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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대만필] 소나무 집착 넘어 숲을 살리자

전국 산하가 다시 붉게 물들고 있다. 단풍이 선사하는 가을의 풍요가 아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쓸고 간 절망의 민낯이다. 지난 5년간 죽은 소나무만 414만 그루에 달한다.

[시대만필] 소나무 집착 넘어 숲을 살리자

전국 산하가 다시 붉게 물들고 있다. 단풍이 선사하는 가을의 풍요가 아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쓸고 간 절망의 민낯이다. 지난 5년간 죽은 소나무만 414만 그루에 달한다.

영남권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산부터 월악산, 지리산, 한려해상까지 가리지 않는다. 국립공원까지 침투해 소나무 숲이 말라 죽는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왔는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과거 필자가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솔잎혹파리는 들어봤어도 소나무재선충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글자 그대로 소나무 목재(材)에 사는 실같이 생긴 벌레(線蟲)다.

2000년대 이후 재선충병이 확산하면서 방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았다. 감염목을 베어내고, 방제약제를 주사하고, 훈증 더미를 쌓고, 헬기로 약제를 뿌렸지만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이 비극의 원인은 무엇인가. 단순히 기후 변화나 매개충의 폭증 탓만은 아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소나무’라는 민족적 상징성에 매몰돼 생태적 현실을 외면해 온 우리의 고집스러운 관성이다. 조상과 함께해 온 전통 수종이라는 이유로 소나무 숲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애썼다.

물론 전통 수종을 지키려는 노력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 명분이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숲을 재구성하는 판단까지 가로막을 때다. 지구온난화로 한반도의 기후 체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소나무는 서늘하고 건조한 환경에 잘 적응하지만 폭염과 가뭄이 반복되면 생육 여건이 악화될 수 있다.

약해진 소나무는 재선충과 매개충의 먹잇감이 되고, 온난화는 매개충의 활동 기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감염된 나무만 솎아내고 기존 숲이 저절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은 불붙은 집에 부채질하며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꼴이다.

감염목 제거와 매개충 방제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피해가 반복되는 지역에서는 방제만으로 기존 숲을 유지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단기 방제와 장기적 산림 구조 개선을 병행하지 않으면 같은 피해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소나무라는 특정 수종의 이름이 아니라 탄소를 흡수하고 토사를 지탱하며 기후위기에 맞설 ‘건강한 숲의 기능’ 그 자체다. 이제는 ‘전통 고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재선충병 피해 위험을 낮추고 기후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수종으로 전환하는 유연한 발상 전환이 시급하다.

참나무류를 비롯한 다양한 활엽수와 지역에 적합한 자생 수종을 검토하고, 한 가지 수종에 의존하는 숲을 여러 수종이 어우러진 혼효림(混淆林)으로 바꿔야 한다. 어느 수종도 모든 병해충에 안전하지 않은 만큼 해당 지역의 기후 변화 추이와 토양이 성질 그리고 산불 발생 위험성까지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 집단 피해 지역을 벌채하고 재선충병에 강한 수종으로 다시 조림하는 ‘수종전환 방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전략이다.

그렇다고 일률적인 전면 벌채가 능사는 아니다. 피해 정도와 지형, 생태적 가치에 따라 보전할 곳과 전환할 곳을 구분해야 한다. 토양과 야생생물의 서식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벌채는 또 다른 생태적 손실을 낳을 수 있다. 핵심은 무조건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피해가 반복되는 곳부터 과학적 근거에 따라 숲의 구성을 바꾸는 데 있다.

정부의 정책 틀 역시 대전환이 필요하다. 감염목을 추적해 뒤늦게 찌르고 베어내는 사후 방제에만 머물지 말고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선제적 수종 갱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자체와 산림 당국은 지역 특성에 맞춰 경제성과 생태성을 함께 갖춘 모자이크형 산림을 구축해야 한다. 방제 성과도 피해 면적만이 아니라 재발률, 생물다양성, 탄소흡수 기능, 토양 보전 효과 등을 함께 평가하고, 수종 전환 시범사업의 성과를 검증해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숲은 정지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 숨 쉬며 변화하는 생명체다. ‘민족의 나무’라는 명분에만 연연하다가는 소나무도 지키지 못하고 산림 전체의 황폐화까지 초래할 수 있다. 전통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전통을 지키는 방식부터 바꾸자는 것이다. 과거의 숲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미래에도 살아남을 숲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선택해야 할 진정한 산림 보전이다.

이인재 한국조례학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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