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플레이션'으로 저가 커피와 작별해야 할 때
아침 출근길 손에 든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심상치 않다. 2024년부터 이어진 ‘커피 생두 지수’의 고공행진은 이제 ‘커피플레이션(Coffee+Inflation)’이라는 신조어를 넘어 일상의 부담이 되었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로 인한 물류 불안은 불붙은 시장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짜 변화는 해상 물류나 하늘의 구름에만 있지 않다. 바로 지구 반대편, 생두 농민들의 손바닥 위에 있다.
스마트폰이 바꾼 커피 산지의 권력 이동
그동안 커피 가격을 결정짓는 절대적 상수는 ‘기후’였다. 브라질의 가뭄이나 베트남의 폭우에 따라 뉴욕 선물시장이 춤을 췄다. 그러나 최근의 급등세에는 과거에 없던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빈국 농민들에게 보급된 스마트폰이다.
과거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농민들은 중간 상인이 제시하는 가격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실시간으로 국제 커피 지수를 확인한다. 가격이 오를 기미가 보이면 창고 문을 걸어 잠그고 ‘매집’에 나선다. 정보의 비대칭이 해소되면서 산지의 협상력이 극대화된 것이다. 이는 공급망의 하단이 더 이상 수동적인 객체가 아님을 시사한다. 기후변화라는 불가항력적 요인보다 훨씬 더 예측 불가능한 ‘인위적 심리’가 가격 지지선을 형성하고 있다.
가격 역전과 심리전: 생두 시장의 기현상
이러한 정보 무장은 시장의 상식을 깨는 기현상으로 이어진다. 최근 보급형 원두의 대명사인 브라질산 생두 가격이 급등하며, 독보적인 향미로 대접받던 에티오피아 고급 생두 가격을 추월하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은 가격 방어를 위해 재고를 시장에 풀지 않고 버티기에 돌입했고, 에티오피아 등 프리미엄 산지들 역시 “보급형보다 쌀 수 없다”며 연쇄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있다. 원가 상승의 압박이 품질과 상관없이 시장 전체를 상향 평준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생산자의 높아진 정보력이 ‘가격 하방 경직성’을 만들어내며, 전문가들 사이에서 당분간 이 박스권 상단이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커피 지수의 변동성이 극에 달하자 시장은 발 빠르게 대안을 찾고 있다. 브라질과 에티오피아의 높은 가격 장벽을 피해 베트남, 인도, 우간다 등 기타 산지로 수요가 급격히 이동 중이다. 특히 우간다와 같은 신흥 산지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맛 지도’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격 위기가 역설적으로 커피 취향의 다양화와 시장의 외연 확장을 불러오고 있다.
커피 시장의 '뉴 노멀', 우리의 전략은?
이제 우리는 1,000원대 저가 커피가 당연시되던 시대와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 산지의 정보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격변의 시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첫째, 공급망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이다. 특정 산지에 의존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다. 둘째, 데이터 기반의 구매 전략이다. 산지 농민들이 스마트폰으로 무장했다면, 소비국의 기업들은 더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적정 재고를 확보하고 물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필자가 운영하는 원두데일리가 IT 기술을 통해 오피스 커피의 수요를 예측하고 최적의 원두를 매칭하는 ‘솔루션’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피는 단순한 농산물을 넘어 현대인의 생산성을 지탱하는 인프라이자 경제 지표다. 지금의 가격 위기가 한국 커피 시장이 단순히 비싼 값을 치르는 단계를 넘어, 공급망의 주도권을 고민하고 문화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정새봄 스프링온워드(원두데일리) 대표(스프링온워드 제공)
정새봄
님은 야놀자 CMO, 패스트트랙아시아, 오픈서베이 등 유수의 스타트업에서 사업 개발과 마케팅 총괄 임원을 역임하며 성공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2,500여 개 기업에 커피 구독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프링온워드(원두데일리) 대표로, 데이터와 기술을 결합한 커피 시장의 디지털 혁신과 지속 가능한 오피스 문화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