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등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상장폐지 공포가 확산되자 기업공개(IPO) 시장에도 불똥이 튀었다.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시장에서는 상폐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병 대상의 몸값을 부풀리는 시도가 관측되고 있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스팩 소멸합병 청구서를 낸 기업은 7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곳)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5년 중에서도 가장 작은 규모다. 올해 스팩 합병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5곳)도 2022년(4곳) 이후 최저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팩 합병은 비상장사가 미리 정한 기업가치를 바탕으로 증권사가 상장시킨 페이퍼컴퍼니를 흡수해 증시에 입성하는 방식을 뜻한다. 문제는 근래 상장 후 주가 하락 폭이 두드러지면서 거래소 심사 문턱도 덩달아 높아졌다는 데 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상장 후 주가가 20~30% 떨어지는 것까지 감안해서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이 1000억~1200억 원은 넘겨야 상장할 수 있다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라며 “스팩 상장이 자취를 감춘 이유”라고 설명했다.
스팩은 상장 후 3년 내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면 증시에서 퇴출된다. 이 때문에 합병 대상 기업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려는 시도까지 포착되고 있다. 미래에셋비전스팩7호와 합병을 추진 중인 중고차 플랫폼 기업 오토핸즈는 당초 800억 원 안팎이던 기업가치를 올해 5월 예비 심사 청구 과정에서 1200억 원 수준으로 높였다가 거래소의 지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이 무산될 시 페이퍼컴퍼니에 일찍이 투자했던 일반 투자자들은 3년 동안 돈이 묶이게 돼 아까운 기회비용만 날리는 셈”이라며 “시가총액 규제로 합병 대상 기업을 찾기 더욱 어려워지면서 스팩 경영진도 소액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기 쉽지 않아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시장에서는 상폐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식병합이나 인수합병(M&A)을 하는 사례도 늘었다. 최근 코스닥 상장사
비투엔(307870)
은 코스닥 상장사
앤씨앤(092600)
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비투엔이 앤씨앤의 100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에 오르는 구조다. 앤씨앤은 피인수가 발표된 17일부터 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100억 원대 초반이었던 시가총액은 이틀 만에 184억 원으로 뛰었다. 여기에 100억 원어치 신주가 발행되면 시총이 200억 원을 넘겨 퇴출 위험에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앤씨앤은 시총 780억 원대 코스닥 상장사 넥스트칩의 대주주여서 사실상 비투엔이 두 상장사의 경영권을 함께 확보하는 구조다. 앤씨앤의 경우 기존 대주주가 구주 매각 없이 신주 발행만으로 경영권을 넘겼는데, 매도인이 챙길 수 있는 경제적 실익이 아예 없다.
이 외에도 시총 162억 원 규모의 코스닥 상장사 삼보산업은 최근 주식병합을 통해 동전주에서 벗어났다. 지난달 말 800원대였던 주가는 18일 4645원으로 뛰었다.
시장에서는 대주주가 소액주주에 반해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대리인 문제’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금 동원력이 있는 대주주는 상폐에 따른 정리매매를 활용해 헐값에 나온 소액주주 지분을 사들일 수 있어서다. 주가를 끌어올리기보다 상폐를 방치하며 퇴출을 기다리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이번 기준 상향과 관련해 동전주, 시총 200억 원 미만 상장사들의 문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맞다”며 “주가 부양 대책이 아니라 상폐 시나리오부터 논의하자는 상장사들이 다수”라고 설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