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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한(歲寒)의 겨울, 운명을 그리다

겨울의 들판은 삭막하다. 먼지 낀 창 너머로 차디찬 공기가 파고든다. 햇살은 힘없이 사그라들고, 얼어붙은 대지, 나뭇가지 사이로 마른 잎들이 떨고 있다. 풍경은 고요하고 정지된 모양이다. 멀리 초가와 고목들, 푸르름을 지킨 한두 그루의 나무만이 겨울을 보내는 장면이 보인다.

세한(歲寒)의 겨울, 운명을 그리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자

겨울의 들판은 삭막하다. 먼지 낀 창 너머로 차디찬 공기가 파고든다. 햇살은 힘없이 사그라들고, 얼어붙은 대지, 나뭇가지 사이로 마른 잎들이 떨고 있다. 풍경은 고요하고 정지된 모양이다. 멀리 초가와 고목들, 푸르름을 지킨 한두 그루의 나무만이 겨울을 보내는 장면이 보인다. 삶의 가운데에서도 이런 추위를 만날 때가 있다. 아무도 곁에 남지 않고, 세상의 온기는 멀기만 현실, 이럴 때일수록 인간의 본심은 더 뚜렷해지는 법이다.

조선 후기의 거목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는 그 찬 기운의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이다. 그는 천하의 명필로 불렸고, 금석학의 대가이자 사상가로 존경받았지만, 권세의 바람은 그의 뜻과는 반대로 불고 있었다. 1840년(헌종 6년) 안동 김씨 세도정치 아래에서 '윤상도 옥사'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840~1948, 9년간) 명예도 벗도 모두 떠나버린 고립의 땅에서, 그는 붓으로 고독을 새겨야만 했다. 그렇게 탄생한 한 폭의 그림이 바로 '세한도(歲寒圖)'다. 1844년 겨울, 유배 5년째가 되던 어느 날,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북경을 왕래하며 귀한 서책과 문방구를 보내주었다. 세상의 인심이 매섭기만 했던 세도정치 시대에 그러한 정성은 드문 일이었다. 추사는 은혜에 보답을 위해 그림을 그려 제자에게 보냈다. 그림 속에는 허름한 초가 한 채, 그 곁을 지키는 몇 그루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전부이다. 나무는 이상적의 인품을 비유하며 답례로 그렸음을 밝히고 있다. 주위의 텅 빈 여백은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나타내고 있다. 산도 사람도 사라진 적막한 환경, 그러나 그 고요에 흐르는 한 줄기 푸르름이 있다. 그것은 제자의 의리와 인간이 견뎌야 할 운명을 상징한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공자의 말처럼, 겨울이 되어야만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늦게 시듦을 안다).

김정희는 그 구절을 삶으로써 증명했다. '세한도'의 경치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고난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의 초상이다. 세속의 봄과 여름이 모두 지나간 뒤에는 오직 겨울의 냉기에서만 진실한 관계와 신념이 드러난다. 그는 그림에 자신의 운명을 담았고, 동시에 그 운명을 지키게 한 인간적 신의를 새겨 넣었다.

'세한도'는 절망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고독을 지내는 한 예술가의 구도(求道)이며, 정신적 응답이다. 그림의 내력은 침묵 같지만, 그 침묵은 깊은 목소리로 말을 건다.

추사는 유배지에서 세상과 단절되었으나, 그 단절에서 세속의 소리를 걸러내고 본질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운명을 저주하지 않았다. 자신을 정화 시켰다. 붓끝은 체념이 아니라 깨달음의 선율이었다. 그가 그린 소나무는 식물만이 아니다. 그것은 혹독한 추위에서도 꺾이지 않으려는 내면의 의지다. 세한도의 푸른 빛은 칠흑의 어둠에서 오히려 더 선명하다. 그 색은 절망에서도 꺼지지 않는 '존엄의 불빛'이자 삶의 추위에 맞서는 인간의 순수한 자세를 말해준다. 이상적에게 보낸 그림 한 폭은, 스승과 제자의 우정 이상이었다. 권세와 이익만이 사람들을 끄는 세상에서, 그는 스승에게 외면과 고난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았다. '권세와 이익을 좇는 자는 그것이 다하면 관계도 멀어진다'는 사마천의 말을 인용하며, 추사는 이상적이 그런 세도의 흐름에 기대지 않고 끝까지 스승 곁에 남아 준 것을 그림과 발문으로 찬미했다. 따라서 '세한도'는 풍경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 속에는 운명, 선택, 그리고 신의(信義)의 교차가 담겨 있다. 권력의 냉기보다 강한 신의의 증표였으며, 세속의 이익보다 오래 남는 인간의 진심이었다.

세상이란 따뜻해지면 다가오고, 차가워지면 떠나는 법이다. 그러나 세한의 겨울을 지낸 관계는 진정한 믿음으로 맺어진다. 김정희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의 우리는 그 그림 앞에 서서 묻는다. '나의 세한은 어디에서 오는가?' 계절은 세월 따라 바뀌지만, 인간의 중심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누군가는 유배처럼 고적한 시간을 겪고, 누군가는 세상의 무심함에 상처 입는다. 그러나 세한도의 푸른 소나무가 말하듯, 겨울을 견딘 자만이 봄의 빛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속 초당은 그에게 마음의 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인간의 지독한 외로움이기도 하다. 집 밖으론 세상과의 분리로 보이겠지만 안으론 더 깊은 연결의 기운이 감돈다. 배경은 침묵에서 피어나는 사유의 자리이다. 그곳에서 운명은 한 폭의 예술이 되고, 고통은 한 줄의 미학으로 바뀐다. 정경(情景)이 얼었어도 얼음 밑의 생명수는 여전히 흐른다. 소나무의 푸르름은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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