자가 없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했고,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는 같은 신화를 각자의 시대와 관점에서 다시 무대에 올렸다. 수백 년 뒤에는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가 또 다른 시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썼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전승을 억지로 하나의 줄거리로 합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전승이 중요한 경우에는 그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를 오류가 아니라, 사람들이 시대마다 같은 이야기에 서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는 흔적으로 바라본다.
권말 참고문헌에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그리스 비극 작품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등이 본문의 어떤 장과 연결되는지를 안내한다.
신화를 쉽고 재미있게 읽게 하면서도, 그리스로마 신화가 가진 복잡성과 다양한 전승의 층위를 지워버리지 않은 것이다.
△ 우리가 계속 인간인 한, 신화는 끝나지 않는다
‘신화는 인간을 말한다’라는 카오스에서 시작해 로마의 성벽 앞에서 끝난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신들의 이름만이 아니다.
권력을 얻고도 두려워하는 인간, 사랑하면서도 의심하는 인간, 상처받고 복수하다가 다시 멈추려는 인간,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도 다시 시작하는 인간, 자신이 보지 못할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남기는 인간의 모습이 남는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긴 신화의 여행을 이렇게 정리한다.
“그런데 끝까지 따라오니 우리가 찾고 있던 것은 신이 아니었다. 인간이었다.”
나코리는 전문 분야의 책은 본명으로, 삶과 사람에 관한 조금 더 자유로운 이야기는 ‘나코리’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다. 상담과 인공지능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공부하고 기획과 교육이라는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온 경험은, 오래된 신화를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바탕이 됐다.
‘신화는 인간을 말한다’라는 신들의 세계를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신들의 이야기를 빌려 인간을 바라보는 책이다.
신들의 탄생에서 로마까지.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마지막에 독자가 만나게 되는 것은 뜻밖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sangbae030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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