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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상 읽기]지금 생산의 정치가 중요한 이유

만약 우리가 2050년으로 훌쩍 이동해 지금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면 무엇을 눈여겨보게 될까? AI가 바꿔놓은 노동과 전쟁의 모습, 대중투자 사회의 도래와 진화하는 금융자본주의, 극심해진 기후변화… 사람들은 흔히 이런 ‘변화’에 주목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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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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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2050년으로 훌쩍 이동해 지금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면 무엇을 눈여겨보게 될까? AI가 바꿔놓은 노동과 전쟁의 모습, 대중투자 사회의 도래와 진화하는 금융자본주의, 극심해진 기후변화… 사람들은 흔히 이런 ‘변화’에 주목할 터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것들도 시선을 받아 마땅할 것인데 이를테면 2026년에도 계속된 생활고로 인한 죽음… 같은 것 말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제 한국에서는 절대빈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한다. 지금의 빈곤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견딜 만하다는 투다. 하지만 어떤 빈곤이 덜 고통스러운지 섣부르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어제의 소득과 지위가 오늘을 말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개인화된 삶 속에서 빈곤과 고립이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위기는 상시적 절대빈곤만큼, 불안정한 상태에서 불쑥 들이닥치는 질병, 실업, 은퇴와 같은 사건들에 가족까지 포함한 사회적 연결고리의 상실이 얹혀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다. 어제의 중간층이 오늘 위기를 맞이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뿌리 없는 노동과 삶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 빈곤의 모습도 유동적이 되었다.

일론 머스크는 기술혁신으로 생산력이 극도로 높아질 것이라며 보편적 고소득제 도입을 말한 바 있다.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이 아닌 고소득을 모두에게 보장한다니 귀가 솔깃해진다. 그런데 기술혁신과 금융화를 결합시켜 질주하고 있는 현실 자본주의는 이미 부의 쏠림과 노동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수차례 대량해고를 단행한 이력이 있는 그의 메시지는 나중에 분배할 테니 지금의 극도로 불평등한 발전에 제동을 걸지 말라는 말로 읽힌다.

새로운 기술은 이미 어떤 영역에서는 노동력 일부를 몰아내고 있으며, 이에 더해 노동자의 숙련을 마음대로 추출해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이 기술은 노동 통제와 감시에도 능하다. 사회는 물론 작업장의 불평등한 권력 구조에 기술이 얹혀지니 대응은 더 어렵다. 노동의 인간화를 통한 분배 개선과 빈곤 대처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일은 생산력 발전과 하이테크 기업가들의 관용에 기대야 할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이는 민주주의 정치와 사회정책이 해야 할 바이다. 민주주의란 경제적 불평등을 정치를 통해 극복해보고자 하는 것이란 오래된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며, 토론과 합의를 통해 분배 질서를 만드는 것이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더 지속력 있는 대안을 만드는 방식일 수 있다.

보편적 고소득이든, 참여소득이든, 기본서비스이든 무엇을 내걸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현실을 함께 들여다보고 새로운 분배와 재분배 질서를 널리 논의하는 장을 만드는 것, 더 나아가 생산의 변화 속도와 방향을 제어하는 권력을 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집권 1년을 보내고 있는 이재명 정부가 기술혁신과 발전뿐만 아니라 불평등 대응과 민주주의에 유능해지길 기대하는 이유이다. 2050년에는 다수가 고르게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불안정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불쑥 닥치는 위기에 취약해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탄하게 될까? 지금 전환기의 정치가 중요하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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