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 시의 세계
자물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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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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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는 나를 열 수 없었네
마지막 열쇠까지 써보았지만
자물쇠에 꽂을 수 없었네
내 발밑은 사막
한 번씩 써본 열쇠들로 가득한
나는 밤새 나의 바깥에 서 있었네
열쇠공의 전화번호 기억하려 애썼지만
사실 그 어떤 열쇠공 하나 없었네
내가 사는 이 시대에는
그러다 모든 사실들의 한 가지 사실 발견했네
내겐 그 어떤 자물쇠 하나 없다는 것을
2018년 6월 28일 오전 4시 30분
-응웬 꾸앙 티에우(1957~)
이 시는 베트남의 당대 대표 시선집 <사는 게 뭔지 오래돼서 잊었다>(하재홍 옮김, 아시아) 첫머리에 실려 있다. 베트남 작가협회 회장인 응웬 꾸앙 티에우는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가다. 전방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해온 작가이지만, 그의 시에는 ‘갇혀 있음’ ‘알 수 없음’의 상태가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내면은 국가체제가 부여한 정치적 역할과 시인으로서의 예술적 고뇌의 간극에서 오는 것일까.
열쇠를 찾지 못해 밤새 고민하는 이 시도 마찬가지다. 주목할 점은 화자가 열고자 하는 것은 ‘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도무지 어떤 열쇠로도 ‘나’를 열 수 없고, 사막과도 같은 발밑은 “한 번씩 써본 열쇠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밤새 나의 바깥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열쇠공이라도 불러야 하는데, “그 어떤 열쇠공”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답답한 상황은 ‘나’ 개인만이 아니라 “내가 사는 이 시대”로 확장된다. 현대인의 존재론적 고독과 사회적 소통의 단절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런데 마지막 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애초 “내겐 그 어떤 자물쇠 하나 없다는” 자각이다. ‘나’를 가두거나 잠근 자물쇠가 없었으니 애써 열쇠를 찾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 채워둔 자물쇠가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정치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는 화해나 해방에 이르렀을 것이다. 시 뒷부분엔 시를 쓴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다. 오전 4시30분이라는 시간. 이 새벽의 고요한 깨달음 앞에서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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