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브라스 시스템즈 [사진: 셔터스톡]
[디지털투데이 홍진주 기자] 인공지능(AI) 칩 설계 기업 세레브라스 시스템즈가 상장 첫날 약 70% 급등하며 올해 미국 기술기업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가장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장에서는 얼어붙었던 기술주 IPO 시장에 AI가 다시 자금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자금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함께 제기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세레브라스 시스템즈는 상장 첫 거래일 급등으로 시가총액이 약 950억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올해 미국 최대 규모 IPO이자, 2019년 차량공유 기업 우버 이후 미국 기술기업 가운데 가장 큰 상장 사례로 기록됐다.
이번 흥행은 침체됐던 기술 IPO 시장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2년 이후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으로 위험자산 선호가 약해지면서 미국 기술기업 IPO 시장은 사실상 얼어붙은 상태였다. 미국벤처캐피털협회(NVC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벤처투자 회수 규모는 2021년 정점 대비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레브라스는 보기 드문 '순수 AI 투자처'로 부각됐다. 특히 반도체 업종 강세 흐름도 흥행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인텔, AMD,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가 동반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AI 인프라 전반에서 칩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레브라스는 자사 '웨이퍼스케일엔진3'(WSE-3) 칩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더 빠르게 작동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올해 초 오픈AI와 200억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고, 아마존웹서비스(AWS)와도 협력 계약을 맺었다. 시장에서는 이번 상장 흥행이 단순한 단기 수급 효과만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AI 열풍이 기술 IPO 시장 전체를 살리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현재 상장 대기군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스페이스X, 오픈AI, 앤트로픽 등 초대형 AI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모두 1조달러 안팎 또는 그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스페이스X는 이르면 다음 주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오픈AI와 앤트로픽 역시 연내 상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슬로 벤처스의 파트너 샘 레신은 현재 시장 분위기에 대해 "향후 1년 안에 나올 수 있는 3조달러급 IPO 외에는 관심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AI 관련 초대형 상장 기대가 시장 전체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다른 기업들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AI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파이어 벤처스의 파트너 자이 다스는 현재 IPO 시장을 두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강력한 AI 서사가 있는 기업은 시장 진입이 가능하지만, AI 색채가 약한 기존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기업들은 공모 시장 관심을 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공공시장 투자자들이 기존 소프트웨어 제품 일부가 AI 모델과 AI 에이전트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보기 시작한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후기 단계 스타트업들 역시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상장 시점을 조율하는 분위기다. IPO 자문사 클래스 V 그룹의 설립자 라이즈 바이어는 “기업들이 아직은 시장이 정말 열렸는지 확인하려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퍼스트마크의 파트너 릭 하이츠만도 “상장 준비 기업들은 누가 먼저 뛰어드는지, 그리고 시장이 실제로 받아주는지를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다음 최대 변수로는 스페이스X가 꼽힌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 2월 스페이스X와 AI 스타트업 xAI를 약 1조2500억달러 가치로 합병했다. 이 수준의 가치로 스페이스X가 상장할 경우 미국 기술기업 시가총액 상위 10위권에 곧바로 진입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노이버거 버먼의 레노스 사비데스는 "아무도 스페이스X의 폭발 반경 안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초대형 IPO가 등장할 경우 중소형 기술기업 IPO는 투자자 관심을 받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세레브라스의 흥행이 기술 IPO 시장 회복 기대를 키웠지만, 동시에 AI 중심의 극단적인 자금 쏠림 현상도 함께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IPO 시장은 AI 서사를 가진 초대형 기업 중심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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