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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스페인 마드리드] 그림으로 보는 천재화가 피카소 예술세계 Ⅰ

아우슈비츠 (MEMORIAL MUSEUM, AUSCHWITZ-BIRKENAU)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ARBE IT MACHT FREI'(노동은 너를 자유롭게 한다)라는 말은 파시스트 급진적 민족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를 표방하며, 삶을 잔인하게...

[스페인 마드리드] 그림으로 보는 천재화가 피카소 예술세계 Ⅰ

전쟁과 폭력의 시대 속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통해 예술의 역할과 인간 존엄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세상, 전쟁과 죽음 앞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피카소는 플라톤의 그림이라는 것은 현상의 모방으로는 진실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세기적 우문현답을 내놓고 있다. 사실적 입체주의로서,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림은 모방의 세계가 아닌 창조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창조적 파괴만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했다. 구체적 대상을 통하여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각이 아닌가 한다.

게르니카(Guernica, 1937 by Pablo Picasso)

팜므파탈(Femme Fatale)적 뮤즈(Muse)를 갈구하는 옴므파탈(Homme Fatale) 피카소에게 만족이란 사치스러움이다. ‘당신을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사랑한다’라는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을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청색시대와 장미시대를 지나면서, 캔버스에서 사물을 평면의 2D에서 입체적인 3D로 새롭게 그려내기 시작했다.

아비뇽의 여인들은 우리가 보아오던 사물을 사진처럼 재현하는 것이 아닌 사물의 본질을 그렸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은 대중에게 외면됐다. 소와 말은 소와 말로서 그대로의 사물을 보아주기를 원했던 것처럼 그는 토론할 수 있지만 하나로 귀결되기를 원했던 것 아닌가, 난해하지 않고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하며 보아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아우슈비츠 (MEMORIAL MUSEUM, AUSCHWITZ-BIRKENAU)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ARBE IT MACHT FREI’(노동은 너를 자유롭게 한다)라는 말은 파시스트 급진적 민족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를 표방하며, 삶을 잔인하게 만들어 놓은 개개인의 자치능력을 강조하며 평등을 부정하고 불평등이 존재하거나 유발해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견해로서 사회주의에 기원을 두었으며, 냉전시기 선동의 문구로 미화되어 사용됐다.

하지만 피카소는 게르니카 작품을 묻는 나치에게 명쾌하게 답을 했다. “이것이 자네 작품인가? 아니 당신들 작품이지”. 나치의 선동과 공격에 의한 혼돈의 세계 게르니카(Guernica)의 탄생은 스페인 내전(Spanish Civil War 1936-1939) 당시 프랑코의 반란군을 지원하던 독일의 나치군 폭격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게르니카 마을의 참상을 파리만국박람회를 통한 기회에 가로7.8m, 세로3.5m의 대작을 단 한달만에 완성하고, 프랑코에 저항하며 게르니카의 비극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 세상에 알리는 계기였다.

1937년 게르니카 작품은 힘없는 소와 상처 입고 몸부림치는 말, 촛대에 불꽃을 든 사람과 램프, 단검을 갖고 나동그라져 죽어가는 사람, 조그만 창을 향해 두 손 벌려 무언가에 구원을 바라는 듯한 사람, 칼과 창에 뚤린 몸부림과 죽어가는 아이를 부여안고 울부짖음과 절규하는 여인과 갈기갈기 해체되어 나뒹구는 인체 조각들은 공포와 절망, 그리고 좌절의 절규를 표현하는 동시에 생명의 존엄이 파괴되고 있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스페인 내전 당시 게르니카 폭격에 의한 현장을 고발하기 위한 작품이라 한다. 황소가 투우사를 죽이고 말을 탄 투우사는 황소를 죽임으로 환호하는 투우장이라고 해도, 그들의 존엄을 파괴하는 것을 용서하지 못했을 피카소는 죽음의 공포와 파괴를 플라토닉한 이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다.

자화상(90 year old, 1972 by Pablo Picasso)

그동안 원근에 집착하였던 그림들의 원칙을 깨트려야 한다는 창조적 파괴를 통한 초현실주의적인 큐비즘(Cubism)을 완성하며, 무기력한 황소는 자신을 그렸던 것은 아닌가 한다. 압도적인 그림 앞에서 오래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위대한 피카소에 대한 동경과 공감이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안장성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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