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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인물탐구(22)] LG그룹 구광모 회장① 성장 경력 - 선택된 후계자, 만들어진 리더
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입력 : 2026.04.03 00:30
ㅣ 수정 : 2026.04.03 00:30
[기사요약]
경영 수업과 외부 경험이 만든 리더십
대기업 후계자의 이례적 성장 경로
기술과 전략 사이에서 성장한 총수
한국은 강소대국이다. 2025년 기준 인구는 5100만여 명이지만, 세계 GDP 12위에 올라 있다. 반도체·조선·배터리·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에서 글로벌 톱티어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탁월한 CEO와 창업자들이 인구와 자원의 한계를 넘어 성장을 견인해 왔다. 뉴스투데이는 연중 심층기획 ‘신(新)인물탐구’를 통해 이들에 대한 경영학적 사례 분석을 시도한다. 본 기획은 다음 7가지 분석 축으로 인물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성장 경력: 경영 수업형 vs 외부 성취형
>> ② 경영 성과: 재무 성과 vs 구조 성과 >> ③ 경영 철학: 한우물 파기 vs 다각화 >> ④ 리더십 스타일: 지배형 vs 소통형 >> ⑤ 용인술(인재 철학): 성과 중심 vs 신뢰 중심 >> ⑥ 기업 문화: 조직 논리 vs 자율 문화 >> ⑦ 리스크 관리: 예방형 vs 복구형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25년 11월 1일 경북 경주 소노캄(SONO Calm)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위한 국빈만찬에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2018년 6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LG그룹은 창업 이후 처음으로 40대 총수를 맞이했다. 구광모(존칭 생략)는 만 40세의 나이에 LG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재계는 잠시 술렁였다. 한국 대기업 역사에서 40대 초반의 총수가 등장하는 일은 드물었다. 더구나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후계자 코스’를 밟아온 인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성장 경력은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갖는다. ‘재벌가 경영 수업형’과 ‘외부 성취형 경험’이 교차하는 독특한 경로였다. 이 교차점에서 형성된 리더십이 훗날 LG의 전략적 방향을 바꾸는 토대가 된다.
• 후계자의 탄생, 예정된 길이 아닌 선택된 길
1978년 1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난 구광모는 LG 창업가문 4세다. 그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2004년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양자로 입적되며 그룹의 후계 구도가 형성됐다.
구본무 회장은 사고로 외아들을 잃고 51세의 나이에 늦둥이까지 봤는데 딸이었다. 그래서 첫째 동생인 구본능의 장남 구광모를 양자로 삼게 되었다. 한국 재벌가에서 양자 입적은 흔한 일이 아니다.
LG가 다른 재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승계 구조를 유지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LG는 오랫동안 몇 가지 규칙을 비교적 엄격하게 유지해 왔다.
첫째는 장자 중심 승계 원칙이다. 둘째는 형제간 계열 분리를 통해 경영권 충돌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지주회사 체제를 기반으로 한 비교적 명확한 지배구조다. 이러한 장치는 경영권 승계를 개인의 의사나 상황에 맡기기보다는 제도적 질서 속에서 관리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구광모의 양자 입적 역시 이러한 LG식 승계 구조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LG 내부에서는 장기적인 경영 승계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안정적인 승계 구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구광모는 가문 내부의 승계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차세대 리더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후계 구도가 형성됐다고 해서 곧바로 경영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LG는 후계자에게 일정한 ‘경영 수업의 시간’을 요구하는 기업이었다.
구자경·구본무 전(前)대 회장도 20년 경영 수업을 받고 후계자 자리에 올랐다. 창업가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방식은 LG의 조직 문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구광모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후계자의 길이 열렸지만, 그 길은 곧바로 권력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직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긴 시간을 돌아가는 경로를 선택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성장 경로는 ‘재벌 후계자 코스’라기보다 준비된 승계를 위한 장기적 훈련 과정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우회로가 나중에 그의 경영 스타일과 전략적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기게 된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앞줄 왼쪽)이 아들인 구광모 LG그룹 회장(두 번째 줄 가운데)과 장녀인 구연경(앞줄 오른쪽) 등 그룹 구성원들과 함께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의 88세 생신 기념행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이 사진은 2012년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촬영되었다. [출처=LG그룹]
• LG 밖에서 배운 경영, 기술과 스타트업의 시간
구광모의 성장 경력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LG 내부가 아니라 LG 밖에서 보낸 시간이다. 한국 대기업 후계자들의 전형적인 경로는 대체로 비슷하다.
해외 유학을 마친 뒤 곧바로 그룹 계열사에 입사하고, 전략·기획 부서를 중심으로 경영 수업을 쌓으며 서서히 지배구조 안으로 편입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구광모의 경력에는 그 전형적인 궤도에서 한 발 비켜난 시간이 존재한다.
그는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이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물론 중도에 학업을 접기는 했지만)을 밟았다.
이 학업 경로만 놓고 보더라도 다소 특이한 조합이다. 많은 재벌가 후계자들이 처음부터 경영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과 달리, 그는 기술을 먼저 배우고 경영을 나중에 공부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이 선택은 훗날 LG가 강조하게 되는 전략적 방향과 묘하게 겹친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전자·화학·통신 산업에서 경쟁력을 구축해 온 기업집단이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산업 패러다임은 급격히 변했다. 인공지능, 데이터, 플랫폼 기술이 산업 경쟁력의 핵심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구광모가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먼저 공부한 사실은 전공 선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경영자의 시선이 기술의 내부 구조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형성됐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MBA 과정 역시 상징성이 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은 실리콘밸리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기술 기반 스타트업 생태계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교육기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전통적인 기업 경영 이론뿐 아니라 벤처 창업, 기술 사업화, 혁신 전략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 시기는 세계 IT산업이 스마트폰 혁명과 함께 급격하게 확장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구광모가 체험한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는 이후 그의 산업 인식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조주완 LG전자 (당시)최고경영자(CEO)가 2025년 1월 6일 프레스 콘퍼런스 ‘LG 월드 프리미어’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구광모는 2006년 9월,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한 후, 2007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MBA 과정에 입학했다 중퇴하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한국 재벌가에서 이런 선택은 거의 전례가 없다. 후계자에게 대기업은 그냥 직장이 아니라 가문의 권력 기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후계자는 그룹 내부에서 경험을 축적하는 경로를 선택한다.
그런 점에서 구광모의 스타트업 경험은 길지는 않았지만 이례적이었다.
제한된 자원, 빠른 기술 변화, 불확실한 시장 속에서 스타트업 조직은 끊임없이 실험하고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을 경험한 경영자는 대기업 조직에서도 기존 관성을 상대적으로 쉽게 인식하게 된다.
구광모가 스타트업에서 보낸 시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대기업의 안정적인 조직 구조와 스타트업의 민첩한 운영 방식을 모두 경험했다. 이는 향후 경영자로서 산업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전통적인 재벌가 후계자의 경로를 따르면서도 동시에 외부 세계에서 자신의 감각을 시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이후 LG가 새로운 산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결국 그의 성장 경력은 경영 수업의 연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안정성과 실험, 전통과 기술혁신 사이를 오간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LG의 미래 전략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 LG 시너지팀의 경영 수업, 전략의 언어를 배우다
외부 경험을 마친 뒤 그는 다시 LG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일반적인 재벌 후계자의 경로와는 조금 달랐다.
많은 후계자들이 특정 계열사의 사업부로 들어가 운영 경험을 쌓는 것과 달리, 그는 곧바로 사업부 책임자로 향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룹의 전략을 다루는 조직에서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그가 배치된 곳은 LG 지주회사의 시너지팀이었다. 이 조직은 이름만 보면 협업을 담당하는 부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룹 차원의 전략을 설계하는 핵심 부서다. 지주회사 체제 아래에서 계열사 간 사업 방향을 조율하고, 미래 성장 분야를 탐색하며, 그룹 전체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곳에서 그는 단일 사업이 아니라 그룹 전체를 바라보는 전략의 언어를 배웠다.
대기업 후계자의 성장 경력은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사업부 경영형이다. 특정 사업을 직접 운영하며 시장과 조직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전략 기획형이다. 기업 전체의 산업 포트폴리오와 자원 배분 구조를 이해하는 경로다. 구광모는 후자의 경로를 먼저 밟았다.
전략 조직에서의 경험은 CEO에게 몇 가지 중요한 능력을 제공한다.
첫째는 사업 포트폴리오 판단 능력이다. 기업이 어떤 사업을 유지하고 어떤 사업을 정리할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둘째는 자원 배분 전략이다. 제한된 자본과 인력을 어떤 산업에 집중할 것인지 판단하는 역량이다. 셋째는 장기 산업 트렌드 분석 능력이다. 단기 실적이 아니라 미래 산업 구조를 기준으로 전략을 설계하는 시각이다.
이러한 능력은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특히 중요하다. CEO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광모가 시너지팀에서 경험한 전략적 사고는 이후 그의 경영 방식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21년 스마트폰 사업 철수였다.
이는 한국 전자산업 역사에서 상당히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던 대기업이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를 스스로 접은 사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LG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한 이후 그룹의 전략적 초점을 몇 가지 핵심 산업으로 좁혔다. 대표적인 분야가 배터리, 전장(전자장치), 그리고 인공지능이다.
구광모가 보여준 결정 방식은 비교적 분명했다.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기술 변화의 중심에 있는 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판단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LG 내부에서의 경영 수업, 특히 지주회사 전략 조직에서의 경험 속에서 조금씩 형성된 사고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시너지팀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경력의 한 단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업을 운영하는 경영자가 아니라 기업의 방향을 설계하는 전략가로서의 시각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LG가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경영 수업과 외부 경험의 균형
구광모의 성장 경력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경로가 교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대기업 내부에서 이루어진 체계적인 경영 수업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 중심 환경에서 이루어진 외부 경험이다. 이 두 경로의 결합은 그의 경영 스타일에 독특한 특징을 남겼다.
그는 조직 내부의 논리와 운영 구조를 이해하는 동시에, 기술 변화의 속도를 비교적 민감하게 인식하는 경영자로 평가된다. 이러한 시각은 LG의 최근 전략 변화에서도 일정 부분 확인된다.
LG는 최근 몇 년 동안 배터리, 전장, 인공지능 등 기술 기반 산업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전기차 산업 성장과 함께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자동차 전장 사업 역시 새로운 성장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3월 30일,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ESS SI 전문 자회사인 버텍(Vertech)에서 구광모 회장이 ESS 배터리팩에 사용되는 파우치형 배터리 셀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LG그룹]
이러한 변화가 전적으로 한 사람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업 전략은 언제나 산업 환경, 조직 역량, 시장 기회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자의 성장 경력과 경험은 기업의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마흔 살의 젊은 총수로 시작한 구광모의 리더십은 아직 진행 중이다. 기업 전략의 성과는 보통 10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평가된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그의 경영을 완전히 평가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의 경영은 가문 승계의 결과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내부 경영 수업과 외부 경험이 축적된 과정 속에서 형성된 전략적 선택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도 LG의 다음 10년을 향해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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