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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민사법의 후손, 조희대 사법부의 몰염치 [박용현 칼럼]

조희대 대법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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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

3·1운동 때 배심재판이 열렸다면 어땠을까? 일제의 유혈진압을 막지는 못했을지언정 체포된 수많은 투사가 유죄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르는 일은 없었으리라 상상해본다. 물론 식민지 조선에서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일본 본토에서는 1928년부터 1943년까지 배심제가 실시됐다. 물론 민주법치국가의 시늉을 내려는 기만적 배심제였다. 법관이 배심원들의 판단을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식민지에는 그 허울뿐인 배심제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배심제 도입 논의가 한창이던 1919년 일본 대심원장(대법원장)은 이런 반대 논리를 펼쳤다고 한다. 배심제가 도입되면 식민지에도 실시해야 할 텐데 3·1운동 같은 시위가 또 벌어진다면 과연 시행할 수 있겠는가.(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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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는 일제강점기에 이뤄진 사법 근대화가 껍데기에 불과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구의 사법제도를 들여왔다지만 실상은 식민통치를 위해 군림하는 관료사법이었고, 조선인은 사법의 주체가 아니라 지배 대상일 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식민사법의 관념’이 해방 이후에도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패전 이후 그나마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압박 속에 사법민주화를 시도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시민들이 다시 심사하는 검찰심사회 제도를 만들었고, 최고재판소 재판관(대법관)에 대해 국민투표로 신임을 묻는 국민심사제를 도입했다. 특히 2009년 재판원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본격적인 시민주체형 사법제도를 갖추게 됐다. 중대 사건의 경우 일반 시민 가운데 추첨으로 선발된 재판원 6명이 직업 법관 3명과 함께 재판부를 구성한다. 재판원은 유무죄와 양형 결정에 법관과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다. 거의 모든 민주국가는 배심제든 참심제(시민의 재판부 참여)든 시민 눈높이를 재판에 직접 반영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대만도 2023년 재판원 제도와 흡사한 국민법관제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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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시민이 직접 사법권을 분담하는 제도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의 제도가 있으나, 배심원의 판단에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1920년대 일본의 기만적 배심제와 다를 바 없다). 이는 식민사법을 극복하지 못한 역사의 상징적 단면일 뿐이다. 식민 상태에서 형성되고 군사독재를 거치며 굳어진 관료사법 체제가 광복 81년을 맞은 지금도 사법 전반에 배어 있다. 독립적이어야 할 법관들이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위계화되고, 대법관들마저 대법원장의 일개 수하로 인식되며, 법관들은 국민의 법 상식을 유념할 아무런 필요도 느끼지 않는 ‘그들만의 성채’가 지금 사법부다.

이 같은 식민사법 유산의 병폐를 가장 집약해 보여준 게 조희대 사법부다. 사법부의 독단과 오만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12·3 내란 이후 온 국민이 목도했다. ‘내란 관련 재판을 국민이 실질적 재판관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시민들은 상식을 팽개친 재판들을 지켜보며 절망할 권리밖에 없었다. 사법권을 국민이 아니라 천황으로부터 위임받았던 식민지 법관들과 뭐가 다른가, 탄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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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행태는 그 독단과 오만의 정점이다. 대법관 제청권을 선출 권력인 입법·행정부의 직간접 관여 없이 대법원장에게 일임하는 우리나라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다. 그나마 국회의 동의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한다. 그런데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과 사전협의하고 면담을 통해 제청하던 관례를 벗어나 서면으로 일방 통보했다. 자신의 제청권 행사를 민주적으로 승인받는 절차를 하찮게 여기는 듯한 태도다. 대통령이던 내란범 윤석열에게 대법관 임명을 제청할 때는 그러지 않았다. 천박한 변신이다.

사법부가 또 법기술을 부려 내란 청산을 훼방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진다. 대법원이 한덕수·이상민의 내란 재판과 김건희 재판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을 두고서다. 사법부가 정상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불안감이다.

주권자와 헌법은 안중에 없는 이 비정상 사법부의 근원이 바로 식민사법이다. 그 옛날 친일파로 살았던 어느 의사의 증손녀인 배우 하영은 역사에 대한 무지로 곤욕을 치렀다. 그 옛날 심어진 식민사법도 망각에 힘입어 대대손손 부끄러움도 없이 번창하고 있다. 그 해악은 한 연예인의 가족사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심대하고 또한 현실적이다. 역사를 망각한 연예인 일가보다 더 큰 분노를 맞닥뜨릴 이들은 바로 지금도 군림하고 있는 식민사법의 후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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